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같이 걷는 느낌을 받는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나는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우리 동네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입석이 불가능한 광역버스를 타야 한다. 예전에, 9시 반까지 삼성역에 갈 일이 있어서 우리 동네에서 잠실로 가서 지하철로 환승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내가 타려는 정류장에서 버스의 좌석이 꽉 찼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광역버스를 많이 보내야 했다. 대안으로 신논현역으로 가려고 했지만 내가 타는 정류장에서 만석이 되어 집에서 7시에 나왔음에도 만석인 앞에 버스 다 보내고 10시 30분이 되어 삼성역에 도착을 하였다. 그래서 저번주에는 중부시장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으나 다행히 출근시간에는 버스가 여러 대 있어서 일정에 맞게 서울로 갈 수 있었다.
왜 서울 가서 그걸 사요?
저번주에는 연차를 쓰고 중부시장에 다녀왔다. 여기서는 주로 건어물을 사는 편이다. 그 날은 멸치, 새우, 황태채, 다시마, 멸치진젓을 샀다. 서울까지 가서 사는 이유는 그래도 전통시장이 없는 신도시보다 중부시장의 가격에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건어물 가격이 총 1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용대리 황태채도 동네보다 반값이며, 알이 있는 멸치도 동네보다 반값이고, 두꺼운 다시마도 시장이 더 싸다. 멸치가게에서 건어물을 선택하고 집으로 직접 들고 가기 무거울 수 있으니 사장님은 집으로 택배를 부쳐 주셨다.
마음에 드는 2026년 플래너도 샀다.
또한, 2026년 플래너는 온라인으로 사면되지만 서울에서 다이어리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조그마한 다이어리도 하나 샀다.
회사에서 상품권 준 백화점은 우리 동네 근처에 없다.
현재 회사는 복지가 딱 2개 있는데 생일과 결혼기념일 각각 3만 원씩 백화점 상품권을 준다. 그런데 이 상품권을 쓸 수 있는 백화점이 동네에 없어 상품권을 중고거래사이트에 10% 할인해서 올렸더니 3만 원짜리를 가지러 차를 끌고 우리 동네까지 오지 않는다. 이 상품권으로 음료를 먹기에는 좀 돈이 아깝긴 했다. 그래서 플래너를 사고 잽싸게 버스 환승을 해서 백화점에 가서 상품권을 쓴다.
서울에서 5시 이전에 무조건 버스를 타야 한다.
예전에 아내와 서울에 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서울에서 무조건 4시에 출발하자"가 목표이다. 왜냐하면 퇴근 시간이 되면 또 광역버스의 좌석전쟁을 해야 하고 고속도로 입구부터 집근처 정류장까지 밀리기 때문에 서울에서 4시쯤에 버스를 타야 좌석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아내에게 차라리 저녁식사는 집 근처에서 먹고 집으로 들어가자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지난 주에는 마지막 일정으로 동생과 잠깐 카페에 갔는데 버스 어플을 켜고 버스 배차시간에 맞추어 차를 마셨다. 서울 사는 분들은 지옥철의 전쟁을 느끼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출퇴근이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오늘도 나는 서울에서 15,000 보이상을 걸으며 서울을 종횡무진하였다.
서울시내의 고목은 나보다 많은 사람을 스쳤겠구나..
서울을 갈 때마다 내가 걸었던 길을 다시 가보면 그 길은 그대로 있지만 세월이 지나 지금의 걸었던 느낌과 그때의 걸었던 느낌이 다르다. 서울에 갔다가 가끔 시간이 남아 덕수궁 돌담길을 들러 산책을 간다. 예전에 돌담길을 걸었을 때는 가벼운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그 가벼운 기분이 점점 무거워져 세월의 무게마저 느껴진다. 서울을 갈 때면 길을 스쳐가며 과거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떠올라 과거와 지금 걷고 있는 내가 같이 걷는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덕수궁을 돌담길을 걸으면서 많은 흔적들을 스쳐 보냈고,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잠시 이 길을 빌려 위로를 받고 갔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여러 이유로 서울에 돌아갈 수 없지만 서울은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로 느껴진다. 인공적인 아파트들이 즐비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나중에는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수직적인 느낌은 미래에 어떤 인상으로 남겨질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