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로맨스 인 피렌체

기울어진 탑 : 경유지

by 양옙히

피렌체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내게 미소를 주었다.

처음 본 사이라도 기꺼이 술자리를 함께하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그 어떤 작은 불편함조차 없었다.

아마도 피렌체와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언덕에는 많은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인 신혼부부와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이는 연인만 있었다.

노을이 지는 피렌체를 찍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방문하는 만큼,

나도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하루의 끝을 기록했다.


18_1.jpg ▲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


꽤나 쌀쌀해진 저녁이라, 집 생각이 금방 났다.

숙소를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신혼부부와 제법 친해졌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곳곳을 돌아다니는 용기를 부러워했고,

나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부러웠다.


버스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날만한 골목을 지났고, 가운데는 지하철처럼 통로가 있는 아주 긴 버스였다.

즉, 골목을 돌 때 아주 크게 도는 버스였다.

우리나라처럼 골목에 주차를 하는 것이 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너에 떡하니 경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20분쯤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자, 골목에는 뒤따라 오던 버스들로 가득 찼다.


이탈리아어는 특유의 억양이 있는데, 기사와 탑승객들이 온갖 손짓을 하며

노래를 하듯 대화를 하더니, 이내 장정 6명이 뛰어 내려가 경차를 들어서 인도로 올려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났고,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이라 사진을 찍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들은 토끼눈을 하고 있는 나와 신혼부부를 보며, "쁘리띠, 쁘리띠?"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살다 보니 이런 광경도 보는구나. 인상적인 해프닝이었다.

신혼부부에게 가정 내 평화를 빌며 우린 각자의 길로 떠났다.


18_2.jpg ▲ 다급하게 찍었던 그날의 와인.


숙소로 들어오자, 까만 얼굴을 한 남자 둘이 나와 같은 방에 앉아 있었다.

그들도 그라나다에서 봤던 사람들처럼 까미노를 했었는데, 내게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숙소에서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했다.


여자 방에 있던 또래의 여인까지 불러다가 우리는 근처에 마트가 있는지 둘러보러 나섰다.

워낙 일찍 문을 닫는 유럽의 마트들답게, 작은 구멍가게만이 우리를 반겼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주인장이 우리가 연신 와인에 대해 토론하자, 눈치를 채고 가장 저렴하지만 가장 양이 많은 5리터짜리 와인을 보여줬다. 불과 14.99유로. 2만 원 조금 넘는 와인이었다.

이 술을 어떻게 다 먹을까 싶었는데,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버렸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서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피사가 나온다.

술자리에서 친해진 우리들은 다음날 아침, 피사를 함께 다녀오기로 약속했다.


18_3.jpg ▲ 피사의 사탑.


다음날, 오전 8시에 일어난 것은 내가 유일했다.

'앉은뱅이 술'이라고 불리는 레드와인은 괜히 비싼 것을 먹는 게 아니었다.

싸구려 술은 모두를 숙취에 고통받게 하기에 충분했고, 나는 마음먹은 곳은 꼭 가야 했기에 카메라를 챙겨 피사로 향했다. 맥도널드 치즈버거로 해장을 하며, 조금 더 서쪽을 향하려고 했다. 사실 피사는 그곳을 가기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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