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으로 나아가기
한때는 하루를 무사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조금만 어지러워도, 머리가 멍해져도
’혹시 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불안 속에서 깨어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겐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 다르다.
아직도 약을 먹고, 조심하고,
가끔은 불안 속에 잠을 청하지만
더는 그 불안만으로 하루를 덮지 않게 되었다.
하루를 시작할 땐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하루를 마칠 땐 저녁에 눈을 감는 일이
이젠 단순한 생존의 과정이 아니라
‘살아가는 하루’의 한 조각이 되었다.
예전엔 모든 계획 앞에 ‘혹시’라는 단서를 붙였다.
혹시 발작이 오면 어쩌지.
혹시 몸이 안 좋아지면 어쩌지.
그래서 모든 기대와 설렘도 반쯤은 줄이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혹시’를 완전히 지우진 못하더라도
그 단어만으로 나를 가두지는 않는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이
이젠 그저 당연한 게 아니라,
내 삶의 작고 단단한 자랑이 되었다.
숨이 가쁘지 않았던 날,
기억이 온전히 이어졌던 날,
마음을 쏟아 웃을 수 있었던 날은
나에겐 그 어떤 특별한 날보다 오래 기억된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살아가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버티는 건 아니다.
이제는 숨을 고르고, 멈추고, 쉬면서도
내 삶의 방향을 천천히 찾아간다.
살아남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정말로 살아가고 있다.
아주 느리고 조용한 속도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