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망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 병을 처음 알았을 때,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질까’만 생각했다.
그 이후에는 ‘얼마나 오래 약을 먹어야 하지’가 걱정이었고,
조금 지나니 ‘이 병을 갖고 살아도 괜찮을까’가 마음을 짓눌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든 걱정을 지나오고 나서 지금 내 하루를 되돌아보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거였다.
“오늘도 별일 없이 잘 살았네.”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놀라게 하지도 않았고,
약도 빠뜨리지 않았고,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다시 돌아왔고.
그 모든 걸 합쳐서 오늘도 괜찮았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너무 커 보였다.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잘 견디는 내가 아니라
기적처럼 나아지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희망은 아주 작은 감정에도 깃들 수 있다는 걸.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순간,
햇살이 좋은 날 괜히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히 눈물이 나는 순간.
그런 소소한 감정들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게 나에겐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었다.
아직도 나는 완전히 평온하진 않다.
언제 또 발작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
그 모든 걸 끌어안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언제 끝날까’를 기다리며 사는 대신,
지금은 그 안에서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끔은 넘어지고, 가끔은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걸어 나오는 자신을,
나는 조금씩 믿게 되었다.
‘빛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불안하고, 조금 조용하게.
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내 삶을 나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