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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May 02. 2021

42 와플은 벨기에

인생은 비눗방울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무지(無知)했기에

여행에 틈이 생기고,

나태함과 그리움은 그 틈을 파고든다.






이탈리아에 베니스가 있다면 벨기에는 브뤼헤가 있다. 브뤼셀에서 기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는 벨기에 북쪽 끝의 도시는 운하를 따라 오밀조밀한 건물을 이루고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지금 반려견 두 마리가 있는데, 이날 예삐가 콩이를 낳은 날이었다. 동물의 삶은 인간과 달라서 예측하기 어렵지만, 힘들게 세 마리를 낳았는데 예삐가 콩이의 오빠들을 출산 직후 물어 죽였다. 먼 타지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듣자 심란함을 가지고 벨기에를 돌아보게 되었다.


▲ 흐로터 마르크트의 모습.

브뤼헤 역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중앙광장 격인 흐로터 마르크트와 브뤼헤 종탑의 모습이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여지없이 열려있었다. 와인 박물관이나 펍을 가볼 생각이었는데, 즐겁지 않은 마음은 여행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저 하릴없이 걸어 다닐 뿐이었다. 


우연히 작은 골목을 들어왔는데, 그곳은 예수의 성혈이 모셔졌다는 순례지였다.

그 앞에는 꽤 큰 광장이 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아주 크게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작은 수입을 만드는 사람들은 유럽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이날의 비눗방울은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 비눗방울을 만드는 아저씨의 모습과 비눗방울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


터질 듯 터지지 않는 비눗방울을 보며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몇 천 키로 떨어진 곳에서 내가 걱정을 해봤자 미래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저 남아있는 콩이는 예삐가 부디 받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비눗방울은 언젠가 터지듯 강아지의 삶과 나의 여행도 흘러가야 할 방향이 있었을 것이다.


조금 힘을 내서 브뤼셀로 돌아오는 길에 겐트도 들렀다.


▲ 겐트의 성 미카엘 성당 앞다리에서 찍은 사진.


겐트도 역에서 시내가 떨어져 있었다. 꽤 걸어서 성 미카엘 성당 앞다리에 도착했다. 운하를 따라 걷는 사람들과 여유로워 보이는 관광객들을 보며 다시 마음을 차분히 정리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무지(無知)했기에

여행에 틈이 생기고,

나태함과 그리움은 그 틈을 파고든다.


나는 벨기에를 그저 네덜란드에서 스위스로 가기 위해 들른 곳이라고 치부하며 잘 알아보지도 않았다. 예삐의 출산 예정일이었기에 온통 신경은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내가 발을 디딘 곳에 무지했고, 그 틈을 나태함과 그림움이 악마처럼 파고들었다. 여행은 '여기서 행복'의 줄임말이라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철이 들려면 한참 멀었다고 느꼈다. 다행히, 예삐와 콩이는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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