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조금은 빛나게

2. 작지만 확실한 감정, 기분 좋은 날의 기록

by 박하루

병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는 조금씩 삶의 다른 면들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견뎌내는 하루’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록하고 싶은 하루’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씩 쌓이자,

나는 일 외의 것들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

혼자 극장에 가서 독립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

북토크 소식을 찾아보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일.

그런 것들이 내게 ‘기분 좋은 날’의 기준이 되었다.


책이나 영화에서 마음을 흔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꼭 글을 쓰지 않아도,

그 문장 하나로 내 감정이 정리되는 날이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소소한 활동들이

내 일상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늘 발작을 걱정했고,

어디든 오래 머무는 것이 불안했고,

새로운 공간에 나를 놓는 일은 늘 조심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불안을 안고서도 어딘가에 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 말이 참 따뜻했다.

‘괜찮았다’는 말 안에는

“내가 오늘 나를 잘 돌봤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크게 웃지 않아도,

숨 막히게 설레지 않아도

잔잔한 기분 좋은 날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다시 채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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