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을 접한 느낌은 아이의 시선에서 읽힐 수도 있지만,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란 느낌이 들었다.
첫 장면에선 단풍잎이 흩뿌려진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의 풀 죽은 모습이 담겨있다.
낙엽이 방 안에 가득 쌓여 있어 밖으로 나가려는 소녀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밖의 상황 또한 점점 나빠지고 있다. 검은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물고기와 어른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는 여자아이.
답답하고 어두운 벽과 벽 사이로 표정 없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정처 없이 떠돈다. 회색의 섬들 사이에서 유리병에 갇혀 홀로 신음하는 모습을 한 아이와 각각의 투명한 유리 벽에 갇힌 채 타인을 외면한 사람들.
저마다 고개 숙인 채 자신의 불행에 빠져 허덕이며 타인들의 외침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이방인들이다. 저 혼자 오롯이 겪어내는 삶은 늘 외롭고 어둡고 무겁고 힘들기만 하다.
그렇지만 저마다 가슴 속에는 꺼지지 않는 밝은 빛을 하나씩 품고 있다. 그 빛은 자신의 어둠을 밝힐 수도 있고 타인의 길을 밝힐 수도 있는 소중한 빛이다. 하지만 철갑으로 채워진 단단한 벽으로 인해 밖으로 새어 나갈 틈이 없다. 째깍째깍 초침의 움직임처럼 하루의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철컥거리며 돌아가는 기계음 같은 삶 또한 차갑고 두렵기만 하다.
이 답답하고 빛조차 통하지 않는 회색빛 콘크리트에 갇힌 사람들은 서로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기만을 기다리지만, 그것 또한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은 헛된 바람일 뿐.
그 안에서 홀로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섬 안에서 점차 화석이 되어간다. 계절이 흐르며 변해가는 세상의 색채들을 바라본 지가 언제인지, 오색찬란한 세상을 내가 겉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과 내가 뒤섞여 탁한 색채로 변해가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림책 속의 소녀, 어쩌면 무의식 안에서 울고 있는 자신의 가장 여린 내면의 자아는 반복해서 묻는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얻고자 살아가는 걸까. 반복되는 질문 속에서 힘겹게 버틴 하루가 저물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또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잔뜩 풀 죽은 소녀는 타인과의 관계를 스스로 차단한 채 처음 시작되었던 자신의 방으로 쓸쓸히 돌아온다. 그래, 이만하면 잘 버틴 거야. 이렇게라도 견뎌냈으니 다행이지, 위안하며 자신의 가슴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빛을 꺼내 어두운 방 안을 밝힌다.
그 순간 밝은 빛 사이로 꿈틀거리며 붉디붉은 나무 한 그루 방 한가운데서 움을 틔운다. 그렇다. 모든 불행의 원초는 내 안에서 시작되었던 거다. 그러니 불행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바로 나다. 내 안의 순수한 어린아이에겐 그만한 힘이 있다.
어른아이로 살아가는 각박하고 숨 막히는 세상은 늘 힘겹고 버겁지만, 내 안에 잠재한 희망의 씨앗은 척박한 의식 너머에 있는 어린 자아와 함께 날마다 비옥한 대지 위에 희망의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