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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Oct 21. 2022

식물 첫해에는 분갈이 안하는 거라면서요 나는왜 - 3

브런치가 정지되고 아무도 찾지 않아도 화분 속 뿌리는 자란다

지난 주말 카카오톡과 포털서비스 다음을 위시한 범카카오 서비스가 모두 올스톱되었다. 누군가는 네비가 가다가 멎었고, 누군가는 기프티콘으로 음식값 계산이 안돼서 쩔쩔매고, 몇 년만에 택시도 손으로 불러서 잡았다고 한다. 심지어 온라인 쇼핑몰 주소 입력도 안 되었다고 한다.(주소찾기 시스템을 이용해야만 주소를 입력할 수 있는 까닭에…) 그리고 프로그래머 여러분들은 “어느 옛날 블로그의 해결 방법”이 들어 있는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찾으며 울었다. 온갖 서비스가 안 되어 불편하다고 호명되는 가운데 브런치만은 안 된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브런치의 글들을 굳이 분류하자면 에세이에 가까워서려나?


그동안 밤기온은 4도까지 떨어졌고 필로덴드론과 칼라데아의 15도가 위험한 계절이 왔다. 15도도 최저 온도이지 이들이 좋아하는 온도가 아니고, 월동시 너무 온도차이가 날 때 들여도 식물들이 힘들어한대서 2주에 걸쳐 일찌감치 추위에 약한 식물들을 들였다.(사실 대부분이다)


분갈이도 자연스레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지기 전에 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낮에는 베란다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생각 외로 바깥이 4-5도여도 16도 밑으로는 잘 안 떨어졌다.


아마도 진짜 최종 올해 마지막 분갈이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카카오가 올스톱되고 식물을 안에 들여도 자라나라 뿌리뿌리인 건 여전하다. 그리고 식쇼도 생각 외로 끊기가 어렵다. 이번주도 분갈이 다섯 개 했다.(묵념….)

(칼라데아) 크테난테 그레이스타 9월 23일/10월 18일. 뿌리 whyrano….
심지어 지하철의 매너없는 중년 남성처럼 쩍벌로 자라고 있다 ㅋㅋㅋ
두 달만에 뿌탈한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 우리집 칼라데아 치고는 뿌탈이 늦게 온 편이지만 이번 겨울까진 온실에 있어야 하는데….

식물을 키우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 늦가을엔 식물이 싸다. 열대 출신 식물들은 농장이나 업장도 전기로 기르는 건 마찬가지기 때문에, 난방까지 해야 하는 유지보수가 비싼 겨울이 오기 전에 재고를 터는 경우들이 있다. 1년간 집이 아닌 농장에서 길러진 녀석들은 우리집에 있는 애들 참 민망하게 튼실하고 크고 쌌다. 각 가정에서도 월동할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이기에 당근마켓에도 매물이 많고, 10월에는 식물마켓 행사들도 많았다.

식물마켓 가서도 옛날 만화 동인 행사(코믹/아카)에서 회지 안 사고 코팅 캐릭터 장식만 사던 버릇을 못 버렸다.

나는 코로나로 찾아온 열대식물 붐에 늦게 탑승했기 때문에 희귀식물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다. 아무래도 돈 주고도 못 구하는 희귀식물이 아니라 그냥 비싼식물에 가깝달까…? 산반 무늬 돌연변이도 딱히 아직까지는 예쁘다는 느낌이 잘 안 든다. 그리고 잘못 관리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몇십 몇백만원 주고 산 식물이 죽으면 더이상 식물을 기르는 삶이 즐겁지 않을 것 같다. 요즘은 취미도 “-테크”라고 해서 더 큰 돈으로 환금될 수 있는 투자가 되게 하는 게 트렌드고, 취미 그 자체보다 투자금을 환금하는 활동에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게으르고 지친 나는 이런 데서까지 돈돈하기가 너무 피로하다.

트위터 고먕 님의 안스리움 만화

https://twitter.com/tjwjddl75/status/1526128640940945410?s=46&t=1ILZ-q7wfs62Ad2xGvDFwA ​

그래서 다 똑같아보였던 안스리움들이 구분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게 내 취향인가 아니면 비싸게 거래되면서 남들이 예쁘다니까 예뻐보이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안스리움도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아직 내게는 비싸다. 성인 중 가장 작은 내 손가락 한두 마디만한 이파리가 3-7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게으른 성품과 솜씨로는 죽이지 않고 키우는 데 어림없다. 그래서 망설이다, 겨울대비 창고대방출 느낌으로 싸게(??) 온라인몰에 올려진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을 하나 사게 되었다는 얘기. 너는 제발… 죽지는 말고… 뚠뚠하고 천천히 자라라…(칼라데아들은 벌써 온실을 튀어나올 기세라 굉장히 곤란하다…)

천년의 고민을 통해 우리집에 오게 된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 귀하신 식물이라 흙배합도 따로 검색해서 하고 서스티도 따로 꽂아드렸다.

이러다가 겨울에도 식쇼와 분갈이 무한반복을 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희귀 칼라데아가 더 사고 싶을 때는 있는데, 그 가게들은 보통 이파리 1-3장짜리를 판다. 그런 것들도 내가 키울 수 있는 지 테스트해보기 위해 이 계통 중 제일 강건한 품종으로 알려진 마란타를 물꽂이해 뿌리를 받은 뒤(딱 3일이면 뿌리가 길게 난다. 벵갈이는 삼 주 걸렸는데…) 딱 한 장만 심어서 키워봤다. 칼라데아류는 이파리가 뭉친 세력이 클 수록 키우기 쉬워진다. 반대로 한두 장일 때, 쌩유묘일 때는 키우기가 어렵다. 세력이 없으니 습도에 더 민감해지고, 성장도 더디고, 새로 나는 이파리도 큰 화분에 있는 것처럼 크게 안 나고…

의외로 이 상태로 파는 희귀식물들이 제법 있다…. 이 정도로 나누어야 수요와 가격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최소한의 덩치가 있는 식물을 사야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고, 이파리 두세 장짜리 작은 개체가 값이 비싸거나 시장에 많이 없을 때는 초보자가 키우기 적합한 난이도가 아니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그냥 걸러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혹시 저걸 크게 키우면… 하고 대품이 된 모습 같은 걸 상상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열대도 아니고 전문 농원도 아니고 곧 겨울이 올 거고 나는 1년차 초보자인데도. 유묘를 파는 쇼핑몰의 상세페이지에도 성체는 이렇다는 사진을 넣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산업이 이파리 하나에서 큰 나무로 키울 수 있다는 꿈을 팔고 있는 것일까. 의심하고, 또 희망하고, 아직도 매일 올라오는 신엽에 또 놀라워하는 나날이다.(아니 겨울은 식집사들도 좀 쉰다면서요…)

분갈이가 끝나면 토분을 청수세미로 닦고 난 후 삶아준다. 조리 냄비에 삶는 게 이상할 지도 모르지만 막 사온 자사호보단 깨끗하고 식세기느님을 믿는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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