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동 192번지
- 김용기
멀어지는 기차 소리가 익숙해질 무렵
고요가 찾아왔지만
증오했던 가난은 떠나지 않았다
역을 눈앞에 두고
속도를 늦추었고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새벽잠을 파고들었을 때
기차는 어린 시절 적이었다
좁은 시유지에
우격다짐으로 급히 지은 거처였으므로
빨간 벽돌집 개축은 언감생심
반듯한 길 하나 없었으나
사립문은 별 어려움 없이 드나들었고
아버지의 변화 없는 긴 삶도
거기서 마쳤다
희미한 밤기차에는
도란거리는 음성이 있었고
정직한 시간 때문에
새벽기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밀어낸 공동묘지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 그늘 속 음습함이
허락도 없이 지붕을 덮기 시작하면서
새 적이 되었다
기차가 새 길로 떠난 후
고요가 삶을 바꾸어 줄 것으로 알았는데
허사였다
따지고 보면 고요는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지붕에 덮인 찢어진 푸른색 비닐은
여름 장마에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펄럭거렸고
지나가는 사람도 일절 끊어졌으므로
손짓을 해도 소용없는
도시의 무인도에 산다
떠난 기차처럼
우산동 192번지에는
자식들도 하나 둘 떠났고
주민세 미납 고지서는 사라졌지만
가난 속 꿈은 여전히 진행형
그리운 그 때가 하루하루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