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만약 당신이 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된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 것인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의 아침이었다. 부산하게 준비해 숙소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한국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마드리드에서 여행을 시작한 나와달리 그들은 런던에서 여행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게 될 미래에 나는 흘러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약 없는 약속을 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서 빨래를 해도 되지만 기념품이나 선물 등으로 자리를 가득 채운 가방 속에 효율적인 정리를 위해 빨래방에 빨래를 맡겼었다. 전날 맡겨놓은 빨래를 가방에 정리하고, 이제 나에게는 필요 없는 유럽 가이드북을 숙소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유럽 땅에 발을 디디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이때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 현지와 점심식사 후 출국 수속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현지와 트라팔가 광장에서 다시 만났다. 내셔널 갤러리 옆 골목을 몇 번 지나 으슥한 곳에 도착했더니 한 식당이 나타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연남동 느낌의 허름해 보이지만 엄청난 인기가 있을 법한 가게였다. 런던에 오면 먹어야 할 음식 중 하나인 랍스터 요리를 현지가 소개했다. 스테이크와 함께 굵게 찢은 랍스터가 들어간 수프를 먹고 런던에서 우리는 헤어져 후에 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세비야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함께 유럽 3대 성당으로 불리는 세인트 폴 대성당은 런던에 있다. 영국의 굵직한 일들은 모두 이 대성당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이루어졌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내부는 촬영할 수 없지만, 쿠폴라에 오르면 좁은 난간을 돌며 런던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가볼만하다.
만약 당신이 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된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 것인가?
마지막 사진을 끝으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는데,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비로소 여행이 끝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8월부터 계획해 11월부터 시작한 여행이었기에 시작은 열정적으로 불타올랐으나 5주 차부터 한국이 그립기 시작했다. 이만큼이나 길게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었거니와 나는 그렇게 길게 여행을 하기에는 성숙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52일의 여행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선선한 바람, 맑아 보이지만 언제든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런던 특유의 날씨. 그 속에서 느낀 오묘한 감정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자 52일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무엇이었다. 감정이란 그렇다. 남들과 비슷하지만 지구 상에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것. 킹스크로스 역에서 문득 뒤를 돌아 특이하게 생긴 건물들을 볼 때도, 비행기가 하늘에서 런던의 모습을 다시 보여줄 때도, 52일의 여행은 머릿속에서 맴도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