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 [아날로그와 러브 로봇]
오후 한 시, 평소와 같이 삼 층으로 올라가 선우를 만난다. 선우는 활짝 웃으며 몰래 salt & pepper라고 적힌 손톱만 한 봉투를 보여준다. 그토록 원했던 짠맛, 남들이 보던 말던 방방 뛰었다. 감정언어가 나오지 않게 입을 꾹 틀어막고서, 선우가 날 보고 활짝 웃었다. 선우는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주머니에서 비스킷을 꺼내다 툭 종이 뭉치가 떨어진다. 수영의 편지, 그 내용은 내가 대충 짐작하던 일이었지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영이가 벌써 죽었으면 어떡하지? 선우에게 편지를 건네자 선우의 표정이 굳어지며 내 손을 잡고 병원을 가로지른다.
“데이터 센터부터. 빨리, 데이터 센터부터 가요” 선우는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편지에 뒷면에 **7890을 적는다, 병원에 있는 모든 비밀번호에요. 병원의 불이 하나씩 꺼지며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째지는 듯한 사이렌이 울린다.
“벌써 WMA가 온 것 같아요, 일단 나만 따라와요” 간호 로봇들이 ‘움직이지 마십시오’ 외친다. 선우는 앞을 가로막는 로봇들을 하나하나 밀치고 나아간다. 탕탕탕, 건물이 울릴 정도의 총소리가 들린다, 로봇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비명을 한 번 지르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선다. 빠르면 오 초, 십 초 넘게 사람들이 정지한다. 선우도 마찬가지였다. 무장한 요원들을 제외하면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난 눈치껏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했다.
“데이터가 갑자기 멈췄어요. 총을 쏘면 데이터 교란이 되는 것 같아요, 지민 씨 내 뒤로 살짝 붙어서 내가 멈추면 그대로 멈춰요” 탕탕탕- 십 초에 한 번 총소리가 울린다,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보는 듯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다 제자리, 도망을 치려다 제자리에 멈춘다. 요원들은 사람들이 멈춘 사이에 이리저리 뛰며 여자로 보이는 사람들만 빠르게 훑으며 몇몇 사람들을 거칠게 끌고 간다. 제자리에 멈춘 채로 가위의 위치를 확인한다. 저 로봇 간호사 주머니, 요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에 선우의 위치를 천천히 옮긴다. 탕탕탕- ‘움직이지 마십시오’ 두 소리가 마치 새벽 귀뚜라미 소리같이 메아리친다. 요원들이 점점 가까이 오는 게 느껴진다. 가위를 빼내 아주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가 싹둑싹둑, 단발의 머리를 잡히는 대로 잘랐다. 가위를 변기에 빠트린 후 선우의 뒤로 합류한다. 총소리의 간격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이제 도망칠 시간조차 없었다. 이대로면 이 자리에 서서 들킬 것이 분명했다. 별별 칠팔구공, 한 남성의 여기! 외치는 소리에 요원들이 달려간다. 서른 명이 넘는 요원들, 총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병원에 없다. 또 한 번에 총소리가 울리자, 한명 두명 쓰러져 발작을 일으킨다. 그걸 본 요원들이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외친다. 멈춰있는 사람들이 사격이 중지되자,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며 병원이 아수라장이 된다.
“가야 돼, 가야 돼 빨리” 정신이 든 선우가 쪽지를 잘게 찢어 뭉쳐 귀에 꽂는다. 아래로 가야 돼.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은 로봇 쓰레기가 가득한 지하에 도착한다. 고장 나 버려진 로봇의 가슴을 쾅 쾅 밟아 부순 뒤 아주 작은 칩을 건넨다.
“과부하 된 메모리예요, 지니고 있어요. 스캔이라도 당하면 끝이니까. 병원을 나가면 검문을 당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삼 초에 한 번, 러브 로봇입니다. 라고 하면 돼요. 기억해요. 삼초에 한 번, 러.브.로.봇.입.니.다.”
선우는 아주 익숙하게 병원의 사각지대를 쏙쏙 찾아냈다. 1층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에서 반듯하게 두 걸음 앞으로 가 의료 카트를 벽에 쿵쿵쿵 일정하게 찧자, 서버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왔고 제일 큰 컴퓨터를 앞으로 당기자 유일한 창문이 나 있었다.
“단속 나오면 우두머리들 도망치는 곳이에요, 나가죠, 나가면 놀랄 거예요. 그래도 멈추면 안 돼요” 창문에 머리를 밀자 얇은 유리가 이마에서 뒤통수로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내가 지금껏 병원에서 본 풍경은 모두 거짓이었다.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거리, 커튼을 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만큼 밝았던 네온사인들은 3층의 거짓 날씨같이 모두 조작된 화면이었다. 나의 눈으로 보는 현실은 때가 잔뜩 낀 듯한 하늘, 습기라곤 느낄 수 없는 퍽퍽한 공기, 모두 제자리에 멈춰 좀비처럼 굳어 표정 없는 사람들. 쩍쩍 갈라진 아스팔트, 그뿐이었다.
“병원에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겠죠, 부자가 아니면 이젠 살아갈 수가 없거든요.”
탕-탕-탕 병원 안에 총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골목 골목마다 빨간색 레이저가 거미줄처럼 모든 사람을 훑었다. 무장한 요원이 핸드건을 들고 스캔했다. 선우가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기억해요. 삼 초에 한 번 러브 로봇입니다.
“야! 서!” 선우가 천천히 뒤를 돌자, 무장군인이 나를 향해 핸드건을 겨눴다. 이름. 선우가 먼저 치고 나갔다. 제 러브 로봇이에요.
“넌 닥쳐, 이름”
“러.브.로.봇.입.니.다....러.브.로.봇.입.니.다....러.브.로.봇.입.니.다”
최대한 일정한 톤으로 대답한다.
“박선우, 왜 고장 난 러브 로봇을 가지고 다니지? 인식 불가하잖아”
“죄송합니다. 평생 이 로봇하고만 살아서, 지금 고치러 가는 중입니다.”
“벌금 행복 오기가, 더 주면 좋고” 요원이 비아냥거리며 말한다.
“오기가나....? 예 드리겠습니다” 선우가 익숙하게 이마와 관자놀이 사이를 누르자 요원이 물러난다. 이내 삐빅-짧은소리가 들린 후 선우가 다시 내 어깨를 잡아 돌린다.
“오 기가면 너무 큰 거 아니에요?” 내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선우는 그저 살짝 미소 지었다.
“지민 씨가 낸 거나 다름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 말의 뜻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백 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빌딩의 정수리는 내가 상상한 미래의 빌딩이었으나 도로 위 줄 세워진 빌라들은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로 사람이 살지 못할 환경이었다. 유령도시가 된 것 같았다. 앞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빌딩 안으로 몸을 숨겼고 한 무리의 무장 요원들이 총을 겨눈 채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문이란 문은 다 열려있었고 한 집으로 들어가 함께 장롱 안에 숨었다. 밖에선 다시 총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선우는 듣지 않으려는 듯 귀를 꾹 막았다. 비좁은 장롱 안에서 선우를 마주 보게 몸을 돌려 내 손도 같이 선우의 귀를 세게 막았다. 십여 분의 총성이 지난 후 선우의 귀에서 손을 떼어냈을 때 들은 말이 심장에 박히는 듯했다
“고마워요” 난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빌라 안에는 세 개의 통조림이 남아있었다. 인공 햄, 인공 참치, 콩. 먹을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 왜 음식이 있을까 의아했지만 다행이었다. 인공 참치와 콩을 뒹구는 종이봉투에 넣고 햄을 땄다. 선우에게 한 입을 권했다.
“괜찮아요, 지민 씨 다 먹어요” 포크로 햄을 찍어 입 앞에 가져다 대니 선우는 받아먹었다. 딱히 감흥은 없어 보였다. 문득 수영이 떠올랐다.
“수영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요, 잘 있을 거예요” 별 의미 없는 대답이었지만 그 대답이 나에겐 간절했다. 담요와 진통제를 챙겨 나왔다. 이제 데이터센터를 지나 수영이 말했던 해남으로 갈 것이다. 기차를 타야 했지만 푯값이 만만치 않았다. 둘이 하면 오기가, 나는 데이터가 없으니 선우가 모두 부담해야 했다. 선우가 조금 망설이는 것이 느껴져 말했다.
“우리 걸어갈까요?” 걸어가면 1주일 정도가 걸릴 거였다.
“아니, 아니요, 그럴만한 시간은 없어요” 내 눈에 작은 가격표가 눈에 띈다, 러브 로봇 추가 요금 없음.
“선우 씨, 나 러브 로봇 흉내 잘 내지 않아요? 한번 해보죠?” 선우를 툭 툭 건들며 말했다.
“안 믿을 것 같은데” 난 선우의 손을 잡고 곧장 티켓 판매 로봇에게 다가갔다
“성인 하나요, 옆엔 러브 로봇이에요” 로봇이 나를 스캔했다. 삐, 삐 두 번의 비프음이 울렸다.
“인식 불가- 인식 불가-” 로봇의 눈이 새빨갛게 변하더니 알림을 울린다.
“지금 고장 나서 고치러 가는 길입니다. 아까 경찰한테 걸려서 벌금도 냈어요. 기록 봐봐요”
로봇이 십 오초 뜸들이더니 지익-하고 티켓 하나를 내보냈다. 우린 나란히 기차에 앉아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눈이 아닌 먼지가 덮인 산, 앙상하게 썩어버린 나무들, 색이라곤 찾을 수 없는 무채색의 풍경. 어디를 가더라도 데이터센터의 꼭대기는 눈에 보였다. 선우가 까무룩 잠에 든다. 난 선우를 가만히 보며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뭘지 생각했다. 지금까지 난 선우의 짐이었으니까.
세 시간 정도가 흐르자, 데이터 센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 도시는 색깔이란 게 있었다. 빨갛고 노란 간판들, 싱싱한 나무들, 좀비화되지 않은 몇몇 사람들. 이것이 내가 생각하던 미래와 비슷하단 걸 느꼈다. 맨 위를 쳐다본다. 저기에 수영이 있을까. 수영은 뭐 하고 있을까.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바다였다. 바다는 멀쩡하구나, 아직 말라비틀어지진 않았구나 생각했다. 해남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무 집이나 들어갔다. 여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관리 안 된 아파트 기둥들의 모임, 쓰러져가는 단독주택, 몇십 년 교체하지 않은 바랜 간판들이 아까 본 데이터 센터와 상반되어 보였다.
우린 함께 손 닿는 곳을 박박 닦고, 땅을 갈아엎었다. 고작 며칠을 머물겠지만, 그냥 했다. 이 집엔 작은 라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건전지로 작동했는데, 채널을 살살 돌리니 뉴스채널이 들렸다. 우린 온 집을 뒤져 건전지란 건전지는 싹 모았다. 뉴스에서 수영의 목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틀어놓기로 했다. -데이터 해킹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곳에서 거래를 하지 마시고....- 아직도 해킹이 극성인 것 같았다. 아니면 수영이 이야기하는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망상도 들었다. 보름을 버텼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지, 수영이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득하게 탕탕탕- 규칙적인 총소리가 들렸다. 치아로 이불을 뜯어 솜을 뭉쳐 선우의 귀에 넣는다. 잠에서 깬 선우가 왜 그래요, 나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지퍼형 옷장에 나란히 서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냈다. 해남으로 왔다는 정보가 흐른 걸까, 계속되는 총소리, 이상하다. 나는 데이터 인간이 아닌 걸 알 텐데, 왜 교란 총을 쏘지? 아, 조력자가 있는 걸 알고 있구나, 저들은 나와 병원에서 사라진 선우를 찾고 있구나.
장장 여섯 시간의 총소리는 해가 뜨고서야 멈췄다. 선우는 기진맥진해 보였다.
“선우 씨, 병원으로 돌아가 주면 안 될까요?”
“네? 갑자기요?” 선우의 이마가 순간 찌푸려졌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WMA가 나만 찾는 게 아니고 선우 씨도 찾고 있어요. 조력자가 있는 걸 눈치챘다고요. 병원에서 사라진 건 나랑 선우 씨 뿐이니까. 며칠 안 지났으니까 병원으로 돌아가서 집에 좀 다녀왔다라든지 핑계를 대면 큰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지민 씨, 난 병원을 나올 때부터 수영 씨랑 같은 목적이었어요. 데이터 제도 폐지. 지민 씨만을 위해 내가 행동하고 있다고 믿지 말아요, 내가 움직이는 이유도 있으니까.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요, 내가 가진 아버지의 기억, 교통사고가 나던 장면을 왜 아직 지우거나 압축하지 않았겠어요, 내 아버지를 죽인 건 데이터센터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도 이날만을 기다려 온 거에요” 선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아버지도 데이터센터 직원이었어요. 일이 바빠 집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죠, 어느날 제게 묻더라고요, 선우야, 넌 만약 메모리가 오십 테라로 늘어나면 뭘 하고 싶어?라고, 오십 테라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너무 어마어마했으니까. 난 오십 테라까진 필요 없는 데라고 답했죠. 아빠는 이불을 덮고 있는 나에게 말했어요, 지금 데이터 센터에서 되게 유치한 일을 벌이고 있어. 몇몇 선택받은 사람들만 메모리를 오십 테라로 올려주는 거야. 그게 너가 되면 어떨 것 같아? 대답했죠. 나는 별로라고, 그럼 다른 일 테라의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불공평하잖아. 아빠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옅게 끄덕끄덕하더니 방을 나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아빠 얼굴을 본 게
지민 씨는 모르겠구나, 몇 년 전에 아빠가 말한 똑같은 선택받은 몇몇은 오십 테라로 올려주겠다는 국가의 제도 때문에 난리였어요, 왜냐하면 기준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정말 랜덤으로 몇 명을 뽑아서 늘려주겠다. 이거였어요. 조건은 있었죠, 시술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은 책임지지 않음. 정말 열 명의 시민이 데이터 확장술을 받았어요. 일 테라의 사람들이랑은 기억의 질부터 달랐죠, 최대 해상도의 최대 감정을 아무리 쌓아도 데이터가 부족하지 않으니까. 선택받지 못한 시민들은 그 열 명을 증오했어요. 증오가 딱 맞는 표현 같네요, 그 열 명을 찾아가 데이터를 테러하고, 예를 들어 감정언어를 마구잡이로 쏟아낸다거나, 동물 사체 같은 걸 들이밀어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준다거나 이런 식이었죠.
근데 또 국가에서 제도가 뜬 거예요, 이번엔 오십 명을 늘려주겠다. 오십 명이 선택됐는데,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뽑혔어요. 뽑히지 못한 사람들은 분노했죠. 그러니까 데이터 확장 제도는 철저하게 시민들을 갈라버리려는 의도였죠, 국가에 찍소리도 못 하게. 이 제도의 전말을 폭로한 건 우리 아빠였어요. 확률은 조작되었고 평범하거나 가난한 시민으로 선택하라 시킨 게 드러났죠. 국가의 신뢰는 바닥을 기었고, 폭동이 일어났어요, 이후 국가에선 60명의 기억을 다시 일 테라로 복구했어요. 그니까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우리 아빠는 그날 제거됐어요. 교통사고의 범인을 잡지 못하는 건 데이터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근데 못 잡았어요, 갖은 핑계를 대며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그래서 난 아빠가 제거됐다는 걸 알았죠, 그러니까 이건 지민 씨를 돕는 것뿐 아니라 나의 복수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저들도 선우 씨가 누군지 안다는 거예요?”
“네, 알아요.” 일이 복잡하게 흘러갈 게 예상됐다. 멀리서 다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같은 장롱에 말없이 세로로 섰다. 손으로 직접 선우의 귀를 틀어막으며.
라디오에선 계속 같은 주제만 내보냈다. 테이터 해킹, 한강영, 끝은 항상 데이터 제도의 이점으로 끝났다. 수영의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남은 날은 일주일이었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까, 수영이 이미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커졌다. 그렇다면 나와 선우는 데이터 센터로 잡혀가 실험 대상과 제거 대상이 되겠지. 힘이 쭉 빠졌다. 제대로 먹질 못했으니까, 잔뜩 싸 들고 온 비스킷은 부스러기만 남았고, 작은 연못에서 물을 떠 끓인 다음 낡은 옷에 부어 걸러 먹었다. 연못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민 씨, 내가 먹을 것 좀 구해와 볼게요. 너무 못 먹었어.”
“위험해요, 난 괜찮으니까 여기 있어요” 선우가 눈썹을 내리며 안쓰럽게 쳐다봤다.
오전, 오후에 사이렌이 울렸다. 규칙적 총성과 함께, 모든 지역에 요원들이 깔린 건지, 아니면 우리가 해남에 있는 걸 아는 건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뉴스가 흘러나왔다.
“서울에 위치한 멘탈 헬스케어 호스피탈에서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나이는 스물셋, 이름은 박선우, 키 178센티미터에 다부진 체격입니다. 위 환자는 데이터 단편화, 즉 중증 조현병을 앓고 있는 걸로 파악돼 시민 여러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디에서라도 이 환자를 목격하신다면 국가에서 데이터 일 테라 추가의 포상을 지급합니다.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보신 분들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선우가 눈을 치켜뜨고 집중했다. 그리곤 코웃음 쳤다.
우리 여기 있는 거 모르는 거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