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by 김용기

담쟁이


- 김용기



정체성 운운은 한가한 사족

매달린 까닭은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느림이 문제 된 적은 없었다

잡은 뒤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기어올랐지만

힘을 더 준 이유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구름의 빈틈을 찾은 햇빛이

연한 이파리에 표독스럽게 앉았을 때

그저 그런

풀잎쯤으로 여겼을 테지만

발톱 숨기는 것쯤

두려움 축에 끼지도 못했다


유산(流産)이 잦던 한 여인이

담쟁이넝쿨을 끓여먹은 후 순산

‘쉿, 소문내지 마 담쟁이에겐 죽음이야’

담쟁이 움켜쥐는 고집

사회적으로 거룩한 사명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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