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엔 둥지를 잃은 천사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둥지는 새들의 보금자리다. 새가 새끼를 낳아 따뜻하게 품어주는 곳이 바로 둥지다.
재작년 겨울에 우리 집 베란다에서 짹짹 거리는 소리가 요란해서 다가가보니 베란다에 걸린 에어컨 실외기 틈새에겨울 철새가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는 그 둥지에 새끼를 여러 마리 안겨두었다. 며칠 동안 소란스럽게 찌르르 까르륵 짹짹거렸다. 그때마다 무슨 일인가 가보면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와 아기새들의 입에 넣어주면 아기새들은 서로 먼저 받으려고 주둥이를 내밀고 짹짹거렸다. 그 광경은 가히 모성애가 발휘되는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창틀을 목격했을 땐 아기새들도 둥지를 떠나가고 없었다. 그저 창틀에 크고 작은 새똥만 가득 묻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찡그려진 채 남편과 함께 빈둥지를 부서뜨린 뒤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 아뿔싸! 그런데 얼마 후 아기새와 어미새가 둥지가 있었던 창가를 맴돌며 짹짹거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 부부는 새들을 향해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이젠 지저분한 둥지를 다시는 만들지 않았으면 생각했다.
어미새는 또다시 어딘가에서 흙을 물어다 둥지를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주인(남편)이 훼방하는 바람에 어미새는 집 짓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고 있던 미아(가명)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제법 거들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만 아기였을 때 엄마와 헤어진 미아는 엄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비록 한부모와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어둡지 않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일하러 나가셨던 아빠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부녀가 지내던 집은 월세였는데 월세가 밀리자 집주인은 아이에게 찾아와 말했다. 아빠가 계속 나타나지 않으면 집을 비워야 하니 친척집으로 가던지 하라고 말이다.
미아는 연락처를 알고 있는 친척이 없다. 그저 아빠를 찾아 학교가방을 멘 채로 여기저기 방황했다. 그러다 가출하여 방황하던 언니 한 명을 만났고 그 언니와 지내다 집으로 갔는데 이미 그 집은 새로운 자물쇠가 잠겨있었고 집주인은 밀린 월세를 가져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 미아는 더 이상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집 잃은 천사처럼 갈 곳 없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 노숙하며 길가를 떠돌다 도움의 손길을 통해 일시적인 아동보호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미아의 이야기는 아동보호생활시설 1일 대체근무지에서 아이를 재우려고 함께 있다가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던 아이에게서 듣게 되었다. 그 후 미아가 아빠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출했다가 둥지를 잃어버리는 일은 새들만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 밤이었다.
적어도 세상에 태어나 내가 기거할 곳 정도는 나라가,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아가 아빠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빠와 함께 지내던 집이었을텐데 그 집이 주인에 의해 회수당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제 손으로 만든 세상이 아니면서도 제 것이라고 주인행세를 하도록 인정해 주는 사회, 자연을 개인이 소유하게 하는 사회적 제도는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집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