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 위에서의 약속
비로소 목적지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을 위해 나는 그동안 열심히 움직였구나."
아득한 수평선을 보며 성취감을 느낀다.
주변을 돌아보며 애틋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를 돌이켜보며 자신감을 느낀다.
숙소 바로 앞에는 케이블카를 타는 사무실이 있었다. 케이블카는 스르지산 정상으로 향했는데, 불과 3분이면 올라왔다. 크로아티아는 500km짜리 돌 위에 만들어진 나라라며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 자랑하던 주민들의 말대로, 올라와보니 나무는 보이지 않았고 저 멀리까지 전부 돌산이었다.
숙소 사람들과 함께 올라왔는데, 케이블카의 운영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 최대한 머물면서 노을을 보고 내려가자고 이야기했다. 노을을 기다리는 동안 한 무리의 중년 동양인들이 몰려왔다.
당시에는 '꽃보다 누나'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크로아티아가 막 한국에 소개된 느낌이었고, 실제로 여행 정보가 많지는 않아 크로아티아를 찾는 한국인이 많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의외로 그 무리는 한국인 무리였다.
익숙한 우리말로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이 낯선 땅, 돌산 위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라며 굉장히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의 나이를 물으시더니 딸, 아들보다도 어린데 어떻게 이렇게 여행을 하냐며 대견하고 부럽다고 한참을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시면서, 지금 가진 현금이 이것뿐이라 미안하다며 오늘 하루 젊은 친구들끼리 저녁 한 끼 맛있게 하라고 따뜻한 눈길을 주셨다.
나는 지금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폴레옹이 점령해 만들어진 요새에서, 심지어 한국에도 잘 안 알려진 낯선 땅 위의 한 돌산 꼭대기에서 만난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용돈을 쥐어주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 돈으로 곧장 마트로 가 고기와 크로아티아의 명물인 레몬맥주를 사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녁을 즐겼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3시가 되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 초의 해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겨울인데도 20도가 넘는 따뜻한 지중해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도 따뜻한 덩어리를 남겨주었다.
지금도 여전히 언젠가 나이가 들었을 때 여행을 하다가 청년들을 만난다면 이때의 빚을 갚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돌산 위에서 스스로 한 약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