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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간다

중국 읽는 변호사

by 중국 읽는 변호사

다가오는 2025년 8월 24일 난 상해에 간다.

2020년 12월 9일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 처음으로 가는 상해이다.


2020년 9월 나는 상해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급한 병에 걸렸다. 작은 기적들이 수도 없이 모이고 이어져 나는 삶의 고삐를 다시 한번 거머쥐었고 내 발로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18일의 입원 기간 동안에 3일이 의식이 없었다. 퇴원을 해서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걷기가 힘들었다. 의사가 운동을 많이 하라고 하는데 살고 있던 아파트의 정원 한 바퀴를 도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동네 바로 앞에 있는 내가 그곳에 앉아 따뜻한 아침 햇살과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즐기던 길가의 카페에 가는 것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먼 곳의 이야기였다.

근처에 사는 북경대 후배들이 집으로 찾아와 나를 먹이고 억지로 걷게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귀국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공항에 가면 줄을 서야 한다 수속하는데 넉넉잡고 30분은 걸릴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30분을 서 있는 연습을 했다. 10분이 지나면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2020년 10월 말 경 내 몸이 그랬다.

자전거를 타면 좀 나았다.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좀 더 크게 두 바퀴 이런 식으로 다시 다리에 힘을 조금씩 붙여 나갔다.

입맛도 조금씩 돌아오고, 병원에 누워 있는 기간 동안 체중이 20킬로가 빠졌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몸도 불어 갔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대동맥이 찢어져 이어 붙이는 대수술을 받은 터였다. 담당의사한테는 한국으로 간다는 말은 못 하고 북경으로 출장을 다녀와야 하는데 비행기 타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북경 가는 시간이나 서울 가는 시간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가급적 타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만 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끔찍한 상상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 몸에 다시 긴급상황이 생겨 나는 의식을 잃고 비행기가 다시 중국으로 회항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의식을 잃어도 다시 깨어났을 때는 한국이어야 했다. 12월이 되었는데도 9월에 겪었던 중국 병원에서의 힘겨웠던 시간들이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나였는데 병원밥은 정말 먹을 수가 없었다. 음식을 먹는 게 돌을 씹는 것 같다는 말이 그대로 실감 났다.

지금 와서 보면 한국에는 두유나 간단하게 마시면 되는 환자식이 많던데 그때에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구할 방법도 없었다.

병문안 가면서 복숭아 캔을 왜 많이 사가는지 바나나 우유가 얼마나 위력적이 음식인지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 중에 코리아 타운에서 그런 음식을 사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복숭아 한 입, 바나나 우유 한 모금에 온몸의 신경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듯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면서는 “혹시 제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더라도 절대로 회항하지 마시고 꼭 한국에 데려다주세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리에 여전히 힘이 붙지 않았고 공항에서 30분 또는 그 이상을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15년 중국을 오가는 동안 처음으로 비즈니스 비행기표를 샀다. 아무래도 수속에 드는 시간이 적을 것 같아서 그랬다. 한국식당을 하는 지인은 코로나 예방용이라면서 식당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방호복에다가 외계인들이 쓰는 것 같은 얼굴 전체를 덮는 마스크에 고글까지 챙겨 주었다. 방호복은 차마 안 입었지만 마스크는 다 하고 비행기에 탔다. 색색 하는 내 가쁜 숨소리가 마스크 안으로 울려 퍼졌다. 마치 나도 달나라 가는 우주선에 탄 기분이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순항고도에 이르렀고 놀랍도록 편안했다. 새벽에 집을 나와서 무척 졸렸다. 한 시간 여가 지나니까 내 나라 땅이 보였다. 지난 수 개월 동안 중국에서 생사의 선을 넘나들었는데 국경을 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짧고 평탄했다.


2025년 8월 24일 나는 다시 상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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