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2. 메모리 부족 (Low memory)

한지민 [재부팅]

by 나식언

한지민 [재부팅]


들려요? 한지민 씨. 들려요? 들리면 손가락 움직여봐요.


온몸을 뒤틀면서 깨어났다. 어제 잠을 잘못잤나. 찌뿌둥한 팔에 힘을 주며 눈을 뜨니 사람 머리들이 둥둥 떠다녔다. 흠칫하자 열 명의 머리가 씨익 웃으며 깼다! 깼어! 외쳐대기 시작했다. 일어나려 했지만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눈을 크게 뜨는 것조차 힘들다. 심한 감기에 든 것처럼 목소리가 모기소리같이 작게 나왔다. 저 멀리 한지민! 부르며 뛰어 들어오는 30대로 보이는 여자. 누구더라. 간호사 한 명이 여자에게 앞으로 스물네 시간은 잠에 들면 안 된다고 말한다. 최대한 눈을 감게 하지 말라고. 여자가 끄덕끄덕하자 둥둥 뜬 얼굴들이 우르르 나간다.


“어야 이에...” 바싹 마른 입술이 달라붙어서 하려던 말과 다르게 나간다

“이게 뭐냐고? 기다려봐봐, 야 너 진짜 짱이다. 여기서 너만 깨어났어! 대박,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여기 어딘지 알아?”

“영원...”

“그래 병원! 기억력도 그대로네? 오 진짜 신기해. 내가 너 깨는 거 보려고 백 년을 기다렸어!”

“우우세오...”

“뭐야, 나 못 알아봐? 기다려봐, 완전히 깨려면 몇 시간은 걸린대, 너 어디까지 기억나?”

“친구 지베서....” 말하자 여자가 펄쩍 뛴다.

“진짜? 집까지 밖에 기억 안 나? 대박, 너 백 년 동안 잠잤어. 네가 그날 그랬잖아. 네가 죽고 난 미래가 궁금하다고, 지금이 2126년이니까.... 2026년에! 소감이 어때?”

친구랑 자기 전에 그런 소릴 하긴 했지. 몰래카메라도 말이 되는 걸 해야지. 답답해 미치겠다. 금붕어마냥 입은 뻐끔 대는데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누구.시.냐고요...절 어.떻게 아시는.데.요” 힘겹게 한 단어씩 힘주어 말한다.

“내 얼굴이 그렇게 변했나? 아닌데, 나 수영이! 나랑 파자마 파티했잖아. 네가 미래가 궁금하대서 아빠한테 말해줬어! 너 부모님 안 계시잖아! 걱정하지 마 공짜래!”


나는 열일곱 살인데, 자세히 보니 수영의 이목구비와 비슷하다. 아무리 봐도 십 대는 아닌데, 눈치 없는 걸로 봐선 수영이 맞는 것 같기도.


“부럽다 부러워 넌 이제야 일 테라 시작이라니.”

“큼, 큼, 뭔 소리에요 아까부터, 저랑 친구.... 맞아요?”

“응? 다 말해준 거 아냐? 너 백 년 동안 잤다니까? 여기 누워서. 이게 절대 죽지는 않는데 효과가 열 명 중에 한 명이래, 아홉 명은 길어야 한 달 자고 깨어났어. 넌 딱 99년 채웠고. 아, 네가 물어보는 건 왜 내가 늙어 보이냐, 뭐 그런 거야? 살아보니까 난 삼십 대가 제일 예쁘더라고, 그래서 아빠한테 주사 놔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 둘 다 117살인 거지! 밖에, 밖에 좀 봐봐 어떻게 변했는지!


수영이 내 침대를 밀어 창문 앞까지 데려간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그런 건 없었다. 빌딩들로 가득 한 거리는 똑같은데, 수영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나불거렸다.


“저기 저 멀리 동그란 빌딩은 데이터센터야. 별로 변한 거 없지? 음.... 무슨 일들이 있었더라. 네가 좋아하던 아이돌이 누구지? 아 사이프원! 경.... 이가 네가 좋아한 애지? 걔는 진짜 오래 살았어 결혼도 하고 애도 셋이나 있었다? 근데 지금은 아이돌 같은 거 없어, 좀 삭막해 옛날보다, 뉴스를 보는 게 빠르겠다. 뉴스 틀어줄게?”


할당 데이터며 용량 확장이며 압축이 뭐 어쨌다고? 수영의 얘기를 다 들었는데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기억이 데이터화가 됐다고? 그럼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뭐지? 내 눈 앞엔 아무것도 뜨는 게 없는데. 일단 수영의 호들갑스러운 말투를 계속 듣고 있기 힘들다. 얘 말대로라면 지금 이 세상에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수영 빼고 다 죽었다는 건데, 끝없이 조잘대는 수영을 참기 힘들어 몸을 일으켜본다.


앉는 것도 한참이 걸린다. 다리를 하나하나 옮겨보지만 갓 태어난 기린처럼 후들거린다. 침대에서 삐-뽀-삐-뽀 엄청나게 시끄러운 비프음이 울리더니 간호사가 들어와 이른다. 일어나지 말 것, 앉아 있으세요. 내 손등을 쳐다본다. 주름이 잡히지 않은 걸로 보아 다행히 열일곱의 몸인 것 같다. 틀어진 뉴스를 듣지만 ‘저장센터, 포맷, 불법 초기화.’ 빨리 짜잔-몰래카메라였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누구라도 쳐들어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이 관자놀이를 한번 꾹 누르더니 여보세요. 하며 병실을 나간다. 내 감정은 화남, 짜증. 이런 거 같은데 아무런 증상이 없다. 나도 모르게 데이터화 된다는 걸까. 로봇 청소기같이 생긴 둥그렇고 납작한 로봇들이 바퀴벌레처럼 바닥을 사사삭 빠르게 움직인다. 사실이라면 백 년 동안의 일을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수영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견디기 어렵다. 간호사가 들어온다.


“저기, 그럼 퇴원은 언제 해요?” 멀쩡히 걸어오던 간호사가 갑자기 차렷 자세로 멈춘다.

“데이터 송수신중.... 퇴원은 삼 일 뒤입니다” 진짜 로봇이 세상을 지배한 거야? 아무리 봐도 사람이랑 똑같은데. 수영이 병실에 들어온다.


“간호사? 왜? 맞네, 놀랐겠다. 이제 사람들은 일 안 해, 일단 인구가 반의 반의반 토막 나서 일자리도 없어, 어차피 밥도 안 먹는데 뭐, 먹고살려고 일한다는 건 옛말이지. 옛말? 이런 단어도 기억나네, 웃기다. 너 뭐 머리 아프지 않아? 원래 처음 부팅하면 머리가 깨질 것 같대.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이유도 그거라나 뭐라나, 아무튼 진짜 부러워, 너는 데이터가 새거잖아. 오늘 들은 얘기들만 차 있을 거 아니야. 이것도 소문이긴 한데, 부자들이 갓 태어난 애를 거래한다는 소문들도 돌더라. 머리 때문에, 에이 아니겠지, 태어나는 애가 몇이나 된다고.”


“그럼 눈앞에 뭐가 떠?”

“안 보여? 앞에 보인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가 떠 있는 기분이지 않아? 초반이라 감을 못 잡은 건가? 약간 홀로그램 같은 거, 모르겠어?”

전혀 모르겠다. ‘데이터 화’ 된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웃기지만 백 년 전이랑 똑같은데, 수영의 모르겠어? 눈빛이 쎄하다는 걸 느낀다. 그냥 아는 척하기로 한다.

“아....뭔지 알겠다. 머릿속을 떠다닌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 말하는 거지?”

“맞아. 제대로네 암튼 진짜 부럽다 부러워, 선배로서 말하지만, 데이터 아껴 써, 펑펑 쓰다 후회해, 배고프면 오른쪽 아래를 생각해 봐 feed를 클릭하면 괜찮아져”


밥도 안 먹는다고? 밥을 못 먹는다 상상하니 배가 꾸룩거린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 느낌’을 찾는 척한다. 그럼 일주일 안에 죽을 텐데.


“식당 같은 것도 이제 없어?”

“식당? 있지, 근데 배고파서 먹는 건 아니고 그냥 맛을 위해 가는 거야. 가격도 되게 비싸. 행복 감정 1기가, 행복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뭐 그거지.”


배가 고파도 고프다고 말할 수 없어졌다. 침대 옆 탁상에 물이 든 컵을 벌컥벌컥 마신다. 물은 있구나.

“그걸 왜 마셔?” 수영이 이마를 한껏 구긴 채 벌레 보듯 쳐다본다.

“왜.... 물은 마시는 거 아니야?”

“목이 말라?”

물도 안 먹는구나, 머리를 굴려본다.


“아니.... 목마르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습관처럼 마셨어, 이젠 물도 안 마셔도 돼?” 의심 가득한 수영의 표정이 풀리고 깔깔 웃기 시작한다.

“그치, 백 년 전엔 물 마셨지, 근데 국가에서 물 부족이라고 우리 데이터 자체에 물 먹기라는 감정을 못 느끼게 해놨어, 이건 데코레이션용 물이야”


장식용 물이라, 만약 내가 데이터 관리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걸 들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스마트폰도 없는 것 같고, 수영에게 모든 걸 물어봐야 한다는 건데, 멋대로 백 년을 동면시킨 사람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내가 믿을 건 뉴스밖에 없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


최근 확산 중인 메모리 해킹 의혹에 대해 세계 기억관리국 (WMA) 이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성명을 통해 “현재의 시스템상 메모리 해킹은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라며 관련 논란을 일축했습니다. 아울러 사실무근인 정보를 공유하거나 유포할 경우 법정 최고형인 ‘메모리 제거형’을 포함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수영이 뜨개질을 하며 조잘댄다

“메모리가 해킹된다는 게 진짜일까? 맨 처음 여자를 시작으로 벌써 열 명째 기억이 강제 삭제가 됐다고 하더라고, 이 시대에 거의 모든 사람이 습관처럼 다이어리를 써, 나도 마찬가지고. 기억을 삭제해도 수첩에 글자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진짜인지 지어낸 건지 구별이 안 될 뿐이지.

암튼 열 명의 기억이 삭제되고 다른 기억이 잠식했대. 굉장히 끔찍한 것들 이더라고? 교통사고로 다리가 잘리는 장면,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칼로 찌르는 장면, 둔탁한 무기로 공격하는 장면, 근데 이 사람들은 다리가 잘린 적도 없고, 칼에 찔린 자국도 없고, 공통점도 없대. 테러를 당했다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 근데 기억관리국은 절대 아니래. 모여서 시위하더라, “내 행복한 기억을 돌려주세요”라고. 근데 사라진 기억을 뭐 어쩌겠어.


저거 봐, 데이터 백업센터야. 백업센터라고 하면 원래 기억을 거기에 저장해 두고 새로운 기억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야. 백업센터는 현재 데이터를 백업만 하는 곳이야. 그러니까 용량을 확보하려고 백업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해킹을 당해 싹 날아갈까 봐 잠시 가지고 있어 주세요 뭐 이런 거?

국가에서는 공인된 백업센터 같은 건 없다고 했어. 잘못하면 기억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고, 증발처럼.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지. 백업센터 오픈 시간에 맞춰 몇천 명이 몰렸대. 그게 제일 안전하다고 느낀 거지.


글 나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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