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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Jul 05. 2024

반갑다 꿀벌아

살아가는 이야기

  비가 뜸한 오후 시간, 아이들과 옥상 놀이터 겸 텃밭에 올라갔다. 어제까지 비가 내려 텃밭의 흙은 촉촉한 상태다. 시든 채소 가지와 잎을 제거하려 살피는 사이 아이 몇이 우르르 내 곁으로 다가와 관심을 보인다.

  “선생님 지금 뭐 해요?”

  “응, 시든 잎 떼어내고 있어.”

  “왜요?”

  “……”

  대답이 궁색해진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난 왜 시든 잎을 떼어내고 있는 거지? 머뭇거리는 사이 한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친다.

  “으악! 선생님 벌이 있어요!”

  주변의 아이들이 순간 그 아이 손끝으로 시선을 옮기며 어디? 어디? 외친다. 나도 덩달아 그쪽을 바라보며 왜요라는 질문에서 벗어났음에 안도한다.

  꿀벌은 아주 작았다. 어른의 시선에는 띌 일이 없는,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듯 작고 작은 아기였다. 잠깐 날갯짓을 하더니 지쳤는지 허브 꽃대에 앉아 날개를 접는다. 그것도 잠시 본능처럼 주둥이를 꽃술에 대고 움찔거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이가 손을 뻗어 날려버리려는 동작을 취한다.

  “하지 마!”

  나도 모르게 아이의 행동을 제지한다.

  “왜요?”

  다시 날아온 ‘왜요’. 또다시 당황한 나.

  “아직 아기 꿀벌이야. 손 내밀면 자기를 잡으려는 줄 알고 깜짝 놀랄걸?”

  아이는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리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지켜본다. 나에게도 저런 순한 눈길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 가을날 하교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엔 코스모스가 즐비했다. 다양한 빛깔의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한들거렸다. 친구들과 어떤 색깔이 더 예쁘냐 내기도 하고 꽃잎을 한 장씩 떼어내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보내며 누구 꽃잎이 더 멀리 날아가는지 내기도 했다. 그땐 꽃잎에 앉아 열심히 꿀을 빠는 벌이 제법 많았다. 한 친구가 그 벌을 잡겠다며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꽃잎 위의 벌을 낚아챈 뒤 쥐불놀이하듯 있는 힘껏 팔을 돌렸다. 팔이 아플 만큼 휙휙 돌린 후 바닥에 냅다 던지면 신발 속에서 돌림 당하던 꿀벌은 어지러운지 날지 못하고 날개만 파닥거린다. 그 틈을 이용해 잽싸게 벌을 잡아 올려 꽁지의 벌침을 빼내고 입을 들이댄다. 시큰 달큼한 맛의 오리지널 꿀맛이다. 그 짓은 누구나 할 순 없다. 자칭 용기 있는 아이만의 특권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나도 그 몇몇에 끼어있긴 했다. 속으론 움찔움찔하면서.

  요즘도 그런 객기를 부리며 으스대는 아이가 있을까? 꿀벌이 주변에 나타나기만 하면 지레 무서워 소리치며 도망가고 잔뜩 긴장한 채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우리 집 큰애도 벌이 무서워 숲에 가는 걸 극도로 싫어했었다. 커서도 그런 모습은 여전해 벌을 피해 팔을 휘저으며 호들갑을 떨기에 넌 군대 가면 벌을 향해 총 쏠 놈이라며 놀리곤 했다.


  요즘엔 벌이 귀하단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생물들이 점차 사라져 꿀벌 보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나마 내가 근무하는 어린이집 주변은 숲이 있어 꿀벌을 자주 목격한다.

  이 작고 작은 꿀벌은 어디쯤에서 길을 잃어 이곳까지 날아왔을까. 내 곁의 아이는 숨소리도 작게 내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모습이 예뻐 아이와 꿀벌을 카메라에 담는다. 탐색을 마친 아이는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가고 난 여전히 꿀벌 곁에 남아 연신 사진을 찍는다.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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