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조금은 빛나게

3 “나는 뇌전증 환자이기도 하고, 그냥 ‘나’이기도 하다”는 고백

by 박하루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설명하는 데 ‘뇌전증 환자’라는 정체성을 우선으로 내세우곤 했다.

어쩌면 그건,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고,

설명하고 나면 거리를 두려는 시선들에 먼저 선을 긋기 위한 방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그 병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조심하고,

때때로 불안을 껴안은 채 살아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커피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계절이 바뀌는 소리에 설레는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엔 “나는 뇌전증이 있어”라는 말을

속삭이듯 내뱉었지만,

지금은 그 문장 끝에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를 자연스럽게 붙일 수 있게 됐다.


뇌전증 환자인 나도,

좋아하는 색이 있고,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지루한 하루를 견디는 저녁의 루틴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프지 않은 순간에는 웃고,

마음이 괜찮을 때는 농담도 한다.


어쩌면 그게 내가 살아가며 배우고 있는 가장 단단한 진실이다.

질병이 나를 규정할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채우며 살아간다.


나는 뇌전증 환자이기도 하고,

그저 나이기도 하다.

이 문장을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참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이 고백이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건강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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