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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작가 Aug 09. 2022

[Chapter.1]’자존감’이 뭐예요?

-당신은 100원만큼 소중한 사람

현대 사회의 경쟁과 견제 속에 점점 지쳐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을 치유할 힘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존감이 흘러넘친다 싶을 때, 그때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때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아마 자신의 존재 이유를 긍정적인 면에서 찾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에서 찾은 적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실수를 했을 때, 어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기대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당신은 당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하죠.
'나는 왜 살지? 이럴 거면 왜 태어났지?'
너무 극단적이라고요? 그러나 학창 시절 때이든 직장생활 때이든, 적어도 한 번쯤은 무심코라도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묻습니다. 답을 찾을 때까지요. 바로 답을 찾지는 못하고, 시간을 흐릅니다.그러다 어느 날, 좋은 성적이 나왔을 때, 퇴근하고 시원한 맥주를 한 캔 따서 마실 때, 너무 힘든 날 귀여운 딸/아들이 고사리손으로 안마를 해줄 때 우리는 이렇게 느낍니다.
'아, 살맛 난다! 내가 이 맛에 살지!'
'나는 왜 살지?'라는 질문에는 바로 답하지 못했지만 답을 찾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덯게든 답을 찾아내고, 깨닫거든요. '나는 왜 살지?'라는 질문에 '우리 딸이 어제 내 어깨를 주물러줬거든.'하고 행복해하며 대답할 수 있잖아요. 맞아요, 당신은 단순한 사람입니다. 맥주 한 캔과 한 장 짜리 성적표로 존재의 이유를 찾는 단순한 사람이요. 칭찬이냐고요? 네, 엄청난 칭찬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사소한 일에도 역경을 딛고 일어설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건 정말 많습니다.
유년시절에는 밝은 성격과 예쁜 말투가 필요하고요, 학창 시절에는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암기력이 필요하고요, 어른이 되어서는 스스로를 지키고 누군가를 지킬 힘이 필요합니다. 이것들 외에도 우리가 가져야 할 것, 가지고 싶은 것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머리가 아프죠? 모두 다 자기 자신이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살아가면서 정말 불필요한 것은 딱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자책, 원망, 그리고 후회. 어떤 순간에 우리가 움츠러들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원흉들이니까요.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순간, '다음'이라는 개념이 뭉툭해지고요. 나 또는 타인을 원망하는 순간, '부정'의 굴레에 갇히게 되고요. 내가 한 모든 것들을 후회하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한 것들이 모두 덧없이 느껴집니다.

이 불필요한 것들을 내 마음속에 너무 과하게 지니게 될 때, 우리는 '심리상담'을 받으러 전문가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그곳에 가면 내 비밀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게 되고, 진단을 받아서 약도 받고, 그 약 덕분에 내 마음은 안정되죠. 좋은 자세입니다. 내가 나의 상태를 알고 치료받으러 간다는 것, 그거 의외로 어렵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가 사겼던 친구 중 무척 불안정하고 불안해하곤 친구가 있었어요. 고등학생의 삶이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마냥 청량하고, 밝지는 못합니다. 그 친구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지니고 있어서 밤새 뒤척이고, 힘든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그런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런 친구가 심리상담소를 몇 달 꾸준히 방문하시더니 눈에 띄게 나아진 거 있죠? 저는 전문가님의 말 몇 마디와 약 몇 알이 사람을 바꿔놓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또한 친구 옆에서 많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줬는데 말이죠. 그리고 내린 결론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면 심리가 이용된다.'라는 결론이었어요. 제가 말하는 이용은 결코 나쁘게 휘두른다는 뜻을 가진 이용이 아닌, 환자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자신이 자신의 심리 속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고, 탈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은 여러분의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분을 그 굴레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이용하시는 것이죠

이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용하는 것' 즉, 내 심리를 내가 다룰 줄 아는 것. 이것이 어려워서 우리는 헤매다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이고, 덕분에 해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이에요. 여러분도 알 겁니다. 내 마음인데, 내 감정인데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정말 많아요. 그때마다 좌절해서는 안되고 아기를 다루듯이 살살 다뤄야 합니다. '자아 존중감'이라는 거요,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자아존중감을 욕심내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을 3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제 삶의 초기 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그때 한창 저를 과소평가할 때였어요. 과대평가를 해도 모자랄 시기에, 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자만과 오만에 빠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는 자기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에 많은 기대를 해도 되는데, '겸손함' 그 하나만 보고 '내가 이 정도 하는 것은 잘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이만큼 한다.'라는 잘못된 마음가짐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이때 저도 모르게 자존감이 약간씩 떨어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를 인정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는 자존감이 낮은 건 아니야.'라는 말을 되새기며 정신승리를 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힘이 쭉쭉 빠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죠. 그다음 중기 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무언가를 깨우치고 나서는, 저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무턱대고 과대평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나를 믿고 인정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인정과 자만을 연결시켰던 제가 억지스럽다고 느꼈어요. 인정을 나를 떠받드는 게 아니라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인데 말이죠. 자신을 인정해야 반성할 수 있고 겸손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말기 단계는요, 제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이 저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 제 의지로 저를 과대평가하기 시작했어요. 환경에 휩쓸려하는 과대평가는 '나는 최고이고, 내가 제일 잘났어.' 하는 그릇된 생각이 뇌뿐만 아니라 온몸을 지배하게 합니다. 단지 운이 좋아서, 우연의 일치로 자신이 시도하는 일마다 모두 잘 풀릴 때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되면 자기 통제력, 즉 조절할 수 없게 되거든요. 그럼 제가 했던 과대평가는 무엇이냐 하면, 일종의 '주문'같은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해이해지고, 심리 상태가 불안했을 때 제가 제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죠.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 더하여 과대평가를 하는 것이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견제와 경쟁 속에서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었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제게 말씀해주신 것 중 가장 와닿았던 것이 있습니다. "연아, 나를 부정하는 순간 그때부터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작아 보인다."라는 말씀이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때 춘추가 60을 바라보고 계셨고, 저는 아주 어린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그러자 점점 커가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낙담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제 운명을 부정하고 존재를 부정하고 환경을 부정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 부분에 더 능통하고 똑똑하게 태어났다면, 내가 모든 것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하며 계속 제게는 해당되지 않는 '만약'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이라는 것은 상상 속의 상황일 뿐이죠,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제가 바라고 선망하는 그런 가상의 세상. 하지만 그 상상은 부정이 됩니다. 자꾸 제 머릿속에 가상의 현실을 가꾸면서 실제 운명과 존재, 그리고 환경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죠. 할머니가 제게 말씀해주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깨달았을 즈음에는,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정말 보고 싶고 그리웠어요. 제 평생의 롤모델이자 가장 멋진 사람, 할머니가 이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저도 모르게 작아지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깨닫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지치고 힘들 때, 주변에서 흔히 건네는 말이 있죠. '괜찮아, 힘내. 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제삼자의 입장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이고 단순한 말, 물론 이 말들이 고맙고 정말 힘이 될 때도 있습니다.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여러분에게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약이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왠지 섭섭하고,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지는 않는 것 같고, 가벼워 보이기도 합니다. 참 웃기죠, '응원을 해줘도 서운해하는 것은 무슨 심보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 정말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리고 그 상황 자체에 집중해보세요. 그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해줬으면 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아마 응원보다는 공감, 안쓰럽고 슬픈 표정보다는 진심 어린 위로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이 말을 건네려고 합니다. '당신은 100원만큼 소중해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지? 엥?' 하는 반응일 것입니다. 의아하고, 미묘하고, 애매한 말. 100원이라고 하면 고작 작은 동전 하나, 5.42g 백동 덩어리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100원은요, 손가락 하나로도 들 수 있는 100원은요, 우리가 꼭 필요할 때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다들 마트 가보신 적 있으시죠? 대형마트는 워낙 커서 많은 물건을 담게 되고, 큰 카트가 필수입니다. 그때 대형 마트의 카트를 사용하려면 꼭 넣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100원' 동전입니다. 또, 마트에서 장을 다 보고 계산까지 마쳤을 때 직원 분은 이런 말을 건네십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저는 대답하죠. '네! 봉투 얼마예요?' 그럼 들려오는 한 마디. '100원입니다.'
이때 저는 당황합니다. '카드로 고작 100원을 결제하긴 아깝고, 내 지갑 속 현금은 10000원짜리 밖에 없고, 깔끔하게 100원짜리 동전 하나 드리면 정말 좋을 텐데, 하필 그럴 때 100원은 어디에도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9,900원짜리 물건을 사고받은 100원을 저금통에 소중히 모아놓는 습관까지 생겼습니다.
100원 말이죠, 정말 작은 동전이고 평소에는 쓸데없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의 모든 백동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딱지 뒷면 동그란 구멍 속 100원을 넣으면 더 잘 뒤집어지고, 그 흔한 100원이더라도 길에서는 쉽게 주울 수 없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여러분이 평소에는 자기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고 한심할 때가 있다 싶다가도 여러분은 어디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당신은 가치 있고 높은, 필수적인 존재예요. 저는 여러분을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성격도 알 수 없고, 이 글을 읽는 당시의 심리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은 귀한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우리 너무 뛰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수많은 무리들 중에서 가장 튀는 한 사람이 아니어도 돼요. 조금 뒤처져도 되고, 많이 늦어도 되고, 또 가끔은 당신이 100원짜리 동전처럼 작아도 됩니다. 그래도 당신은 언제나, 항상, 매 순간순간이 '100원만큼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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