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의 조건
좋은 여행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좋은 도시일 것.
좋은 날씨일 것.
그리고 좋은 동행이 있을 것.
기념품을 손에 쥐고 바티칸 시국의 중앙광장인 성 베드로 광장에 도착했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 이곳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던 것을 미디어로만 접했는데, 현장에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아주 긴 줄이 늘어져 있었는데,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입장하기 위한 줄이었다.
나는 사실 줄을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누나들에게 별로 서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누나들은 언제 여길 들어가 보겠냐며 나를 이끌고 전망대까지 올랐다.
결과적으로 나의 실수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열쇠 모양의 광장을 보자, 1시간 넘도록 기다렸던 고생이 잊혔다. 그리고 나의 작은 투정으로 이 좋은 광경을 다 같이 놓쳤을 거라 생각하자 누나들에게 미안해졌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누나들은 광장으로 내려온 후 천사의 성을 지나 테베레 강을 따라 걷자고 했다. 강을 따라 걸으며 판테온, 스페인 계단을 지나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다.
세 갈래 길이 합쳐지는 곳의 분수라서 '트레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5세기 '처녀의 샘'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에서 시작해 18세기에 이르러 30년의 공사를 거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곳이 유명한 다른 이유는 분수를 등지고 오른손으로 동전을 들고 왼쪽 어깨너머로 1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2번 던지면 연인과 소원을 이룬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분수 아래에는 온갖 국가의 동전이 염원을 담아 잠들어 있었다.
분수를 지나 '뽐삐'라는 티라미슈 가게에 왔다. 어찌나 한국 관광객이 많은지, 직원은 능숙한 한국말로 우리의 주문을 받았다. 달콤한 티라미슈와 상큼한 딸기의 향을 느끼며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이튿날 누나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부지런히 기차를 타 동쪽으로 향했다.
왕좌의 게임으로 시작한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메인 촬영지에 가기 위해서였다.
크로아티아는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고, 비수기라 대부분의 교통편을 이용할 수 없어 여러 조사 끝에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야간 페리는 이동과 숙박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해결할 수 있어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바리라는 이탈리아 동부의 큰 항구에 도착해 절차대로 여객선에 올랐다. 내 해외 첫 여행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동해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것이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객실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큰 화장실이 딸린 방을 혼자 사용해 쾌적하게 이용했다.
아쉬웠던 점은 창문이 없어 내부에서 좀처럼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없다는 점과 인터넷이 안돼 세상과 단절된다는 점이었다. 자연스럽게 여객선 내부의 펍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게 됐다.
나는 로마에서 5일 정도 머무르면서 정작 로마의 많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유적들도 방문하지 않았고, 콜로세움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로마의 기억이 너무 좋았는데, 그 이유를 차분히 생각해봤다.
좋은 여행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좋은 도시일 것.
좋은 날씨일 것.
그리고 좋은 동행이 있을 것.
남부 투어, 바티칸 투어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동행이 있다는 것.
그리고 대단했던 날씨.
많은 이야기를 담은 도시.
내 결론은 좋은 여행의 요소를 로마가 갖췄었고, 충분히 누렸기에 기억이 좋다는 것이었다.
다시 간다면 이렇게 즐겁게 놀 수 있었을까?
가슴속에 묘한 감정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