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에서 문을 열다
우리 아이 두 명과 우리들의 가정집에서 작은 도서관을 개관했다.
우리 집은 길가에 위치한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높은 담장과 양문형 대문이 있었던 집이다.
나는 당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던 아들들에게 도서관에서 성장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담벼락을 헐고 대문을 떼어낸 후 길가로 향한 베란다를 없애고 한쪽면에 유리벽을 만들었다.
베란다를 없애니 거실이 제법 넓어졌고 다섯 칸 방들 중에 주방을 경계로 주방 안쪽에 있던 방 두 칸은 아이들과 내가 생활할 공간으로, 주방 바깥쪽인 거실에 붙은 방 세 칸이 도서관으로 꾸며졌다. 이처럼 낡은 집을 변신시키는데 비용이 꽤나 소비되었다. 어찌 보면 사치스럽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돈이 많아서 한 것이 아니라 모두 간이 큰 여자가 은행 대출을 받아 야심 차게 벌인 일이다.
당시 남편은 지방으로 내려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남편도 책벌레였기에 싫어하진 않았으나 대출에 대한 부담감은 드러냈다.
그래도 자녀를 양육하고 지역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함인데 낯붉힐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보기엔 하찮아 보였을지라도 개인이 자부담으로 도서관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실내 벽을 독일제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하고 높은 책장 다섯 개, 맞춤형 낮은 책장을 세팅하고 방방마다 원목자재 탁자를 배치했다. 물론 의자는 사용하지 않았고 보일러가 빵빵한 방바닥에 앉는 구조였다. 책들은 기존에 있던 아동도서 1500여 권에 성인도서 1000여 권?으로 대충 2000여 권이 넘게 비치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지자체 중앙도서관에 도서관 등록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는 가정집이지만 지역에 공공성을 띤 곳으로 승인받기 위함이다.
도서관 사서공무원이 도서관 실사를 나와서 줄자로 평수를 재고 환경 구성을 점검하고는 하자가 없으니 일주일 후에 도서관 등록증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가정집에서 특별한 작은 도서관이 탄생하였다.
이용자를 기다리다
우리 집에 도서관을 개관한 때만 해도 벌써 15년 전 일이다.
나는 누군가 방문할지는 모르지만 회원가입서와 이용자 방명록, 도서대출장부, 후원신청서 등을 직접 제작하여 비치했다.
길가로 향한 베란다 유리창에는 도서관 이용안내문을 부착하고 "이곳에 당신을 기다리는 책들이 있어요!"라는 홍보문도 부착했다.
얼추 도서관 환경이 갖춰지고 나니 이제 도서관 운영진이 필요했다. 도서관 관장은 당연히 내가 맡기로 했다. 그리고 함께 의논할 운영위원도 필요했다. 나는 남편에게 강제적으로 운영위원장을 맡기고 운영위원으로는 빈번하게 만나는 지인들을 섭외했다. 드디어 도서관 환경과 조직이 마무리되었다.
그때까지 새내기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뺐다 꽂았다 하는 이용자는 5세, 6세 우리 아들들이 전부였다.
나는 도서관을 세우고 나서 처음엔 우리 아이들이 소중한 이용 자라는 걸 망각하고 외부 이용자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하지만 도서관을 개관하고 한 달이 넘어가도록 외부 이용자는 바깥에서 겉돌며 구경만 할 뿐 회원등록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이용자를 기다리다 지레 지쳐서는
"그래 이용자가 없으면 어때! 내 아이들이 이용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책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도서관이자 집에서 하루 일과를 지루하지 않게 지냈다.
드디어 이용자가 왔다!!!
어느 날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하원하며 친구들을 도서관으로 데려왔다. 아이 친구가 하는 말, "저는요~ 정호가 자기 집이 도서관이라고 해서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오지 않는 도서관을 아들이 자신의 유치원 친구들에게 홍보한 것이다.
"우리 집엔 책들이 마~않다고..."
그 후로 아이들은 줄곧 도서관에 책 읽으러 오는 것은 아니지만 놀러 왔다.
"저 도서관에 놀러 와도 돼요?"
"물론이지..."
도서관에 놀러 온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책을 여러 권 뺐다 꽂았다 하고는 포켓몬 딱지치기며 보드게임 등을 하다 돌아가곤 했다. 아이들이 올 땐 그의 어머니가 동반하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가 오실 땐 어김없이 회원등록을 받았다.
이용자들의 행복한 놀이터가 되다
나는 아직 어린이 이용자들만 있는 도서관 관장이었을 때다. 아이들이 유치원, 학교에 있을 동안 도서관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나는 관장으로서 정보수집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모임에 끼웃거리기도 하고 때론 도서관 운영자 교육에도 참여하며 지역주민들에게도 다가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알차게 보내며 도서관장으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 건 "독서지도사 자격증"이었다. 나름 당시엔 수강료가 꽤 비싼 교육과정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나는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우리 작은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사가 되어 아이들을 지도했다.
첫 수강생으로 우리 아이 두 명과 아이들 친구 두 명, 넷이서 나의 독서지도를 받았다. 물론 나는 우리 도서관 이용자들에겐 무료 지도를 해줬다.
수강료는커녕, 독서 지도하랴 떡볶이 만들어 먹이랴 무료 간식 제공까지... 아이들의 어머니들에겐 믹스커피와 아이들이 남긴 간식이 제공되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도 도서관 생각만 하고 어머니들도 아이들이 귀가하면 "얘, 도서관 가자!"라고 한단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서 순식간적으로 어린이와 학부모 이용자들이 50~60명으로 증가했다.
갑자기 늘어난 이용자들로 내가 힘들어할 때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관장님, 저희는 여기 도서관이 너무 좋아요! 날마다 도서관 생각만 한다니까요~ 도서관을 알게 되어 얼마나 행복하지 몰라요."라고 약을 먹인다.
지쳐가던 나는 어머니들의 너스레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 다시 기운을 올렸다.
날마다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 어머니들 수다 소리
병아리 도서관이 어느새 이용자들에게 행복을 제공하는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