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2023년 12월 9일, 밴쿠버에 첫눈이 왔다. 밴쿠버는 기후적으로 다른 주보다 따뜻하기 때문에 겨울에 눈보다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서 오히려 눈이 오면 사람들은 신기해하기도 한다. 2008년 처음 캐나다로 여행 왔을 때 53년 만에 대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눈이 말 그대로 허리까지 왔었고 제설시설이 준비되어있지 않아 모든 교통시설이 마비가 될 정도였다. 그때부터 정부에서 슬슬 제설시스템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인해 많이 피해를 겪고 있다. 밴쿠버도 이제는 더 이상 레인쿠버(raincouver)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겨울에 눈 내리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고 우산만 팔던 겨울에 이제는 눈썰매나 스노 shovel을 팔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스노 타이어가 없으면 안 되는 그런 환경이 되어버렸다.
오래전 밴쿠버에 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겨울에 비만 오기 때문에 우울해진다고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53년 만에 폭설이 내리던 날, 늘 회색이었던 세상이 흰색으로 덮이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했다. 밴쿠버의 눈은 누군가에게는 작은 기쁨을 주기도 한다.
눈이 올 때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오래전에 필자가 워크퍼밋으로 밴쿠버에 지냈을 때, 한인마트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버스를 타고 스카이트레인(지하철) 역까지 가야 했었다. 밤 9시에 일을 끝내고 버스를 타야 했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눈 때문에 버스가 언덕을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하는 수 없이 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역까지 가야 했다. 그날 계속 눈은 내리고 있었고, 마치 역까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피난민처럼 보였다. 스카인트레인을 타고 필자가 살고 있는 역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야 했었는데, 역시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새벽 1시가 넘도록 버스가 오지 않아 밖에서 덜덜덜 떨면서 기다려야 했다. 솔직히 그날 어떻게 집에 갔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경험상 2월이 가장 추운 겨울이었고 그달에 눈이 많이 내렸던 것 같다. 이제 첫눈을 맞이했다. 앞으로 더 내릴 눈이 아직까지 구름 속에 수두룩 저장되어 있을 테지. 생각해 보니 첫눈이 아닐지도 모른다. 1월이나 2월에도 눈은 내렸을 테니까. 그럼 마지막 눈이라고 해야 하나? 내 친구에게 작은 기쁨이었던 이 눈들이 나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