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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Sep 14. 2023

넌 진지한데, 난 웃음이 나

장애인 가족 이야기

  작은애는 네 살이 되도록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의사 표현은 울음과 떼쓰기로 일관했다. 아이에게서 엄마 소리 듣는 게 소원이던 시절, 한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아이는 나를 향해 “엄마”하고 불렀다. 그 뒤 부정확한 발음으로 아빠를 불렀고 다음으로 내뱉은 말이 전화기였다. 조금씩 의사 표현이 가능해지자 아이는 뜻밖의 말을 내뱉어 곁에 있던 사람을 뒤로 넘어가게 했다.

  여섯 살 되던 해 아이는 성당 장애아 주일학교 요한반에 다니게 되었다.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을 운동회가 열리던 때 성당에서도 가을 운동회를 개최했다. 나이 드신 분부터 유치부까지 신자들이 모여 일부는 선수가 되고 일부는 응원팀이 되어 한마음이 되던 날. 요한반 역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출전하고 부모는 응원에 힘을 모았다.

  모든 게임이 막바지에 이르러 계주만 남았다. 다들 아닌 척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경쟁심리로 분위기가 뜨끈하게 달궈지고 있었다. 요한반에선 여선생님과 작은애가 대표주자로 선출되었다. 달릴 때라곤 장난감 가게 앞에서 내 손 뿌리치고 안으로 뛰어들 때가 유일했던 아이였는데 계주 선수라니, 따논 당상이 아니라 따논 꼴등일 게 뻔했다.

  앞에 뛰었던 주자가 달려오며 건네준 바통을 받은 선생님이 아이 손을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얼떨결에 몇 걸음 뛰던 아이는 주변의 반응에 놀랐는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장승이 되었다. 다급해진 선생님은 아이를 번쩍 들어 겨드랑이에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장승 놀이하던 아이는 화들짝 놀라 소리를 냅다 질렀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선생님이 바통을 다음 주자에 넘기는 순간까지 아이는 끝없이 외쳤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빙 둘러섰던 사람들은 일시에 폭죽 터지듯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살리란다. 아주 시기적절했던 그 말, 사람 살려!

  아이가 일곱 살 때 여름날 가족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첫날은 바다에서 놀았고, 다음날 한라산에 오르기로 했다. 새벽부터 조금씩 비가 내렸으나 계획한 대로 영실코스로 접어들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인해 오르는 길은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헤치며 우린 하늘로 향하듯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영문도 모른 채 내 손에 이끌리다시피 계단을 오르던 아이는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사람을 발견했다. 그 순간 내 손을 뿌리치고 맞은편 사람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그리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깜짝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뜬금없는 아이의 등장에 그 사람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듣더니 뒤로 넘어갈 듯 한바탕 웃었다. 그리곤 아이에게 한마디 한다. “엄마 손 꼭 잡아라. 너를 살릴 사람은 엄마야.” 엄마는 웃고 아이는 울었다. 나도 같이 울었어야 했나.

  그땐 그랬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그저 신기했다.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언어 치료를 받았으니 아이의 언어와 집 한 채를 맞바꿨다 해도 진실에 가까운 표현이다. 그나저나 작은애는 이런 말들을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앉아 세상의 일은 관심 없는 듯 외면하던 아이였지 않은가. 소리로 인지했을까? 아니면 문자로 학습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TV에서 들리는 소리를 차곡차곡 어딘가에 저장해두었던 걸까. 그래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나름 적절하다 싶은 단어로 구사할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어 감사하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소나기가 내렸다. 다급해진 마음에 작은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그러는데 우산 좀 갖고 나올래?” 잠시 대답이 없다. “우산 좀 갖고 나와. 비 맞기 싫어” 뜸 들이던 아이가 한마디 하더니 전화를 뚝 끊었다. “검은 비닐봉지 쓰고 오세요”

  아닌 밤중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녀석이 방금 뭐라고 했더라. 검은 비닐봉지? 그걸 쓰고 오라는 말은, 그러니까 귀찮다는 말인 거지? 못 나오겠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 맞지? 너 많이 컸네. 애 둘러 표현할 줄도 알고 말이야. 넌 어쩌면 진지하게 거절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난 자꾸 웃음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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