조수영 [나도]
지민의 퇴원을 계속 미뤘다. 병원에서 예상했던 3일이 지나고부턴 지민의 상태가 좋지 않음의 사유로 하루하루 퇴원을 미루고 보고했으나 데이터 센터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고 있었다. 상태가 안 좋아도 퇴원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거부 할 수 없었다. 잠이 든 지민에게 널려있는 줄을 덕지덕지 붙였다. 조금 안좋은 게 아니라 많이 안 좋다. 데려가면 연구도 하기 전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어두컴컴한 방에서 눈은 아주 가늘게 떴다. 분명 저들이 나의 눈으로 나를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일부러 초점을 나가게하고 빠르게 지민의 팔, 목, 입에 호스를 붙였다. 모두 완성됐을 때 눈을 떠 장면을 본부로 보낸다.
아직 퇴원이 어렵습니다. 지금 이런 상태입니다. 연구 전에 죽을 가능성 80퍼센트 이상입니다. 센터는 정말 마지막이라며 일주일의 시간을 줬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지민의 동면이 길어졌을 땐 빨리 연구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지민이 깨어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민의 연구가 들어가게 된다면 난 그 즉시 제거될 것이다. 백 년간 그것만을 원했는데. 인류의 마지막 아날로그 인간을 어떻게 대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안 그래도 복잡해 죽겠는데 2층 병실의 남자까지 귀찮게 했다. 지민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알긴 개뿔이,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지민을 데리고 도망쳐준다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 남자의 병이 무엇인지도 모를뿐더러 센터가 못 찾을 리가 없다. 아니, 못 찾을 수도 있다. 지민은 데이터 인간이 아니니까. 나 혼자만 제거될 것이다. 제일 나은 시나리오였다. 공책을 펼쳐 시선은 지민에게 고정한 채 글을 쓴다.
지민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 이익을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어. 난 사실 예전에 WMA에 납치당해서 강제로 데이터가 주입된 ‘데이터 인간 1호’ 야. 늙지도 죽지도 못한 채 그들의 로직대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
지금 센터에서 열을 올리고 있는 연구, 그거 다 너 때문이야.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인간’인 네 뇌를 탈탈 털어서, 그 잘난 부호들한테 ‘무제한 메모리’를 상납하려는 수작이거든. 네가 퇴원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널 사냥하러 올 거야. 네 뇌를 뽑아내고 나면 너도, 그리고 쓸모없어진 나도 가차 없이 ‘제거’되겠지.
시간이 별로 없어. 내가 데이터 오류니 뭐니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든 퇴원을 미뤄보려고 했는데, 이제 센터에서도 내 말을 안 믿는 것 같아. 곧 병원으로 직접 쳐들어올지도 몰라.
지민아, 네가 이걸 읽은 날, 무조건 2층에 있는 그 남자랑 도망쳐. 이름이.... 박선우였나? 그 사람이랑 같이 가. 그 남자, 자기 메모리가 잠식당하는 것도 모르고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기세더라. 100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게 최선의 확률이야.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사람이 네 손을 놓는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제일 먼 곳으로 가. 해남 같은 곳 있잖아. 등록이 안 돼 있어서 비행기는 못 탈 거야.
넌 데이터가 없어서 센터가 추적하기 훨씬 힘들 거야. 그게 네 유일한 장점이자 무기니까. 널 구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도망쳐야 해, 지민아. 최대한 빨리. 오늘부터 보름을 버텨야 해.
읽고 나면 바로 2층 남자한테 전달해 줘. 그리고 꼭 부탁해. 흔적도 남지 않게, 당장 불태워 달라고.
눈을 창밖으로 돌리고 종이를 구겨 비스킷으로 가득한 지민의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새벽 세 시, 데이터 센터에 돌아가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지민의 사망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분명 믿지 않을 테지만 시간을 최대한 끌어야 했다. 나의 데이터는 전 세계 사람들의 뿌리다. 그 말은 뿌리를 뽑는다면 모든 게 끝난다는 거다. 내가 지금까지 뿌리를 뽑지 않은 것은, 그래야 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그리고 깨어난 지민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으니까.
로그인은 어렵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이 전 세계 부호들에게 나의 뿌리 데이터의 로그를 넘겨줘 최대 용량인 오십 테라의 용량으로 살게 하는 거였으니까. 정확히 반대로 하면 된다. 시간은 일주일 뒤, 메모리를 일 테라가 아닌 일 기가로 설정한다. 나와 전 세계 부호들은 모두 좀비처럼 멈추어 설 것이다. 데이터 센터 총책임자는 물론이고, 그럼 데이터 할당제는 끝난다. 애초에 할당제를 시작한 이유가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을 철저히 갈라놓기 위해 시작된 거니까.
지민의 사망 보고서의 제목을 ‘실험체 0호 사망 및 데이터 증발’로 설정하고 출력한다. 길고 길었던 임무가 드디어 끝날 것이다.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지민이 잘 달아나야 할 텐데.
글 나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