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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May 12. 2021

48 파리는 오늘도 맑음

몽생미셸

파리는 지저분한 도시다.

공용 화장실을 사용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고,

도시 곳곳에서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파리를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한다. 숙소에서 개선문까지는 서울로 치면 동대문에서 시청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꽤 먼 거리를 지하철로 가서 졸린 눈을 비비며 투어 버스에 오른다. 이탈리아에서 남부 투어를 할 때는 가이드가 정말 쉼 없이 정보를 귀에 넣어주며 프로 정신이 엿보였는데, 이번에 만난 가이드는 미리미리 자두라며 오히려 사람들을 재웠다.


▲ 옹플뢰르의 모습.

목적지인 몽생미셸에 가는 길에 들리는 곳은 바로 옹플뢰르.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너무나 일찍 출발했기에 여전히 오전이었고, 어부들이 이제 막 물고기 잡이를 나설 참이었다. 추운 겨울, 입김이 절로 나는 시간에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많은 사연이 있을 터였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빵인데, 에끌레어라는 길쭉한 프랑스 빵이 있다. 빵보다는 간식이나 과자에 가깝다. 그 뜻은 '번개'인데, 너무 맛있어서 번개처럼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에끌레어를 전문적으로 파는 카페에 잠시 앉아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 몽생미셸의 모습.

그곳에서 2시간 더 달려 비로소 몽생미셸에 도착한다. 신부님이 꿈에서 천사가 내려와 수도원을 지으라는 명을 받아 짓기 시작한 이 섬이자 수도원은 불과 41명의 사람들만 사는 곳이다. 8세기부터 역사가 이어져 오는데, 처음에는 신부님이 꿈을 안 믿었다가 천사가 계속 나타나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머리를 태워버렸는데 일어나 보니 이마에 구멍이 나있어서 공사에 착수했다고 현지 투어 가이드가 말해줬다.


1년에 350만 명이나 방문하는 이 명소는 영국과 무척 가까운 곳이다. 영국이 이 섬을 점령하고 싶어서 대단히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였지만 단 한 번도 수복한 적이 없어 프랑스 사람들에게 자랑이 된다고 한다.

성은 오래전에 지어졌지만 현대의 기술로도 어렵다는 건축 기법이 잔뜩 들어가 있어 동양의 까만 머리 청년에게 현지 가이드는 자랑스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 몽생미셸에서 바라본 갯벌의 모습.


우리나라 서해처럼 이곳 근처도 조수간만의 차가 굉장히 크다고 한다. 무려 15m인데, 그러다 보니 수도원에서 갯벌을 바라보면 진풍경이 나타난다. 갯벌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의외로 전 세계에서 손에 꼽는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갯벌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불과 오후 4시에 불과했지만 벌써 해는 지고 있었고, 파리로 향하는 버스는 시동을 걸고 있었다. 파리까지는 4시간 반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



▲ 노을을 맞는 몽생미셸.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몽생미셸의 야경을 보지 못한 것이다. 겨울에 갔음에도 이동수단이 없어 야경을 보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기 직전까지도 뒤를 돌아봤지만, 노을을 받아 붉어진 몽생미셸을 보는 것에 그쳤다. 수도원 꼭대기에 있는 황금으로 된 미카엘 동상도 붉어졌다.



▲ 몽마르뜨 언덕과 에펠탑의 모습. 에펠탑의 정중앙 아래에서 찍었다.


도착해 씻을 때 작은 소란이 있었다. 연말이라고 민박집 사장님이 예약을 과하게 받았다. 오버부킹이 된 것인데, 내가 신청한 방은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침대가 없었다. 사장님은 다락방에 2인실이 있으니 거길 일단 쓰라고 했는데, 마지막 날이 되어 문을 열자 그곳에는 웬 커플이 누워있었다. 서로 당황했는데 5층으로 된 오래된 주택을 다시 내려가 공용 주방으로 쓰는 2층에서 사장님을 만나자 짐을 모두 3층으로 옮겼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내 짐에 손을 댄 것도 화가 났고,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남는 침대를 모두 쓰기 위해 과한 처사를 한 것에 모든 손님들이 한 마음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파리는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라서 새롭게 건물을 올리는데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보수공사가 거의 없는 편인데, 내가 머물렀던 건물도 100년 정도 된 건물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짐을 놓는 고생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이런 대우를 받으며 화장실도 모든 층 통틀어 3개밖에 없는데 이를 30명이나 손님을 받아 이용하며 현금으로만 운영하니 더욱 괘씸했다. 유럽 여행을 하면 가입하는 몇 개의 커뮤니티가 있는데, 그곳에 이 사건에 대한 글을 쓰자 수 천명이 공감해줬고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민박집이 이름을 바꾸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게 되었다.


불쾌했지만 호탕하게 파리의 일정을 마무리해가며 몽마르뜨 언덕과 에펠탑에서 파리에게 안녕을 고했다.


파리는 지저분한 도시다.

공용 화장실을 사용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고,

도시 곳곳에서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파리를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했지만, 다시 오기는 어려울 거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이후 나는 파리를 6번이나 더 방문하게 된다. 영원한 안녕은 없나 보다. 그렇게 오늘도 파리는 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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