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시커먼 속내
아침까지 나눈 대화가 무색할 정도로 바로 몇 시간 뒤에 외부 회의에서 그녀를 만나야 했다. 그 긴 대화를 끝으로 내 마음은 이미 무너져 내린 듯했지만, 이러한 마음을 동업의 종결로 결말지어야 할지, 그럼에도 끝까지 책임을 지고 나아가는 게 맞을지 고민이었다. 큰 의미는 없었지만 마지막에는 잘해보자며 끝냈던 대화인지라 이 희망 없는 동업에 일말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기보단, 프로젝트를 완벽히 마무리 지어 납품할 때까지 충분히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포기를 하든 다시 잘해보든 적어도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 곧 끝내야 할지도 모를 우리의 동업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 표시란 생각이었다.
여전히 그녀와 나는 서로 서먹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했다. 자기 멋대로 해보고 싶다고 했던 그녀였으니, 후반의 업무들을 많이 몰아주며,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는 업무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고 나니 프로젝트도 금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다고 하늘에서 선물이라도 주시는 것인지,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론칭되었고, 원래 계획보다 더 큰 마케팅을 받아내 대흥행 프로젝트로 자리매김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벅찬 보람을 안고 드디어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세 달 정도를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해서인지 쉬는 날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간 정리하지 못했던 회사의 행정적인 업무들까지 차근차근 확인하고 나면 이 프로젝트도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쉬는 주말 동안 업무 필요사항들을 미리 정리하여, 월요일에 해당 자료들을 그녀에게 요청했다.
그러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녀에게 장문의 메신저가 왔다. 네가 그렇게 애썼음에도,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 본인은 더 이상 동업을 이어가기 어렵겠다는 내용의 통보 문자였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긴 했지만, 의외로 마음은 가벼웠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이 순간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과거에 알던 '친언니 같은 언니'는 아니었고,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그간 나를 큰 시름에 빠지게 한 대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동업이라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우리만의 책임이 생겼으니 그 책임은 다 할 것이라 최소한의 기대는 했었다. 적어도 동업을 일방적으로 관두겠다는 이야기를 카톡 한 통으로 끝낼 줄은 몰랐다.
그녀와 나 사이에 맺은 동업계약서의 계약기간은 1년이었다. 하긴 동업계약서 작성도 내가 했고, 그녀는 처음부터 계약서 내용에는 무관심했으니 어떠한 내용이 적혀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1년을 약속하는 동업을 3달 간신히 채우고는 문자로 띡 관두겠다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저절로 정리되는 것 같았다. 정신은 맑아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가 더욱 극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쉽지 않거나, 속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간 이 동업을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아무 미련도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회사를 위해 혼자 일을 해나가는 나로서 이러한 그녀의 선택이 누구보다 원망스러웠긴 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닌, 회사를 위해서였고, 회사가 잘되기 위해서 내가 내린 선택이기도 했다. 세 달 동안 우리의 동업에 갖가지 문제점들을 찾아 트집을 잡고,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며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던 그녀가, 인건비가 입금되고, 프로젝트가 세상 밖에 소개되자,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누구보다 발 빠르게 선언한 동업탈퇴였고, 그런 그녀와 나는 더 이상 함께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구구절절한 글에 간단하고 명료하게 답해주었다. 동업해지계약서를 써 놓겠으니, 월요일에 회사로 출근해 해지계약서에 날인 후 단독대표로 전환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를 밟자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것이란 생각을 못했던 사람은 오히려 그녀였던 듯했다. 그녀의 뜻대로 해주겠다는 내 문자를 보고는 일주일간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의문이었지만, 나가겠다는 사람한테 무얼 더 기대하나 싶어 일주일간 회사에 출근하여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길 8일째, 드디어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자신이 몸이 안 좋아 답변이 늦었다며, 현재 지방에 있으니 나를 만나러 오진 못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핑계 대는 그녀만의 진상 짓이 시작되었지만 그녀가 막무가내로 나올수록 나는 더욱 차분하게 굴었다. 내가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이 꼴사나웠던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더 괴롭힐 부분이 남아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시간을 계속해서 끌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이 동업을 끝낼 수 있는 마감 기한을 남기며 이 기간까지 회사에 출석하지 않으면 나 또한 이 사안에 대해 재고해 볼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내 메신저에 답 없는 상태로, 3일이 경과된 후에 온 그녀의 답변을 보고서야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체결한 동업계약서에는 년 말, 12월에 결산을 하여 수익을 5:5로 나눠갖는다는 수익분배 조항이 있었는데,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회사의 잔액 절반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결국 돈이었다. 이런 솔메이트는 없다며 가족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던 그녀가 동생은 세 달 만에 그렇게 쉽게 버리더니 돈은 끝내 버리지 못한 것이다. 나는 한순간에 돈보다 못한 인간이 되었다. 결국 내 문자에 답장이 그렇게 늦었던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수익분배를 법적으로 해주어야 하는지 아닌지를 따져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고, 우리의 동업계약서를 기조로 보아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방법을 바꾸어 내 마음을 떠보는 시간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남편까지 끌어들여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 떠보던 형부의 행동이 이해가 갔고, 이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자 나까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결국 그녀의 시커먼 속내가 다 탄로 나 버린 것이다. 나는 이러한 그녀의 각설이 타령에 딱 잘라 거절했다. 프로젝트 후 남긴 잔액은 수익이기 이전에 다음 프로젝트가 잡힐 때까지 회사가 앞으로 지출해야 하는 회사의 운영금이며, 12월이 오려면 6개월은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프로젝트 예산서에 기재되어 있는 그녀의 인건비에 진행비까지 얹어서 입금을 해주었으면 곱게 백스텝으로 사라졌어야 했던 그녀였다. 본래 동업계약서를 올바르게 썼다면, 단순변심으로 인한 동업탈퇴는 상대 동업자가 동의를 하지 않는 한 마음대로 탈퇴를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자칫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계속 부리다가는 그녀가 원하는 동업 탈퇴도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전 직장에서도 11개월 10일 일하고 고작 남은 20일을 채우지 못해 퇴직금을 받지 못해 아쉬워하며 보통 이 정도 일했으면 퇴직금을 주지 않느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더니, 회사의 대표가 되어서도 3개월 일하고 자기 멋대로 나가겠다며 남은 자금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이 사람은 정말 퇴직금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