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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 Sep 12. 2022

1. 봉사부장? 그게 뭔데?

자원봉사 입성기

터닝 포인트 turning point
전환점

어떤 상황이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게 되는 계기. 또는 그 지점.




터닝포인트.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그 지점. 살아가면서 이런 터닝포인트를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 누구는 한 번으로 지나버릴 수 있고, 누구는 여러 차례 만나 인생이 엎치락뒤치락 바뀌기도 한다. 내 인생의 첫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반장선거에 나갔다가 큰 표 차로 낙선했다. 그리고 나는 봉사부장이 되었다. 딱히 봉사 정신이 투철하거나 따로 봉사활동을 해본 경험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그 당시는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환경부장, 체육부장, 도서 부장 등 여러 학급 부장 중 하나가 주어지는 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마했었던 것은 반장선거인데 떨어졌다고 부장을 해야 하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였다. 그렇게 나 또한 반장선거 후보에 이름이 잠시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봉사부장이 된 것이다.


벚꽃이 교정 어귀에서 꽃망울을 틔워 가던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송미야, 우리 학교가 봉사활동 인증 시범학교가 됐어.”

“네? 봉사활동 시범학교요? 그게 뭔데요?”

내 물음이 선생님의 말씀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나왔다. 선생님이 말한 ‘봉사활동 인증 시범학교’라는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음 그러니깐 “봉사활동을 하면 봉사한 시간만큼 점수를 주고, 점수가 많으면 포상도 하고, 대학에 갈 때 가산점이 된대.”

“아…”

선생님의 이야기에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었지만, 그냥, 아~그렇다고 하는 생각만 들었다.

“선생님, 그럼 우리도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아직은 시범이지만, 나는 우리 반 친구들이 좋은 일에 앞장섰으면 좋겠다. ”
 “……”

“ 그리고 나는 우리 반이 봉사활동 인증도 적극적으로 해주면 좋겠다. 이왕이면 봉사부장인 송미가 조별로 봉사활동을 인솔해서 우리 반 친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경험하게 준비해주었으면 해.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보람될 거야. 열심히 참여하다 보면, 봉사에 흥미가 생기는 아이들도 생겨나면, 다음에는 동아리를 조직해서 지속해도 괜찮을 것 같고…….”

“아…… 네.”

“어렵겠지만, 잘해보자. 봉사 기관 명단은 선생님이 구해줄게.”

“네, 선생님.”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내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봉사하라고? 그것도 우리 반 모두와 함께? 오, 마이 갓!


나는 평범했다. 리더십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학급 임원이 되는 일 욕심도 없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그저 친구가 장난스레 추천한 것 때문에 잠깐 반장선거의 후보에 올랐던 것뿐인데, 그 후폭풍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야 반장이 될 깜냥도 아니었고, 그저 들러리였을 뿐인데…….’

며칠 동안 이불 킥이 이어졌다. 머릿속은 온통 봉사활동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봉사활동? 어디 가서 하지? 봉사활동이면 몇 명이 한 조가 돼야 하는 거야? 아니, 조는 어떻게 구성하지? 다들 학원 가고 동아리 활동하느라 바쁠 텐데 도대체 언제 가야 하는 거야?’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며 고민한 끝에 마침내 봉사활동 계획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

‘10개의 봉사활동 팀. 각 팀은 친한 친구들끼리, 세 명에서 여섯 명까지, 그리고 봉사는 한 달에 한 번. 이 정도면 되겠지?’

이런 내용으로 기획을 마치고 나니 책상 앞, 어느새 밤은 새벽이 되었다. 밤을 꼴딱 지새웠던 그 밤은 그렇게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목!! 나를 봐줘!! ”

떠들썩한 쉬는 시간 제각기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반 모두 봉사 활동해야 해. 우리 학교가 봉사활동 시범학교래. ”

“뭐?? 봉사 시범 그건 뭐야?”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반 친구들 속에서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봉사 활동하면 점수가 쌓여서 나중에 상도 주고 대학 가는 데도 도움이 된대. 담임선생님이 다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하셨어”

“요즘 학원이랑 과외에 놀 시간도 없어.”

“나는 시간이 없어서 지난주 우리 오빠들 나오는 가요톱텐도 못 봤어.”

“봉사? 그거 꼭 해야 해?”

웅성웅성한 반 친구들의 이야기에 나는 짜증이 나 더 퉁명스럽게 이야기해 버렸다.

 “올해, 우리 학교가 봉사활동 인증 시범학교여서, 모두 봉사 활동해야 하는데, 봉사활동을 따로 하더라도 꼭 봉사활동 인증서 받아오고……. 봉사활동 인증서 양식 필요한 사람은 담임선생님께 가서 받으렴.”

“아이고, 우리 담임은 너무 열정이 넘쳐.”

“그래. 그래. 동아리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엄마한테 눈치 보이는데, 뭐를 또 하라고? 나는 진짜 시간이 없어.”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오가는 사이로 나는 다시 용기 내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 우리 중에 봉사활동 어디로 갈지, 뭘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잖아? 그래서 우리 반은 봉사활동 조를 짰어. 조는 열 개야.”

“나 우리 동아리 친구들이랑 같이 가도 되는 거야?”

“나는 우리 아파트 친구랑 하고 싶은데”

나는 부글부글 화가 났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꾹 참고 설명을 했다.

“조 바꿀 사람은 미리 말해줘. 자기 조 봉사하는 날에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그럼 아마도 1년에 한 번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거야.”

“봉사부장!! 나 봉사 그거 해야 하냐?”

봉사가 하고 싶지도 않고, 협조되지 않는 반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야기했다.

 “안 하고 싶은 사람은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해. 협조 안 되는 사람은 담임선생님께 말할 수밖에 없어. 너희는 1년에 한 번이지만, 나는 열 번 가야 하니까 너희가 나 좀 도와줘.”     


갑자기 시작된 봉사활동 인증 시범사업은 그렇게 운명처럼 우리 학교로 배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하필이면 그 시기에 봉사부장이 되었으며, 담임선생님은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셨다. 등 떠밀리듯 봉사활동에 첫발을 내딛게 했다. 잘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물어도 답이 안 나올 만큼 자신감은 없었다. 난생처음 학급 임원이라는 ‘감투’를 써본 것과 기획 과정에서 펼쳐진 상상의 나래에 즐거워졌기 때문에 두려웠던 그 마음은 조금씩 변화했다.


1년간의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중간중간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봉사활동은 처음이어서 나도 미숙하였다. 그때를 되돌아보아도 흡족하게 잘 해내지는 못했다. 어떤 일에는 담임선생님 지시라며 그 뒤로 숨기도 했고, 친구들이 생각만큼 협조해주지 않아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1년 동안 봉사부장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해 연말 우리 반은 다른 반보다 두 배 이상의 봉사활동 인증점수를 획득하였다. 교장 선생님에게 봉사활동 우수학급 표창도 받았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돕는데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하고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또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이후, 내가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첫 단추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운명이라는 단어가 좀 거창하다면, 내 인생에서 만난 첫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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