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가 되어버린 그녀
어느덧 불협화음만 가득한 프로젝트의 준비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현장에 나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떠한 일이든 시행착오는 겪기 마련이지만,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만이라도 주어졌더라면 타협점을 만들어 보다 안정적인 협업을 이루었을 텐데 한 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반복하며 잠을 줄이고 내 생활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나니 프로젝트는 보란 듯 순항 노선을 탔다. 동업자 그녀와의 관계도 겉으로는 안정적인 듯했다. 원했던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서로 많은 걸 내려놓으며 서로의 바운더리를 건들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였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업무들은 난이도가 극상인 데다, 변동도 많아 판단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 프로젝트의 전체 퀄리티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했다. 게다가 단 3일 정도만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었고 주변이 어두울 때만 작업을 개시할 수 있었기에 해가 가장 길던 당시로서는 장애물이 너무나 많았다. 당일에 끝내야 하는 작업 분량을 끝내지 못하면 그다음 날의 부담이 너무 커져 전체 리스크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정신을 붙들고 충분한 신중함을 갖고 행동하려 애썼다. 전체 프로젝트의 수장이 감정을 잃어 판단 미스를 하는 것만큼 최악의 사태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업자 그녀와 나는 두 장소로 찢어져서 소통하기로 했다. 면적이 워낙 넓었던 현장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작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녀가 파견된 공간에서 넘어오는 자료나 정보가 전혀 없었다. 넘어오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내가 맡은 장소에서 작업을 지시해야 하는데, 도통 현장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시간은 점점 지나 날이 밝아오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당시 빠른 소통을 위해 각자 무전기를 사용했는데, 아무리 애타게 그녀를 찾아도 그녀는 답변이 없었다. 결국 아무 내용도 보고를 해주지 않으니, 우리 장소에 있는 팀들의 업무는 올 스탑되고 말았다.
결국 그녀가 답이 없어, 걸어서는 꽤 걸리는 거리였지만 나는 직접 걸어서 왔다 갔다 하며 상황을 체크할 수밖에 없었고, 계속해서 그녀에게 찾아가 무전에 답을 달라고 하며 대신 디렉션을 주었지만 역시나 같은 문제는 반복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뭐라고 하는 인물이 되었고, 본의 아니게 잔뜩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몇 백 명이 걸려있는 현장인데 일을 잘 끝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나를 피해 다른 인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만나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현장 작업 단계에서 두 대표가 서로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상의하며 일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그녀는 개인적 감정을 개입시키며 나를 따돌리고 본인의 독단적인 판단 하에 막무가내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결국, 그녀가 멋대로 하는 상황의 위험성을 줄이고자, 주요 작업자들과 상의하며 나 또한 그녀와의 상의 없이 독단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각자도생 하며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그날이 전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날이었지만 훌륭한 작업자들 덕분에 그래도 계획에 큰 차질 없이 모든 업무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물론 후반 작업이 살짝 더 남긴 했지만, 전체 프로젝트의 80%가 마무리되는 기념비적인 날이었기에 얼굴을 마주하고 수고했다는 말 정도는 남겨야 할 것 같아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녀는 다른 인원들에게 둘러싸여 감사하단 인사를 주고받기 바빴고 내가 다가가자 표정이 일그러지며 내 부름에는 답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우리의 관계도 이 대장정의 프로젝트와 함께 거의 끝나버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동업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어온 관계인데, 서로 적절한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본인의 감정을 앞세워 우리의 동업을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이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가 맡은 프로젝트는 매우 타이트한 기간 내에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줘야 하는 작품이었고, 우리 회사의 얼굴이 될 첫 프로젝트이기에 온갖 심혈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했던 방식을 바꿔서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동업의 균열에 있어 나의 잘못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박수도 두 손바닥을 함께 쳐야 박수가 쳐지지 않는가. 그리하여 나는 후반작업을 이어가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 동업에 유예기간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그녀가 실수가 많긴 했지만, 사람마다 성격과 성향이 다르듯, 업무의 능력과 속도는 모두 다 다를 수 있다. 단순히 업무 방식을 적응하지 못한 것이었을 수 있다.
재미난 사실은 내가 이런 마음을 먹은 직후 바로 다음 날부터 회사로 출근해 그녀의 온갖 비위를 맞춰주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그날부터 나를 완벽히 무시하기 시작한 첫날이기도 했다. 그날부터 그녀는 나의 그 어떠한 말에도 반응이 없었고, 인사도 하지 않았으며, 상의해야 할 일에 대해서 조차 일말의 공유도 없는, 즉 나를 완벽히 무시하는 상태였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점차적으로 주변인들도 알아차릴 정도로 나와의 사이가 멀어져 가고 있던 그녀였다. 그녀가 놓아버린 것은 비단 나와의 소통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업무도 하지 않기 시작하고, 함께 가야 하는 외부 미팅에도 특별한 고지 없이 늦거나 오지 않았다. 중요한 회의에도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심지어는 펜조차 들고 다니지 않았고, 급기야 클라이언트 측에서 질문을 해와도 무응답으로 일관, 내가 응답할 때까지 본인도 어떠한 코멘트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더 맞춰줄수록 그녀는 보란 듯이 더 심한 선들을 넘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의 무례함과 그녀의 정반대 문제해결 방식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왜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성격차이라는 명료하지만 너무나 단순해 주변인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그 이별 사유가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가슴 저릿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녀는 홀로 자기만의 사투를 보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던 그녀이니 무엇이 가장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잘 알고 한 행동이었다. 나도 그 기다리는 한 달간의 유예기간 동안 매우 괴로웠으니 그녀만의 쉐도우복싱 전략이 잘 먹혀들어가긴 했겠지만 한 편으로는 어떠한 긍정적 결과를 위한 희생이었는지 아직도 납득이 어렵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그녀, 인어공주조차 자신이 사랑하는 육지의 왕자를 만나기 위해 지느러미와 인간의 다리를 바꾸고자 감행했던 일이다. 그런 대의가 없는 지극히 이기적인 관점에서 나온 무언의 압박이 나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잃은 그녀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다림' 뿐이었고, 때가 되어 그 편협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