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념

Dedicated

by Focumble
우리는 단기적으로는 선택지들을 열어 두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10년 후에는 어떤 일에 전념하고 있기를 희망한다


1. 무한 탐색 모드

우리는 무한 탐색 모드, 다른 말로는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에 살고 있다. 이는 FOMO (Fear Of Missing Out)와 YOLO (You Only Live Once)로 대표되는 삶의 태도로, "지금을 살아라", "모든 것을 경험하라"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배우자, 더 나은 삶을 무한 탐색하도록 유도한다. 탐색의 중단은 더 나은 선택지를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FOMO)을 일으키고, 현대인들은 현재에 집중하는 방식으로(YOLO) 두려움을 가라앉히며 다시 탐색에 몰두한다.

최선의 선택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삶의 태도는, 최선의 것에 정착하고 정진하려던 기존 목표를 흐리게 했고 이제는 "탐색" 자체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대학, 대학에 가면 편입, 졸업할 때는 취업, 직장인이 되어서는 이직을 고민하며 선택지를 계속해서 열어 둔다.



2. 해방 vs 헌신

우리는 해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역, 계급, 성별, 인종, 종교 등으로 구분되던 인류는 그 벽과 차별을 허무는 것을 "선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We are the one 이 울려 퍼질 때까지는 좋았지만, 이러한 해방에 대한 기조는 개개인의 벽을 허무는 것을 넘어 각 개인 내면의 정체성까지 허물어버렸다.

연금술은 비금속을 녹이고, 정제한 후 다시 고체화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현대인의 이야기들은 Happily ever after에서 끝나며 이후 삶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지나친 해방 모드는 녹은 채로 머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액체 근대) 고체화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켰다. "사상적으로 중립은 아니지만, 어느 한쪽을 지지한다는 생각은 거부"하게 되었다.



3. 무한 탐색의 문제점 - 개인

무한 탐색은 결정 마비, 아노미, 그리고 피상적 삶의 문제를 일으킨다.

결정 마비란 자유가 커질수록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선택지를 비교해 보고 그중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선택하지 못한 것들로 인해 현재 선택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최선의 대안과 현재가 비교되기도 한다.

아노미는 "쿨함"으로 대표되는 태도로, 진정으로 속한 공동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어느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 뜻인데, 이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번성한 주요 공동체들은 구성원들에게 '아무 때나 와서 아무거나 해도 돼'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는 네가 필요해. 네게 의지할 거야'의 분위기인 공동체가 번성하고 사회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 원한다".

피상적 삶이란,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태도로 인해 깊은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됨을 의미한다. SNS는 경험에 대한 FOMO를 계속해서 일으킨다. 하지만 전념하지 않는다면, 깊이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들도 놓치게 된다.



4. 무한 탐색의 문제점 - 사회

A. 선택지 열어두기의 경제 : 돈 vs 특정성

현대 사회에서 돈은 승리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영역이 무너졌고, 모든 사회 분야에 시장이 세워졌다. 돈과 사회적 지위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돈이 곧 지위가 되었고, 돈과 삶의 목적 사이 장벽이 무너져 돈이 곧 삶의 목적이 되었다.

돈은 모든 것을 "액체화"시킨다. 가격이 곧 가치가 된다. 물건이나 상품이 지니고 있는 특정한 의미가 녹아버렸고, 개성, 특별함, 고유함 등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최적화됨에 따라 어떤 것도 특별히 뛰어날 수 없게 되었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돈은 "회원제"를 "관리제"로 바꾸었다. 각자가 공동체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사라졌고, 전문가가 돈을 받고 단체를 관리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특히 정당, 시민단체 등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졌다.

B. 선택지 열어두기의 도덕 : 무관심 vs 명예
공동체나 관계의 유익을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책임'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은 기본적으로 선택의 제한을 의미하기에 이를 강조하는 사람은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꼰대'가 되었다.

개인의 관점에서 도덕성이란 "자신만의 자아실현, 자기가 알아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그 누구도 지시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정의되었고, 기관의 관점에서 도덕성은 "중립의 것, 규칙"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명예란 무엇인가"는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다.

C. 선택지 열어두기의 교육 : 발전 vs 애착
과거의 교육은 "애착 형성"으로 정의되었다. 특정한 것에 애착을 형성할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다. 교육은 의무, 존경, 애착을 기반으로, 수습(도제) 제도를 통한 개인 간 교육, 클럽이나 팀을 통한 그룹 내 교육, 그리고 어른들과의 교류를 통한 세대 간 교육이 이루어졌다.

공통된 도덕적 전통이 있을 때는 "영웅"이 존재했다. 존경할 수 있는 본보기가 있었고 그 삶의 태도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선택지 열어두기의 교육은 "발전"으로 정의된다. 기술과 일련의 사실들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수습제도는 사라졌고, 클럽이나 팀은 이력서를 위한 활동으로 전락했다. 세대/나이 간 교류 또한 없어졌고, 공통된 도덕적 전통의 소실로 영웅 또한 사라졌다. 현대 롤 모델의 자리는 부자들이 차지했다.

현대의 교육은 "출세"를 지향한다. 출세 제일주의(Careerism)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선택의 문을 지속해서 열어둔 채 더 나은 다음 단계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등의 실질적 목표는 더 이상 논하지 않는다. 개인적 발전이 교육의 목표다.



5.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의 현재 모습

개인적 관점에서 우리는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를 둘러볼 수 있게 됐지만, 이전에 갖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잃어버렸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학교, 입법부, 신문, 은행, 종교 등의 공동체가 시민 생태계를 구성하고 서로 얽혀 있었는데, 공동의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
사회, 도덕적 관점에서 선조들, 거대한 이야기들과 연결되어 있던 뿌리가 뽑혀버렸다. "죽은 자들에 의해 누적된 정신적인 보물"을 잃어버렸다.



6. 전념에 대한 두려움 극복

A. 후회에 대한 두려움과 목적의식이 주는 자유
우리는 전념할 대상을 잘 못 선택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앞서 논의한 대로 최선의 선택만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현재 나의 선택에 대한 만족을 떨어뜨린다. 선택하고, 전념하려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선택하기 전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있는 능력의 부재에서 나온다"라고 이야기했다.

우선 부담감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아무리 잘 골랐다고 하더라도 잘 안 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그만둘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감정적으로 합당한 지 (어떤 느낌인지 상상해 보기),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이성적으로 장점이 많은 선택인지 먼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을 때는 가차 없이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선택엔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이 없다. 내 선택을 올바른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희망적인 부분은, 전념에는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 전념하게 되면, 새로운 깊은 목표들이 생기게 된다. 나의 전념이 세상에 가치를 더하게 될 때 나 자신에게 진짜가 된다. 많은 선택지를 언제든 고를 수 있다는 자유를 외면할 때, 비로소 진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B. 유대에 대한 두려움과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
어떤 공동체에 전념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하고(나의 정체성 위협), 타인의 시선을 받아야 하며(평판 위협), 나에게 잘 맞지 않는 공동체의 관습이나 규범 등을 따라야 한다는 것(통제감 위협)을 의미한다.

자아를 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진정한 자아"는 불변하지 않다.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한가? 자아라는 것은 유기적이고, 변화할 수 있으며 심어지는 것이다.

(정체성 위협) 나의 전념을 통해 사회,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것이 곧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때 내가 사는 지역, 가족, 나온 학교, 직장 등을 보통 설명한다.

(평판 위협) 나를 평가하는 보편적 사람은 실체가 없다. SNS를 통해 평가받는 것이 나의 평판인가? 공동체에 헌신하는 경우 공동체는 나의 구체적인 부분, 부정적인 부분까지 품는다. 이런 사람은 호불호가 분명하고 매력점이 분명하다.

(통제감 위협) 공동체는 종종 비합리적인 관습이나 규범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확실성을 거치고 나면, 공동체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너'가 변해야 한다는 말보다는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말이 훨씬 강력하다.

C.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깊이가 주는 기쁨

전념은 종종 전념하지 않았을 때 누릴 수 있었던 새로운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이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새로움"이나 "목적"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한다.

무한 탐색의 시대에 맞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삶은 모든 것이 재미있거나, 모든 것이 지루하다. 반면, 목적에 따라 사는 삶은 처음에는 지루한 경우가 많으나 점차 흥미로움이 더해진다. 깊이가 깊어진다는 것은 특별한 새로움이다.

하지만 어느 분야나 깊이 파고드는 것은 힘들다. 전념은 보통 기하급수적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결실을 맺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 분야에 왜 전념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장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중간의 단기 목표 등이 그 시간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7. 전념하기 반문화

의외로 전념하기는 결정들을 편하게 하고, 깊이의 새로움을 보게 하며, 사회적 과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 해방은 반드시 필요했지만, 우리는 정제된 후 다시 전념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특정한 것을 중시하는 경제, 명예를 중시하는 도덕, 애착을 중시하는 교육을 지지한다.



마치며

요즘은 왜 이렇게 변화가 빠른지, 세대차이가 나타나는 간격은 왜 자꾸 좁아지는지, 롤 모델과 위인들은 왜 사라졌는지 궁금했었다. 이 책은 "전념"과 "액체 근대"의 개념을 통해 위 질문들을 설명해 주었다.

어떤 분야에 전념한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특히 어떤 공동체에 전념한다는 것, 유지한다는 것은 타인을 신뢰하는 것,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러 심리학(이전 글 : 미움받을 용기 3부작 참조)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제안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현대인들은 단기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지를 위해 두리번거리지만, 조금 더 먼 미래에는 한 분야에 헌신하고 있기를, 좋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기를 기대한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오늘부터 용기를 내서 선택하고, 온전히 헌신하며, 그 안에서 자유함과 즐거움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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