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위 레몬나무
피렌체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내게 미소를 주었다.
처음 본 사이라도 기꺼이 술자리를 함께하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그 어떤 작은 불편함조차 없었다.
아마도 피렌체와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기울어진 탑을 경유지 삼아 지중해를 향해 북서쪽으로 발을 옮겼다.
피사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들어가면, 라스페치아라는 작은 항구 도시에 닿는다.
이곳은 친퀘테레라는, 줄지어 있는 절벽 마을을 향하는 관문이 된다.
친퀘테레란 '5개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5개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마을들이 가까운 거리로 붙어있다. 첫 마을인 리오마지오레랑 마나롤라는 기차로 5분 거리고, 마나롤라에서는 코르닐리아가 보인다. 보통 베르나차랑 몬테로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기차 스케줄 상 1박을 생각하고 움직인다.
나는 이미 막차까지 2시간 정도 남았을 때 마나롤라에 도착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여행은 포기하고 이 작은 파스텔 톤의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여름이 되면 작은 절벽은 관광객들로 넘친다고 한다. 바다가 그리 깊지 않아,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비수기 여행자의 특권인, 아무도 없는 관광지를 즐길 수 있었다. 보이는 대부분의 집들은 꽤 오랫동안 문을 닫은 것 같았고, 그나마 열려있던 식당들도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불과 오후 3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급박하게 몰아치는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찍고 싶은 사진이 있어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나롤라 역에서 긴 터널을 지나면 마을의 중심부가 나타나는데, 그 중심 끝에 누가 봐도 저길 올라가야겠다는 그런 전망대가 보인다. 그곳에 오르자 한 가정집이 보였는데, 마침 꽃에 물을 주고 있던 백발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정원 구석을 내게 기꺼이 내주었다.
해의 작별인사는 길지 않다. 노랗던 하늘은 점차 붉어지다가, 파랗게 식어버린다.
떨어지는 해 앞에서 파스텔 톤의 마을이 제각각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라스페치아와 피사를 거쳐 다시 피렌체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긴 플랫폼 한가운데에 앉아,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낡은 나무 기차를 기다린다.
눈 앞에 펼쳐진 수십 km의 지중해의 한 켠에서는 비가 오고, 한 켠에서는 날이 개며, 한 켠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 또한 장관이었다.
이렇게 마땅한 수익원이 없는 친퀘테레는 고심 끝에 절벽에 레몬나무를 심는다.
레몬나무는 절벽에서 잘 자라는 특성이 있었고, 이 레몬으로 갖가지 상품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의 새로운 수익원이 되었다. 대표적인 상품은 이탈리아의 레몬 소주라고 불리는 '리몬칠로'였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도 유명한 상품이지만, 나는 꼭 이곳에서 사고 싶었다.
2병을 사서 무려 한 달 동안 들고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
가방 속에서 덜그럭거리는 병들을 보며 조금 마음이 뭉클해졌다.
피렌체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내게 미소를 주었다.
처음 본 사이라도 기꺼이 술자리를 함께하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그 어떤 작은 불편함조차 없었다.
아마도 피렌체와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피렌체로 돌아가자 8시 반이 되었다. 숙소 사람들과 늦은 저녁으로 중앙역 앞에서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며, 피렌체에서의 여행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