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영 [뿌리를 뽑다]
십오일 후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나는 죽을 것이고 저들은 데이터 쓰레기들이 된다. 지민의 사망 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센터로 출근한 사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됐다. 총책임자 라인 사람들이 날 의심한다. 백 년 전 친구였다는 사실로, 난 하루에 다섯 시간씩 불려 가 조사받았고 수민이에 대한 악담을 하루 종일 쏟아냈다. 더는 말 할 게 없을 정도로, 멍청한 조사원들은 믿는 듯했다. 저들도 곧 좀비가 되겠지. 컴퓨터를 훑는다, 마치 은하수같이 빽빽한 사람들의 데이터 라인들 중 50테라를 가진 사람들이 몇 명인지 훑은 뒤, 코드를 작성한다. 이후 ROM에 저장한다. 아무도 지울 수 없게,
IFUser.MaxCapacity≥50TB
THENUser.CurrentLimit=1GB
ELSEUser.CurrentLimit=STAY
이다음에 나올 코드, 나를 파괴할 한 줄을 작성한다.
AFTER 24:00:00, THEN Self.Memory.Root_Delete(ALL)
센터에선 박선우를 타겟으로 삼았다. 박선우는 지민과 같이 있을 게 분명했고, 박선우는 데이터 인간이니까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동선을 따보니 내가 말한 해남으로 간 게 맞다. 급히 해남이 아닌 통영으로 데이터를 수정한다. 박선우의 기억이 꼬여버리겠지만 이게 최선이다. 총책임자가 통영에 특수부대 전체를 보냈다. 선우와 지민이 마음이 바뀌어 통영으로 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먹고 마실 건 있으려나, 데이터 실행 전 지민을 만나러 갈 것이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 건지 알려야 했다.
해남으로 가 지민을 찾기까진 꼬박 하루가 걸릴 것이다. 코드를 이틀 뒤 실행하게 설정하고 기차를 탄다. 양손에 먹을 걸 잔뜩 들고서.
장장 두 시간을 뒤졌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규칙적인 사이렌 소리와 총소리가 들렸다. 그럴 줄 알고 이미 동그란 방지 밴드를 붙여놨다. 순찰 로봇들이 몇 마리 보인다. 나한텐 말도 걸지 못하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턱, 둔탁한 소리가 들려 발을 옮겼다. 문을 열자 선우가 쓰러져있었고, 지민은 선우의 귀를 틀어막은 채 앉아 있다. 저 총의 교란 신호 때문이구나. 가방에서 교란 방지 밴드를 꺼내 선우의 피그라인에 붙인다. 지민이 날 꽉 안는다. 찾아오느라 수고했어. 무사해서 다행이야. 누워있는 선우 옆에서 우린 한참을 껴안았다. 지민에게 양손 가득한 식당 음식을 건넨다. 선우가 힘겹게 일어나 나를 보고 놀란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빠르게 이야기할게요, 여기서 이틀은 무조건 버텨야 해요. 센터 사람들은 모두 통영으로 갔어요.”
“네? 통영이면 여기잖아요?” 선우가 깜짝 놀라 우왕좌왕한다.
“앉아요, 여긴 해남이에요, 내가 선우 씨 데이터에 손 좀 댔어요. 아무튼 여긴 해남이고, 저들이 통영을 몽땅 뒤지고 서울로 돌아가면 내가 해남에 갔다는 걸 알 거예요, 다시 해남까지 오는데 내 예상 시간은 이틀 남짓이고, 이제 어떻게 될 건지 잘 들어야 해요”
“오십 테라 이상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 모두 한꺼번에 좀비가 돼요. 그들은 반나절도 버티지 못할 거예요. 일 테라가 아닌 일 기가로 재설정 해놨거든요. 나의 목표는 데이터 제도 폐지예요. 웃기게도 백 년을 이어온 데이터 제도가 반나절 만에 폐지될 거예요. 모든 사람의 슬프거나 짜증 나는 기억들도 되살아나겠죠, 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원래 인간의 특징이니까. 그리고 선우 씨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모두 되살아나겠죠.
“우리 아버지? 설마.... 그쪽이?”
“아니, 아니요, 데이터 센터 직원이라면 박철용, 그쪽 아버지 모르는 사람 없어요. 역적 취급 받던 사람” 선우가 눈썹을 치켜뜨며 수영을 바라봤다.
“인간은 빠르게 변화할 거예요, 이 썩어빠진 광경도 곧 푸릇해질 거고, 세계는 데이터가 아닌 인간이 지배하게 될 거예요, 백 년 전처럼.”
“그리고 난 죽을 거예요”
지민의 눈이 동그래지며 무슨 소리야, 했다. 이제 다 끝나는데 네가 죽긴 왜 죽어, 위험한 거야? 말을 마구 쏟아냈다.
“솔직히 말할게, 어쩔 수 없는 거야. 이 테이터 제도의 뿌리는 나거든,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뿌리인 내가 죽음으로서 완성돼”
“안돼, 절대 안 돼” 지민이 오열했다.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지민을 안심시켰다.
“지민아, 이건 내가 백 년 동안 원했던 거야. 저들이 나를 절대 죽지 못하게 해놨거든, 나는 네 얼굴 다시 봤으면 그걸로 완전 만족해. 슬퍼하지 마.” 선우가 입을 열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거예요?”
“방법이 있었다면 백 년을 버티지 않았겠죠, 저는 이 세상의 마스터 서버이자 백업 복구 지점이거든요. 그러니까 내 뇌를 태워 윤회를 끊어버려야 해요.” 슬피 우는 지민을 보며 나도 운다. 박선우는 지민의 우는 모습을 보더니 멈춘다. 팝업이 뜬 것 같았다. 당장 코드를 실행시키고 싶었지만, 그들이 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것, 그리고 내 앞에서 모두 좀비가 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지민을 배불리 먹이고 우린 백 년 전 그날처럼 함께 잠을 잤다.
코드 실행 십 분 전, 내가 죽기 하루 전이다. 저 멀리서 사이렌이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검은색의 차가 셀 수 없이 밀고 오는 것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해남이 시끄러워진다. 탕탕탕, 총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린다. 박선우에게 남은 교란 방지 스티커를 모두 붙여줬다. 사람들이 우르르 총을 겨눈 채 내린다. 실행 이분 전, 총책임자 김기태가 화난 걸음으로 뚜벅뚜벅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몸만 한 확성기를 내려놓더니 조수영! 조수영! 불러댄다. 몸을 숨기고 여기! 크게 외친다. 김기태 특유의 걸음 소리를 타닥타닥 내며 달려온다.
5, 4, 3, 2....
순간 모든 시공간이 정지된 듯 김기태의 눈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멈춘다. 투퉁,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요원들이 주르륵 총을 떨어트린다. 박선우와 지민이 밖으로 나와 광경을 목격한다. 김기태는 내가 죽기 전까지 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것이다. 지직거리며 라디오가 송출된다.
“속보입니다. 조금 전 오후 두 시, 많은 사람이 거리에 멈춰 섰습니다. 대부분 고위직과 데이터 센터 관련진으로 보이며 모두 데이터 초과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메모리 초과 시 일 분 남짓의 정지시간이 걸리지만 현재 이 사건의 관련자들은 오 분째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행동이 재개된 사람은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성공이네요” 박선우가 힘없이 앉아 있는 내 옆에 앉는다.
“아직은 아니에요, 아직 데이터 폐지 이야기가 안 나왔으니까.”
지민이 멈춰있는 사람들을 툭 툭 건드려본다. 다시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속보입니다. 데이터 센터 관련 직원 조 씨가 데이터에 바이러스 코드를 심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조 씨의 행방은 아직 확인되지 않으며, 이 사건을 고위직을 겨냥한 테러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데이터 센터의 관련자와 아무도 연락이 닿지 않으며 데이터 센터로 진입한 기자들 또한 움직이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전해왔습니다.”
김기태가 서 있는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집에서 나온 지민이 나를 보고 슬쩍 웃었다. 우린 백 년 만에 나란히 앉아 같은 풍경을 밤새 바라보았다.
라디오는 쉴 틈 없이 상황을 중계 중이었다.
“조 씨는 해남으로 도피한 것으로 추정되며,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 코드는 수정이 불가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입니다, 현재 두 명이 깨어났고 , 코어메모리를 제외한 모든 데이터를 지워버린 상태로 사태에 대한 기억은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새로 들어온 속보입니다, 잇따른 데이터 오류 문제를 문제 삼아 데이터 제도 폐지가 급하게 의논되고 있습니다. 백 년 동안 이어진 데이터 할당제가 폐지될지 시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민 인터뷰 들어보겠습니다”
“증조할머니의 일기장을 봤습니다. 데이터 폐지가 되면 슬프고 나쁜 기억들도 다 기억나게 된다죠? 물론 처음엔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로소 인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데이터 할당제가 폐지되면 배고픔과 몽마름? 도 느껴야 한다는데,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뒤 데이터 할당제가 폐지된다고 합니다. 코드 분석관을 데이터센터에 투입한 결과, 두 시간 뒤 사람들의 모든 데이터 메모리가 지워지고 조 씨는 사망하게 된다는 코드를 발견했습니다. 또, 조 씨가 데이터 할당제의 1호 뿌리로 추정되는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코드는 삭제도 수정도 불가합니다. 경찰은 즉시 해남으로 향하고 있으며....”
수영이 물었다.
“네 무릎에 누워도 돼?”
“그럼, 당연하지”
수영이 다음 한 말은 미안해였다. 백 년 전 그냥 내가 혼자 죽었야 했는데, 모두를 힘들게 했네. 난 그저 수영의 머리를 살살 쓸어 넘겼다.
“나 되게 외로웠다? 너 없어서” 눈물이 왈칵 넘쳤다.
“수영아, 진짜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응, 없어”
두 시까지 십분도 남지 않았다. 멀리서 또 사이렌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바보들이야 바보들,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하는데” 수영이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선우가 망을 보다 안으로 들어와 같이 앉았다.
“선우 씨 고마워요, 지민이 잘 지켜줘서” 선우가 살짝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제가 더 고마워요”
오십 구분, 경찰차가 코 앞까지 들어왔다. 그 순간 수영은 호흡을 길게 들이쉬었고 다시 내쉬지 않았다. 세상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슬퍼할 새도 없이 선우가 옆에서 큰 비명을 지르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경찰차들이 모두 멈추어 서고 사람들이 차 문을 열고 나와 주저앉아 오열했다. 나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다들 무슨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 걸까.
“지민 씨, 나 여기가 너무 아파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지울 수가 없어요.” 선우가 울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그건 인간만이 짊어질 수 있는 통증이었다.
난 그저 선우를 안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사람이 위로하듯 달랬다.
잠을 자듯 눈을 감은 수영을 가만히 보다 눈물을 흘렸다. 데이터가 꺼진 세상은 기쁨이 우선이 아닌 모두의 울음으로 가득했다.
라디오에서 잡음이 지직대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시스템 종료, 모든 데이터 로그 삭제 완료, 이젠 나 말고 네 기억을 믿어.”
수영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끝으로 라디오는 영원히 숨을 거두었다. 이제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삶을 대신 기록해 줄 서버는 사라졌다. 사랑은 더 이상 공유 메모리의 동기화가 아니었고, 죽음은 데이터의 증발이 아니었다.
수영은 백 년의 고독을 끝냈고, 우리는 고통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매일 아침 배고픔에 눈을 뜰 것이고, 목마름에 고통받을 것이며, 수영의 부재를 매 순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지우고 싶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이 지독한 그리움을 품고 말이다.
나는 수영의 몸 위에 낡은 담요를 덮어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고생했어, 반가웠어, 잘 자.”
비로소, 인간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