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같잖은 핑계
- 김용기
앉았다가 일어섰을 때
갑자기 어지럽듯
당최 내 스타일 아니더라니까
마시고 갈 거냐는 혀 짧은 질문에
나도 반말을 했지
"그랴 이놈아"
커피는 뜨끈하게 나왔고
달달하니 괜찮았지만
무거웠어
늙었는지 컵 하나도 이젠 무거워
사기(沙器) 커피 잔 손잡이를 쥐고
잔 끝을 유심히 보다가
나 말고 어떤 여자의 입술이 그곳
다녀갔는지 궁금
순간 입꼬리가 흐뭇해지더라니까
오른손잡이의 입술이 닿는 곳은 거기뿐
엉뚱한 생각 때문에 민망해졌어
얼굴이 후끈
마른입에 냉수 들이켜듯 서둘러
그 뜨거운 커피를 털어 넣었어
그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뒤통수가 간지럽더라니까
마누라를 깨워 낮의 얘기를 했을 때
어설펐던가봐
무슨 말 같잖은 소리냐는 듯
홑이불을 뒤집어쓰더라고
그간 푸대접이 걸리긴 했던지
도깨비처럼 일어나
입술 한 번 맞춰주고 얼른
다시 눕더라고
다시는 그 커피집 안 가기로 했어
나한테 반말 지껄이던 키오스크가
맘에 안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