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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May 16. 2021

49 Happy London

새로운 시작

만약 당신이 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된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 것인가?







파리 북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넘어왔다. 북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무려 '입국심사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입국 심사를 거쳐야 유로스타를 탈 수 있다. 유로스타는 파리에서 런던까지 해저터널을 이용해 이어진 기차로, 도버해협을 건너는 동안 최대 300km까지 달린다. 불과 2시간 30분 만에 런던에 닿을 수 있다. 


여러 좌석이 있지만, 내가 탄 좌석은 4명이 마주 보는 좌석이었다. 내 맞은편에는 4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중동에서 온 연구원이 자신의 7살 된 아들을 데리고 앉아있었다. 2시간은 대화를 나누기 적합한 시간이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소개하자 자신의 큰 아들도 미국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다며 중동에 놀러 오면 꼭 가야 하는 곳들을 알려주었다. 옆에서 아버지와 동양 청년의 대화를 지켜보던 소년은 연신 아버지를 통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꼭 영어를 배워 다른 아시아 사람들이랑 직접 얘기해보고 싶다는 아이의 포부를 듣자 미소가 절로 났다.


▲ 프림로즈 힐에서 맞이한 2017년.


킹스크로스 역에 내렸다. 이 역은 유명 소설 <해리포터>의 배경이 되는 역이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2층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숙소가 나온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이어서 역시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고, 얼떨결에 한 달 전에 한인민박을 숙소로 잡았지만 파리와 마찬가지로 오버부킹을 받았다. 이 숙소는 심지어 더했는데, 2군데로 숙소를 나누어 운영하다가 오버부킹을 잔뜩 받고 손님들을 이 숙소 2개를 오가게 만들었다. 심지어 한인민박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졌던 혼숙 금지가 이곳에서는 당연히 풀렸다. 침대만 비면 사람들을 받아버려서 내 방에는 내 또래의 남자 셋과 여자 한 명이 같이 썼다. 방 크기는 한국의 내 방보다도 작은 곳에 이층 침대 두 개를 뒀으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같이 숙소 주인을 욕하며 금세 친해져, 2016년의 마지막 날을 함께하기로 했다. 런던과 파리, 뉴욕은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새해를 보내기 위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런던은 주로 대관람차인 런던아이와 빅벤 앞에서 몇 달 전부터 출입 티켓을 사서 폭죽놀이를 즐긴다. 당연히 현지인들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아, 나는 진작에 티켓을 사는 것을 포기했고 대신 우리나라의 남산 격인 프림로즈 힐에 올랐다.


그곳에서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했던 현지를 다시 만났다. 현지는 런던을 너무 좋아해 벌써 4번째 방문이었다. 근처 호스텔에서 묵고 있다며, 새해를 맞이하고 내가 한국에 가기 전에 따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많은 영국인들과 한국인들과 2017년을 맞이했고, 시끌시끌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 국회의사당과 빅벤의 모습.
▲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다음날 숙소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나섰다. 2017년의 첫 아침은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지금은 공사로 인해 볼 수 없는 빅벤의 모습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런던의 주요 거리에서는 각종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고, 어떤 식당을 가도 모두 만석이었다.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유럽 사람들이 항상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사람 : 프랑스 공무원, 독일 여자, 영국 요리사.' 프랑스는 행정처리가 아주 느리고 자기들 마음대로라서 그렇고, 독일 여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가정적인 부분이 부족하고 (실제로 독일의 이혼율은 49%다. 여자 어쩌고 하는 내용은 내 의견이 아닌 실제로 계속 들었던 말일뿐이다.) 영국의 요리는 끔찍해서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언뜻 듣기로는 유럽권에서 유행했던 밈에서 파생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궁금했다. 과연 그 끔찍한 영국의 요리, 대표적으로 '피시 앤 칩스'는 어떨지 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거리에 속하는 피카딜리 서커스 옆에 있던 나름 유명한 식당에 들어갔다. 의외로 피시 앤 칩스는 맛있었다. 식당을 나오며 비가 내렸는데, 우산을 쓴 사람들은 우리뿐이었다. 많은 런던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 피시 앤 칩스.
▲ 비가 내리던 런던의 거리.


런던 거리를 걷는다. 사실상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파리나 런던은 유럽에서 손에 꼽히는 큰 도시지만, 서울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도시다. 서울 시민은 어딘가로 이동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부터 해야 하지만 런던의 주요 관광지는 모두 걸어서 다닐만했다. 


한참을 돌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킹스크로스 역에 들렸다. 이 역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해리포터 체험이다. 줄을 길게 서서 담당자가 벽으로 들어가는 카트가 연출된 곳에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이 줄을 기다려야 해리포터 기념품 가게도 들어갈 수 있다. 해리포터에 흥미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가게를 들어가고 싶지는 않던 차에 숙소 사람들과 재밌는 장난을 하기로 했다.


파리에서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공항에서 볼 법한 여행가방 전용 카트가 역 곳곳에 있었다. 킹스크로스 역은 전부 같은 모양의 벽돌이어서 우리끼리 나름의 해리포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대로 하루를 마치기는 아쉬울 만큼 친해진 우리여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있던 펍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축구나 야구를 틀어놓는데, 이곳은 축구를 하는 날이 아니면 다트를 틀어놨다. 신분증 검사는 여권으로 했다. 영국에 왔으니 기네스를 먹어야지 않겠냐며 당당하게 기네스를 주문했는데, 한국에서 캔으로 마시던 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캐러멜 맛이 나던 그 기네스 생맥주는 한국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었다. 신기해하며 숙소 사람들과 계속 마셨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2017년의 첫날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 나름대로 찍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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