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0
스마트드랍 알림이 화면을 찢고 들어왔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그 문장이 눈동자에 새겨져 꺼지지 않는 잔상처럼 떠다녔다.
손끝에서 체온이 빠져나갔고, 손바닥의 땀이 식으면서 미세한 떨림이 시작됐다.
심장이 규칙을 잃고 달렸다.
두근, 쿵, 또 두근. 박자가 깨진 드럼 소리처럼 가슴을 두들겼다.
주변의 소리가 팽창했다.
자동차 경적, 신호등이 바뀌는 삑 소리, 누군가의 웃음.
모든 음향이 과장돼 귀 안쪽을 긁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잉크 번지듯 흐려졌다가 또렷해졌다.
누구나 발신자 같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뜨릴 뻔한 휴대폰을 악착같이 움켜쥐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신호가 켜졌는지 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생각이 뒤를 쫓았다.
나는 정처없이 도시를 떠돌았다.
어딜 가도 같은 문장을 떠올렸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협박이면서도, 동시에 판결 같았다.
나는 판사 앞에 선 죄인처럼 어깨를 웅크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발바닥이 화끈거렸고 종아리에 경련이 났다.
나는 본능처럼 집을 향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등을 대자, 그제야 몸이 제 무게를 떠올린 듯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켰다. 숫자가 떨리는 듯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도시를 헤매는 동안 몇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나는 물컵을 쥐었다가 입에 대지도 못하고 내려놓았다.
손아귀에 남은 흔적이 컵 벽에 하얗게 찍혔다.
거실을 천천히 돌았다.
낡은 소파, 퇴색한 러그, 켜지지 않은 스탠드.
이 평범한 사물들이 오늘 밤 내 마지막 증인이 될지도 모른다.
창문을 조금 열어 찬 공기를 들였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살아 있다고, 아직 내 몸은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는 감각 하나.
숫자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줄었다.
'이 시간이 0이 되면 정말 난 죽는 건가?'
정신을 잃은 듯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밖은 어두워졌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누워있었는데 복도 쪽으로부터 진동이 울려왔다.
철컥. 끼익, 탁.
문이 열렸다 닫혔다.
두 명, 아니 셋. 검은 마스크와 캡 모자, 자국 없는 장갑.
불빛을 등지고 들어온 탓에 얼굴 윤곽이 그림자에 녹았다.
“뭐...뭐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매끄러운 동작으로 내 손에서 휴대폰이 빠져나갔다.
다른 손이 내 어깨를 눌렀다.
고통은 최소화된 각도로 정확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연습된 손놀림.
거실 테이블에 내 노트북이 펼쳐졌다.
그들의 손놀림에 화면이 연달아 뜨고 꺼졌다.
[계좌 이체]
[2단계 인증]
[지정 기부처]
마치 내 손으로 세팅해둔 길을 그들이 그대로 걷는 것처럼, 동선이 부드러웠다.
잠깐 눈을 의심했다.
검은 창에 흰 글자들이 흘렀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속도와 정확도로.
내 휴대폰의 메모장이 자동으로 열렸다.
“나는 더 이상...”
문장이 스스로 타이핑됐다.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 싫을 만큼 완벽한 ‘내 말투’였다.
그들은 내가 몇 달간 인터넷에 남긴 텍스트, 회사 메신저에서 쓴 문장, 포털에서의 검색어를 모사해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더 나답게.
나는 몸을 틀어 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입안의 침조차 말라붙었다.
손목을 누르는 압력이 최소한의 고통만 남기고 모든 저항을 무력화했다.
“가만히 있어요.”
낮고 평평한 목소리. 명령이라기보다, 절차의 한 줄.
휴대폰 화면의 숫자가 마지막으로 반짝였다.
[0]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멈춘 듯했다.
초침도, 냉장고의 모터 소리도, 내 호흡도.
정적 한 장 뒤에 세계가 다시 재생됐다.
TV에서 켠 것도 아닌데 낮은 알림음이 울렸다.
그들은 유서 파일의 최종 저장을 확인하고, 내 계좌에서 마지막 금액이 빠져나가는 걸 함께 지켜봤다.
어디론가 연결된 ‘승인’의 줄기가 화면 아래에서 끊어졌다.
누군가는 내 손가락을 잡아 무언가에 ‘동의’ 버튼을 누르게 했다.
지문과 촉감이 전송됐다. 법적 정합성의 형식을 위한, 아주 작은 터치 한 번.
그다음 절차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독약 냄새. 차갑고 얇은 무언가가 살을 스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반쯤은 스스로, 반쯤은 타성으로.
몸 안의 소음이 멀어졌다.
시야 가장자리에, 그들이 낮게 주고받는 속삭임이 걸렸다.
“완료.”
“로그 정리해.”
“다음 후보는 접속했다.”
다음... 후보.
단어가 물속에서 흔들리듯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떠올린 건, 첫날 지하철의 형광등이었다.
그 흔들리는 빛 아래에서 나는 비겁했고, 그 뒤를 따라붙은 거창한 정의감, 그리고 오늘 밤의 무력함.
내 의지였든, 그들의 설계였든
결과는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