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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May 03. 2021

44 스위스의 강원도

액티비티의 천국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스스로에게도 겸손해야 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겸손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라켄은 브리엔즈 호수와 툰 호수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사이를 뜻 하는 'inter'와 호수의 'laken'이 섞인 이름에서부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터라켄은 한국인에게 여름철 최고의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호수에서 물놀이와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에 방문했으므로 비수기에 속하고,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액티비티는 패러글라이딩이었다.


▲ 절벽을 뛰어내리기 전 보이는 알프스 산맥의 모습.

패러글라이딩을 타겠다고 신청하고 17만 원을 결제했다. 다음날 조식을 먹고 오전 8시에 딱 맞춰 나와 함께 절벽을 뛰어내릴 베테랑 파일럿이 도착했다. 차에 나를 싣고 산듬성이를 꽤 올라가자 탁 트인 출발지가 보였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항상 눈이 쌓여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 옆에서 뛰어야 한다 했는데, 이상하게 몇 년째 눈이 별로 안 와서 스키를 제대로 못 탄다고 파일럿은 말했다. 어쩐지 멈춰있는 스키장에서 볼법한 리프트들이 불쌍해 보였다. 


스위스에서는 법적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타면 디지털카메라나 핸드폰 같은 장비는 금지된다고 한다. 추락해서 지상에 있는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내 옷에 줄로 묶은 액션캠만 들고 탈 수 있었다. 이것을 귀신같이 파고들어 하늘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내리자마자 usb에 담아 4만 원에 팔았다. 참으로 귀여운 상술이었다.


▲ 인터라켄 상공에서의 모습.


알프스를 보며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은 학생에게 큰 기회비용이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얼굴을 타고 지나는 시원한 바람과 상공에서 찍은 영상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종종 추억하고 꺼내어 본다. 이때를 그리워하며 단양에서 불과 70%나 저렴한 가격에 패러글라이딩을 해봤지만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영상을 보니 출발부터 땅에 발이 닿기까지 딱 8분이 걸렸다. 너무 일찍 내려와 사진을 받고 파일럿과 인사를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하필 착륙지도 숙소 앞 운동장이었다. 멋쩍게 숙소로 돌아와서는 뭘 할까 고민했는데, 여권 사이에 끼어뒀던 쿠폰이 보였다.


▲ 융프라우에서 만난 까마귀.


쿠폰은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융프라우에 올라가 신라면 블랙을 매점에서 받을 수 있는 쿠폰이었다. 융프라우는 일반 관광객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절벽에 터널을 뚫어 100년 전부터 이미 정상으로 오르내리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신라면이라니, 한국에서 반신반의하며 쿠폰을 챙겼었다.


동역을 간다. 기차는 두세 번 갈아타야 하는데, 융프라우를 가는 기차표를 따로 사야 한다. 패스가 있어도 크게 할인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한국의 한 작은 회사가 배포한 쿠폰이 더 크게 할인됐다. 이 쿠폰을 제시해 할인을 받았는데도 20만 원 정도 지불해야 했다. 스위스는 정말 무서운 국가다.


산을 오르며 그 유명한 스위치백을 겪었다. 지그재그로 기차가 올라가며 가파른 절벽을 이겨낸다. 스키를 타기 위해 잔뜩 장비를 들고 올라가는 스위스 사람들과 섞여 경치를 즐긴다. 문득 올라가는 길에 보인 절벽이 너무 예뻤다. 절벽에서 폭포가 쏟아졌는데 산에서는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진다. 그 시간은 막 절벽을 벗어나 해가 하늘을 향해 나아갈 때였다. 초록색 잔디와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곳은 '라우터브루넨'이라는 곳이었고, 다시 인터라켄을 방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융프라우의 모습.


다음날은 구름이 잔뜩 낀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므로, 이 날 융프라우에 가지 않았더라면 평생 가지 않았을 것이다. 융프라우는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아찔한 설경을 보여줬는데, 매서운 칼바람이 마치 장미의 가시 같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쉽게 보여주지 않기 위한 웅장함이었달까.


박물관처럼 꾸며진 정상 위의 전망대에서 어떻게 올라왔는지 까마귀들이 있었다. 인터라켄으로 다시 내려가

는 막차가 불과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아서 다시 2시간 정도 걸리는 기찻길을 따라 동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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