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9. 벼랑 끝에 선 그녀

결국 괴물이 되어버린 그녀

by yunyuri

동업계약서를 쓰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명시되어 있는 계약기간 내에 상대 동업자가 불합리한 이유로 일방적 탈퇴를 통보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목적성을 가진 계약이 바로 동업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흐린 눈과 귀를 하며 가장 반하는 행위를 일삼는 그녀였다. 급기야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회사계좌의 권한을 본인에게만 돌려놓은 뒤, 각종 회계 자료들을 공유하지 않은 채로 잠적해 버리는 막장의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주요 업무가 이체 업무였기 때문에 회사 계좌의 지정인이 그녀로 되어있던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회사의 계좌 권한을 바꾼다고 한들 그 돈은 그녀의 돈이 될 수는 없었고, 계좌에 들어있는 잔액을 가지고 도망이라도 간다면 횡령죄라는 명백한 죄명이 생겨버리니 오히려 간단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독 안에 든 쥐, ' 바로 그녀의 현주소였다.




사업자 카드는 있었기에 결제는 가능했지만 이체업무나 계좌 관련된 그 어떠한 권한도 내게서 모두 빼앗아 갔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한 악의적 행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녀는 오랜 기간 동안 무응답과 무시로 버티기를 시전 했고, 회사에서 세금 관련 독촉고지서가 날아와 이 부분을 문제 삼겠다고 하니 마지못해 그녀에게서 답변이 왔다.


‘그동안 고지서 확인이 안 되어서 못 냈었어. 지금 바로 입금했고. 메일로 오늘까지 통장 거래내역 보낼게. 그리고 앞으로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으면 대리인 번호 알려줄게 여기로 연락하길 바란다. 장 00 변호사 01012345678'


살다 살다 대리인 연락처를 다 받다니. 누가 보면 재산싸움이라도 난 집안의 친 자매라도 된 줄 알았을 것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법정까지 갈 수도 없는 문제였고 귀책도 모두 그녀에게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싸움이 안 되는 건이었다. 그럼에도 애꿎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변호사를 기용한 것이 우리 전체 동업 갈등의 가장 큰 히트였다. 그 번호를 받자마자 어이는 없었지만 곧바로 그녀의 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웬 아줌마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원래 변호사가 상대편에는 이렇게 불친절한가? 대리인과 소통하는 이런 대단한 일은 드라마에서나 봤던 것이라 무엇이 기본 상식인지 전혀 감이 서지를 않았다. 나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OOO의 대리인이라 들었는데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냐 물었다.


그 대리인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처음부터 나에게 모든 패를 다 오픈하여 말해주고 말았다. 자신 또한 그녀가 사무실로 찾아와 어제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해당 사안에 대해 잘 모르니 정리 후 연락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아직 사건과 입장도 정리되지 않은 변호사의 연락처를 나한테 넘기는 것인지 벌써부터 그녀와 그녀의 대리인 변호사 사이의 불협화음이 기대되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잠수 타버리는 것이 특기인 그녀보다는 상대할만한 대상이 생겼으니 상황이 더 수월해진 것이다.


그냥 회사에 나와 이야기 나누며 타협점을 도출해 냈으면 됐을 문제인데, 본인 개인 돈까지 써가며 변호사를 수임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나에게 맞서 대면할 용기도, 이 갈등을 올바른 방향성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간 그녀가 직장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빚고,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와버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녀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더 이상 불행하지 않고자 내린 선택들이 아니라, 상대방과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고 더 발전적인 방향성의 관계를 만들어갈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참 신기하다. 왜 그 수많은 세월들 동안 나는 그녀가 이토록 문제가 있는 사람이란 걸 알지 못했을까? 고심 끝에 이제 와서 내리는 결론은 모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줄곧 나한테 자신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항상 '너한테만'이라는 예외가 붙었다. '너한테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자신은 한평생을 절실함 없이 살아왔고, 본인 가족들한테 조차도 무뚝뚝했으며,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며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는데, 본인과 너무나 유사한 캐릭터인 나만큼은 매우 특별하다는 것이었다. 그 밑바탕에는 나와 그녀가 솔메이트처럼 성격이나 취향이 닮았다는 것이 근거가 되었고, 외동이었던 그녀는 나를 어느 순간부터 친동생처럼 예뻐했다. 진짜 문제는 나만 예뻐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를 제외하고는 남들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차가웠고 모든 사람과 사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나한테만 잘한다는 이유로 나 또한 그런 그녀의 면모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서 그녀는 강압적으로 남편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며, 남편을 하수인 취급했고,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들을 사주며 자신에 대한 경계를 낮춘 뒤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자신의 일을 미루는 방식으로 생존을 해왔던 사람이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통했던 것은 아니어서 그녀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두 직장에서 모두 도태되어 소외되었고, 회사에서는 암묵적으로 그녀를 내보내기 위해 좌천을 보내며, 결국 그녀 스스로 회사를 나가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불성실함을 '운이 좋다'는 특별함으로 포장하곤 했다. 한평생 그녀는 인생에서 열심히 애써본 적이 없다며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일대기를 읊어대기 일쑤였는데, 항상 말하던 레퍼토리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밥 먹듯 학교를 빠졌고,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기몰이를 했으며... 가창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무단결근에도 좋은 대학교를 진학했다는, 뭐 대략 그러한 내용이었다. 결국 이러한 대서사를 펼치며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신은 큰 노력 없이도 다재다능하여 힘들이지 않는 뭐든 되는 일명 '될놈될'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은 특별하기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를 중도하차하고 회사를 원할 때 퇴사해도, 언제든 본인은 건사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으리라.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해 보자면,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녀가 매우 교만한 생각에 오래전부터 빠져있어 더 이상의 자기 객관화는 어렵다고 느꼈다. 그녀에게는 이렇듯 여러 가지 불길한 시그널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우리만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생각에 잠식되어 나 또한 그녀와의 관계에 대한 객관화가 어려웠던 것이다. 나에게만 그렇게 대해준다는 가스라이팅식의 발언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우리는 특별하다는 생각에 빠져 위험한 신호들을 분별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아니기에 가스라이팅이었다, 아니었다를 함부로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정의하고 싶어 했고 이에 따라 나를 분명히 통제하고자 했다. 나는 이러한 패턴을 가스라이팅이라 편히 표현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진짜 가스라이팅이든 아니든, 이러한 집단주의적 사고를 갖은 사람들이 함부로 남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경계가 분명히 필요하다. 나를 나로서 특별한 존재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와 비슷할 때 특별해지는 것. 어쩌면 이것은 너와 내가 운명과 같은 관계라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특별함을 철저히 지우고, 남과 똑같아지도록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한 번쯤 의심을 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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