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폼페이
좋은 여행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좋은 도시일 것.
좋은 날씨일 것.
그리고 좋은 동행이 있을 것.
이탈리아의 수도로 들어왔다. 중앙역인 떼르미니역은 고대 로마에서 도시가 세워진 구릉에 지어졌다. 주 출입구 건너편에 있는 고대 목욕탕의 라틴어 이름과 관련지어 불리고 있다.
유럽에서도 규모가 상당한 기차역으로 꼽히며 플랫폼이 무려 29번까지 있었다. 큰 역에는 관광객이 붐비고, 당연히 도선생도 붐빈다. 느슨한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방황하며 누군가의 지갑을 노리는 살쾡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럼에도 로마시대부터 모든 교통의 발전은 떼르미니역 주변을 중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역 주변에는 온갖 숙소들이 늘어져 있다. 호스텔이 마땅치 않아 이곳에서도 한인민박을 찾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주인아주머니께서는 감을 깎아주셨다.
로마가 여행의 중반부쯤 됐기 때문에 한국이 조금씩 그리워지던 차였는데, 따뜻한 환대에 마음이 녹아버리고 말았다. 아주머니께서는 숙소 주변에 세 손가락으로 꼽히는 젤라또 맛집이 있다며, 손수 그린 동네 지도를 보여주셨다. 늦기 전에 콜로세움을 보고 돌아오면, 순대볶음에 맥주 한 잔 하자며 나를 포함한 숙소 사람들을 내보내셨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간에 숙소에 도착해 함께 체크인을 했던 소희 누나와 서윤 누나와 그렇게 말을 텄다.
숙소에서 20분 정도 걷자 콜로세움이 나타났다. 로마시대에 지어봤자 얼마나 큰 건물이겠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나 보다. 콜로세움은 사실 카메라에 다 안 담길 만큼 거대했고, 마치 소리를 내는 듯했다. 약 2000년 전에 48m 높이의 건물을 만들다니. 소름이 돋았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누나들도 콜로세움 앞에서야 비로소 로마에 온 것을 실감했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숙소로 돌아와 순대볶음을 즐겼다. 로마에는 한인민박이 워낙 많아, 더 싼 가격에 손님을 유치하고 입소문을 탈 수 있도록 음식을 잘 챙겨준다고 한다. 그 덕에 편하게 로마에서의 시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7시. 숙소에서 조금 걸어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그곳에 많은 한국인들이 함께 서있었다. 바로 남부 투어를 떠나는 날이었다. 폼페이는 법적으로 개인관광이 불가능하고, 가이드를 동반한 투어만 가능하기 때문에 폼페이를 포함해 이탈리아 남부지방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남부 투어가 유명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 올라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폼페이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고 15분 만에 도시가 화산재에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우리나라는 원래 모습으로 최대한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달리 이탈리아는 부서진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었다. 섬세한 조각상과 설계들이 폼페이 사람들이 얼마나 로마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줘 재앙이 더 처참하게 느껴졌다.
폼페이 유적에서는 베수비오 화산이 잘 보였다. 폼페이 사람들에게 신의 산으로 불리던 활화산이 저 멀리서부터 15분 만에 도시를 재울 것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
폼페이를 통해 고대 로마의 삶을 엿보고, 버스에 올라 나폴리를 지나 쏘렌토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