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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May 03. 2021

43 스위스의 강원도

대형마트 COOP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스스로에게도 겸손해야 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겸손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뤼셀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스위스의 동쪽에 있는 취리히에 닿았다. 이왕 6시간 정도 기차 탔으니 3시간 정도 더 타서 바로 인터라켄으로 넘어갈까 싶었지만, 이왕 온 김에 쉬면서 스위스의 도시 생활도 엿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를 여행하면 알프스 산맥을 떠올리고 있지만 사실 스위스에서도 그런 절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따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국토의 70%가 산이지만 산을 보러 강원도를 가듯 말이다. 취리히는 그렇게 무참히 많은 스위스 관광객들의 환상을 부수는 곳이었다.

▲ 취리히의 모습.

취리히는 소위 말하는 '볼 것 없는' 도시였다. 스스로 느끼기에 로마는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많은 유적을 품고 있고, 바르셀로나는 부산처럼 활기가 도는 곳이었는데 취리히는 무색, 무취의 백색의 종이 같은 도시였다.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관광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당시의 유럽은 아직도 20대 초반의 여행객이 적었던 시기였고, 그나마 있어도 인천공항으로의 노선이 있는 대도시 위주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관광객들의 관심이 적은 곳에 가면 한국인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타지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강을 따라 걷고, 호스텔에서 같은 방을 썼던 인도 사람과 포르투갈 사람에게 잘 자라고 인사했다.


▲ 인터라켄 숙소에서 조금 떨어져 찍은 사진.

기차의 한 면이 아주 큰 유리로 되어있는 일명 '파노라마' 기차를 탔다. 스위스 산맥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만약 어제 조금 무리해서 인터라켄에 도착했다면, 누릴 수 없던 행복이었을 것이다.


인터라켄 동(東) 역에 내렸다. 숙소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가보게 된다는 그 숙소, '백패커스'를 숙소로 잡았다. 왜 이 곳이 유명하냐면, 별명이 스위스의 대명리조트이다. 아마도 스위스로 여행 오는 한국인의 상당수는 이 곳에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스위스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북유럽 사람들도 스위스의 물가에 고개를 저을 정도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인기가 많은 숙소는 취사가 가능한 숙소인데, 인터라켄 대부분의 숙소는 취사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백패커스는 취사도 되는 데다 건물도 깨끗하고 아주 큰 호스텔이라 인기가 많다.


▲ 동역에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닿는 인터라켄 성당.

반지하처럼 되어있는 공용 부엌에서는 이미 누군가가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비싼 물가를 이겨내기 위해 COOP이라는 프랜차이즈 대형마트를 이용해야 한다. 마트는 동역 앞에 있어서 짐을 풀고 다시 동역으로 돌아갔다. 마트의 문이 열리자마자 한국 라면들이 종류별로 즐비한 것에서 다시 한번 강원도의 향을 느꼈다.


인터라켄은 취리히처럼 볼거리는 적다. 하지만 다른 점은 놀이거리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이다. 숙소 프런트에서 내일 꼭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나에게 아주 예쁜 미소를 보이며 직원이 "넌 크리스마스에 산에서 내려오다니, 행운이야!"라고 했다.


그랬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2016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 인터라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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