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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Jan 27. 2023

다윈! 이제 어쩌지??????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느 아침 7시. 

나는 화장실 변기에 덩그러니 앉았다. 

연신 하품만 해대면서 무심히 힐끔 흘겨본 왼 손.

순간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씨발, 깜짝이야!"


잠깐만, 이거- 꿈인가???!! 




선명한 한 줄의 선, 그리고 잠시 후 뒤늦게 색을 발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야 마는 희미한 한 줄. 

설마 했던 내 생에 첫 임신테스트기가 화장실 바닥에 떨어졌다. 

아닐 거야, 아니야.. 

바닥에 떨어진 임신테스트기를 다시 주워 쳐다본다.    

한 줄 옆 나란한 희미한 한 줄. 

혼돈에 휩싸인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한다. 


남편 녀석에게 소리친다. 


"민!! 큰일 났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다윈은 내가 걱정됐는지, 나오자마자 나를 킁킁대고 살피며 뽀뽀세례를 한다. 

아직 이불속에 파묻혀 있는 남편 녀석을 깨운다.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는 남편과 뭉그러진 내 표정을 보고 갸우뚱대는 다윈. 

 

하아... 내가 임신이라니, 내가 임신이라니!!! 



"에?????????"


"에?!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대 리액션이야?" 


"아니.. 어떻게- 아니,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우리가???" 


"..." 


"..."


벌써 아기가 있다 해도 이상할 것 전혀 없는 나이, 오히려 이제 아기를 가지려 백방으로 애써야 할 나이지만, 

계획도 없이, 마치 사고 친 십 대들처럼 어쩔 줄 몰라 어안이 벙벙한 나와 남편, 그리고 그 옆에 멀겋게 그저 웃고만 있는 다윈.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온 세상에 있는 모든 냄새들이 다 내 코를 향해 돌진했고, 내 몸속 모든 내장기관이 식용유 장아찌가 돼버린 듯 24시간 내내 느글거리고 메슥거렸다. 특별한 날에 기분전환을 위해서만 뿌리던 향수는 쳐다보기만 해도 울렁거려서 서랍장 속에 처박아 버리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어떤 날은 갓 구운 카야 토스트처럼 달콤한, 어떤 날은 방금 쪄낸 옥수수처럼 구수한 다윈이의 발냄새, 몸냄새마저! 코 안을 가득히 메워 견딜 수 없이 괴롭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럴까. 오랜만에 배우로 다시 무대에 서고, 연이은 작업을 하느라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어느 날은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어 병원에 가서 위염약도 처방받았었다. 


"임신 가능성 있으세요?" 

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 


"저요?! 아니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수하며 빨리 나아 보겠다고 식중독 주사까지 맞았더랬다. 

그 뒤로 증세는 점점 심해져 가슴은 답답하고 목까지 차오른 쓰라림에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마트에 가서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포도 주스, 오렌지 주스, 이온 음료를 잔뜩 사들이고_ 2kg짜리 천혜향을 사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어치워 버리기도 했다. 


"제발! 너 스트레스받으면 폭식하는 습관 좀 고쳐, 어떡하려고 그래 정말! 지금도 봐, 음식 조심해야 된다니까 무슨 귤 한 박스를 까먹고 있어?!" 


"알겠다고!... 귤 아니야! ... 천혜향이야..." 


남편 녀석에게 장장 한 시간 넘게 잔소리를 들어가며 인터넷을 뒤졌다.   

그런데도! 몰랐다.


식중독에서 시작한 나의 위염(?)은 역류성 식도염으로까지 번진 것 같았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답답함에 쉽게 잠도 이루지 못하고, 오한에 온몸이 종일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확신에 찬 나는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성실히 약을 먹었음에도 증상은 계속 심해지기만 했고_ 본격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였다.


나, 설마.. 위암이라도 걸린 건가? 그럼 우리 다윈이는 어쩌지? 




"아이 많이 낳을 거야. 음- 한 셋넷쯤 있으면 좋겠어! 식구들끼리 막 북적대면서 매일매일 생일파티처럼 살면 좋겠어. 몰라, 우리 집은 항상 너무 차가웠거든... 너무 추웠어. 나는 꼭 사랑으로 가득 차서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항상 왁자지껄한 집, 그런 가정을 만들 거야."

   

나에게 아기가 생기면 엄청 행복하고 기쁠 거라고, 흐릿하지만 형형색색 한 꿈을 꾸곤 했었다. 

아기가 생기면 너무너무 기쁠 줄 알았다. 알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해보곤 했다. 

축복이자 기적일지도 모르는 내 인생의, 우리 인생의 큰 선물이 왔는데_ 

그런데 왜 나는 지금, 그저 두렵고 당황스럽기만 한 걸까. 


괜찮아? 하고 걱정하는 듯_ 괜찮다고 위로하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다윈 


다윈이가 있어서? 아니다. 

어쩌면 다윈이가 우리에게 오기 전부터, 어느샌가부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시간과 정성, 돈을 갈아 넣어야 하고_ 매 순간 나를 한계로 몰아가 벼랑 끝까지 내모는 정신 수양을 견뎌내야 할 것이며, 그러면서도 그 어떤 리워딩이나 보상을 바라서도 안 되는- 희생과 봉사의 여정! 


누구나 쉬이 말하듯_ 점점 나도 그런 생각에 젖어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낳았으면 낳았지, 지금은... 내가 너무 소중해!" 

 

그리고 다윈이를 만났다. 

다윈과 함께하는 일상으로 충분히 충만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함께 살면서 나는 온전히 사랑했고, 그보다 더 깊이, 크게 사랑받았고- 다윈이로부터 분에 넘치게 치유받았다. 바라만 봐도 행복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의 무언가_ 다른 것은 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다윈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참 많은 준비와 공부를 했다. 

그리고 다윈이를 키우며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벽에 부딪치고 좌절하면서- 그와 동시에 천만 배 더 감동하고 행복해했다.

다윈은 순간순간 날 울리다가 웃기고, 속 끓이게 하다가도 귀한 가르침을 줬다.  

그렇게 여태까지 우리 세 식구,

우당탕탕해 가며 시끌벅적 잘 살아왔는데_    

이제 다시 시작되는 건가... 


벌써 내가 걱정된다. 

그리고 다윈이 걱정된다.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이제 다시 막 시작한 내 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일상은 어떻게 될까? 

그저 우리 셋, 이제야 우리만의 평온하고 달콤한 일상이 익숙해졌는데 앞으로 우리는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아기가 그 조그맣고 둔한 손놀림으로 다윈을 퍽퍽 치거나, 꼬집기라도 하면 어쩌지? 

밤샘 육아에 지치고 피곤에 절어서 제대로 신경도 못 써주고, 아기 때문에 다윈이를 분리하고 멀리하게 되는 건 아닐까? 

사랑한다는 말도, 그 평온하고 부드러운 눈 맞춤의 여유도 없이- 

내가 다윈이를 귀찮아하거나, 멀리하려 하거나 그러면 어떡하지?! 



"다윈이 처음 왔을 때_ 기억나? 우리 둘이 밥도 못 먹고 일주일 간은 정말 멘붕이었잖아. 근데 지나서부터는 모든 게 점점 수월해졌어. 우리 멍멍이 참 잘 커줬잖아. 이번에도 잘 해낼 거야, 우리는. 그냥 둘째가 생긴 거뿐이라니까!"


좋겠다, 남편 녀석, 너는. 걱정도 없고 속도 좋구나. 

하지만 '둘째'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콕 들어와 박힌다. 

둘째, 그래. 둘째라 생각하면- 다윈! 이제 넌 형아나 오빠가 되는 거네?! 

 

다윈! 준비 됐어? 


"다윈은 좋은 형아/오빠가 돼 줄거야. 아기들 엄청 좋아하잖아, 인사할 때도 놀랄까봐 가만히 있어주고, 장난감도 양보하고. 그 지난 번에- 우리 조카 아기랑 놔뒀더니 그냥 옆에 앉아서 지켜줬잖아." 


그래, 그건 맞다. 녀석은 정말 철없고, 흥 많고, 세상 만만한 형아/오빠가 되어 줄 거다. 

나만 잘하면 된다.   


그래, 몰라! 이제 그저 나는 슈퍼맨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나의 집, 내 가족! 그 그림과 똑같은 가족 수를 뽐낼 자신은 없지만- 

사랑이 흘러 넘치게, 너무나도 포근하고 따끈하게, 모두 감싸안고 많이 감사하며_ 

나는 더 부지런히, 근면하게- 알록달록 우리의 집을 칠해가야겠다. 


다윈, 우리 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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