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8. 동업자의 동반자

그녀만의 남편 활용법

by yunyuri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사이니 그녀의 친구는 어느새 내 친구가 되었고, 그녀의 가족이 곧 내 가족이기도 했다. 그녀의 모든 결혼식 사진에 내가 있을 정도니 그녀와 나는 꽤나 끈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친 자매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굳이 나서서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그러한 특별한 관계임에 감사했다. 업계에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있다는 것은 현생에서 동반자를 만나는 것만큼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이었으니 항상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꽤나 특별한 사이, 별난 사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남편인 '그'(a.k.a 형부)와는 그녀와 남자친구였던 시절부터 친했고, 주말이면 그녀의 부부와 나, 셋이서 어울리는 일들이 매우 많았다. 마치 세 가족처럼 움직이는 우리였기에 이번 동업에서도 형부가 많은 부분을 도와주려 애썼고, 나중에는 우리 프로젝트에 합류까지 하여 필요한 업무를 봐주기도 했다.




형부의 직업은 나름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코로나 이후 부업이 본업이 된 지 오래되긴 했지만 그의 본업은 누가 뭐래도 '배우'였다. 코로나 이후 작품 제안이 끊기며 배우 활동을 약 이 년 정도 접다시피 하긴 했지만 재능 있는 배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항상 그를 응원했더랬다. 그래서 우리 프로젝트에도 자신의 본업을 살려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주고자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굉장히 필요한 보직이었는데 역할도 딱, 마음도 딱 맞는 제격의 사람이 들어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녀와 마음이 안 맞던 와중에도 형부의 존재 덕에 불안함 속에 겨우 안정을 되찾곤 했다. 물론 내 앞에서만 내 편을 들어주긴 했겠지만 늘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그였기에 동업인 그녀와 어떤 사달이 나더라도 크게 가진 않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이 든든한 요새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나와 그녀 사이의 갈등이 아닌, 그녀와 형부 사이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유동적인 배우의 촬영 스케줄 특성상, 조율을 병행해야지만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남편 스케줄은 뒤로하고 별도 상의도 없이 프로젝트 스케줄을 확정 지어 잡아버린 것이다. 자신의 남편이라 편했던 것은 이해하지만 엄연히 돈을 받고 업무를 보는 우리 프로젝트의 인력인데 본인 멋대로 스케줄을 정해서 통보식으로 전달해 버리면 그는 어떻게 앞으로 업무를 보란 말인가. 그러다 보니 모든 스케줄이 얽히고설켜 끝내 엉망이 되어버렸고, 하나하나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미 가정에서 서열로 따지자면 최하위에 있는 형부이자 항상 그녀에게 져주기만 하는 지라, 본인의 아내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결국 나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며 문제를 수습해 주길 바랐다. 결국 그가 나의 최후의 보루가 아닌 내가 그의 최후의 보루가 된 셈이다.




이제는 나와 그녀의 업무를 둘 다 수행해 주는 것도 모자라, 형부와의 단순한 커뮤니케이션과 그의 업무 스케줄링까지 오롯이 나의 역할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형부의 포지션이 우리 프로젝트 VIP들과 연관이 되어있어 다른 직원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형부까지 일일이 스케줄 조율하고 물어봐야 하는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부부끼리의 소통도 내가 해주어야 하면 정말이지 나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단 말이다. 그렇다 보니 당연지사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클라이맥스의 궤도에 오를 때쯤 나 홀로 해야 하는 업무들이 너무 많아졌다. 문제가 생기면 수습도 안 하는 그녀니 나라도 항상 각성 상태로 일을 해야 했고, 형부와 얽힌 문제는 더욱 나몰라로 일관하던 그녀였다. 그 기조가 결국 현장에서까지 발현되어 각종 사고가 발생하기에 이르렀고,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던 그녀는 남편과 기본적인 합조차 맞추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형부는 그 현장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혔고 결국 그도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


그 불똥은 또다시 나에게 튀었고, 당장 형부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현장 진행을 감행해야 했던 나는 형부의 노고를 나중에 보상해 주는 것으로 타협을 짓고 업무를 진행했다. 현장에는 클라이언트도 있으니 챙겨야 하는 인원이 한 둘이 아닌데, 거기에 그까지 모셔야 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현장 업무를 모두 마치고 난 뒤에 여러 문제점들을 딛고 힘이 닿는 데까지 애써준 그를 위해 인건비를 무려 세배나 올려주었다. 처음 책정한 인건비가 적은 것도 있긴 했지만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잔뜩 겪은 그도 꽤나 고생스러웠을 것을 감안하여 섭섭지 않게 금액을 챙겨주었다. 동업인 그녀와 어찌 됐든 부부 아니냔 말이다. 그 돈 아껴서 두 사람 모두와 서먹해지는 것 보다야 모두가 행복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하며 그녀의 무능함 만큼 더 큰 배신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족이 짝을 지어 진상을 부리니 딱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현장에서는 서로 나 몰라라 하는 그들이었지만 퇴근을 할 때면 형부가 차를 끌고 와 인사조차 없이 쌩- 함께 가버리는 그런 부부 사기단 같은 인간들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금융치료를 해주었으니 더 이상의 잡음은 없길 바랐지만, 그녀와 12시간 동안의 대화를 하던 날 그녀는 회심의 카드처럼 자신의 남편을 이용했다. 형부가 현장이 엉망이었다며 욕을 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쪽 현장은 내가 있었던 현장도 아니었고, 본인의 책임이었으며, 이미 인건비까지 잘 챙겨준 마당에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저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 했거나 기를 죽일 심산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이지 않은가. 우리는 공동대표이자 동업자인데 '우리'의 현장이 엉망이었다는 것은, 곧 본인이 지휘하던 현장이 엉망이었다는 뜻이고, 남편이 자신의 아내 면전에 대고 욕을 한 셈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내 앞에서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이되어 온갖 아부를 다 떨던 형부가 밤에는 지킬 앤 하이드처럼 집에 가서 현장 험담을 했다는 것을 친히 알려주는 아내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었다. 이 정도로 남편과의 합도 맞지 않는 것을 보니, 나와 불협화음이 났던 것이 괜스레 위로되는 순간이었다.




형부에 얽힌 재미난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닌데, 그녀가 한참 잠수를 타던 기간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와이프(=나의 동업인 그녀)가 사라졌다며, 너와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뜬금없이 전화가 왔었다. 이건 또 무슨 신종 사기 수법인가 싶어 나와 그녀 사이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냐 나는 물었고 그는 하나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대충 듣더니 동업인 그녀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신의 와이프의 미성숙함에 대해 석고대죄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회사로 찾아갈 테니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치원생 학부모도 아니고 왜 형부가 우리의 갈등에 끼어들려고 하느냐, 이것은 그녀와 나의 문제라며 딱 잘라 말했고, 그는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결국 본론을 꺼냈다. 동업해지 계약서든 무엇이든 자신이 대신 날인해 줄 수 있는 것이면 해주겠다며, 혹시 그럼 너희 사이에 돈 문제는 더 이상 없는 것인지 스리슬쩍 나를 떠보는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녀가 형부에게 시킨 일이었고, 나의 반응을 살펴 자신의 다음 스탠스를 취하려 했던 것이었다. 불쌍한 형부, 동업이 뭐길래 본업이 배우인 사람이 이런 발연기를 하여 평생의 흑역사를 남기다니, 뜨거운 부부애에 감동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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