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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아주 Sep 29. 2021

47년생 엄마 #12

딸이 써주는 자서전

제5장 군산에서 다시 시작(24~35세)     


군산에 정착한 어머니

    

  세월이 흐르니 빚은 서서히 줄어든다.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군산에 오셔서 하소연을 다.

“안동에는 친척도 없고 외로우니 너 따라와서 살아야겠어. 너는 식복도 많고 우리 집 복덩이니 너랑 가깝게 살아야 해.”

어머니는 자꾸 군산에 와야겠다고 했다. 엄마 의견에 대해 좋다 싫다 말할 수 없어 언니와 상의했다.

“언니, 어머니가 군산으로 와서 우리랑 같이 살고 싶다고 하시니 어쩌면 좋을까?”

“어머니 한 분만 오시면 괜찮지만 의붓아버지가 워낙 별나니 여기 와서도 자꾸 어머니랑 싸우면 그 꼴을 어떻게 보겠니. 오시지 말라고 그래.”

나도 의붓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군산에 오시는 게 탐탁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냥 안동에서 사시라고 했다.

“아니야, 나는 너 따라와서 살 거야.”

“여기서 뭐해서 먹고살게요....”

“그래도 군산으로 이사 갈 거야.”

어머니는 막 무간으로 군산에 오신다고 했다. 어머니 문제로 다시 언니를 만나 상의했다.

“언니, 어머니가 자꾸 군산으로 이사 오신다고 그러네. 어쩌면 좋을까?”

“어머니가 군산 오시면 뭐 해서 먹고 사신대?”

“어머니가 안동에서도 정구지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군산에서도 땅 사서 정구지 농사를 지으면 어떨까? 남편이 집에서 놀고 있으니 같이 농사지으라고 하면 되지.”

“그럼 네가 알아서 해봐.”

어머니가 군산 오시는 것은 이 말로 결정됐다.  


  나랑 어머니는 복덕방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군산 땅을 보러 다녔다. 맘에 드는 땅이 나타났는데 3000평에 7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그날 저녁 언니네로 가서 형부를 만나 의논을 했다.

“형부, 좋은 땅이 나왔는데 그 땅을 사면 어머니 집 살 돈도 없고 땅 값도 좀 모자라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그 밭은 너무 비싼데.... 내가 알아볼 테니 나한테 맡기고 좀 기다려봐.”

며칠 있다가 형부가 좋은 땅을 구했으니 가보자고 했다. 거기는 은파호수 옆 산비탈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나운동 영창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다. 평수는 오천 오백 평인데 커다란 집도 딸려 있었다. 집에는 방 두 칸, 큰 헛간, 10칸도 넘는 돼지우리가 있었다. 밭은 2000평 정도가 평평한 평지에 있고 나머지는 산비탈이었지만 모두 밭으로 만들어 놔서 농사는 다 지을 수 있었다. 내가 그 땅을 쳐다보니 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 땅 값은 모두 550만 원이라고 했다. 전에 본 땅보다 평수도 많은데 땅 값까지 싸니 당장 계약금을 걸고 계약을 했다. 


  어머니는 그 길로 안동에 가서 집도 팔고 내가 시집가기 전에 사놓았던 논 한 떼기도 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전부 750만 원이다. 큰 동생은 막 군대를 가서 어머니, 아버지, 둘째 동생, 셋만 군산으로 왔다. 둘째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에서 재수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사 온 집의 밭은 진흙 밭이라 정구지 농사를 지으려면 너무 딱딱하니 모래를 섞어야 정구지가 잘 자란다고 하면서 모래를 100만 원 값이나 사서 넣었다. 군산에는 정구지 씨앗도 없어 대구에 주문해 한 말을 샀고 거름도 많이 샀다. 땅값 치르고 이전비용, 이사비용까지 군산에 정착하는 데 밑천이 많이 들어 남은 돈은 50만 원뿐이었다. 그것도 둘째 동생 재수 비용으로 써야 한다면서 겨우 남긴 돈이었다.

서울 농약사는 정구지 씨앗을 구해 준 이후로 단골이 되었다(2021)


  둘째 동생이 전주로 떠나고 어머니, 아버지는 사위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남편이 처갓집 정구지 농사를 짓는데 공짜로 지어줄 수는 없지.’

개정에서 돼지를 사다가 판 게 생각나 언니 네에서 하숙하던 남자애네 집에 가서 돼지 새끼 열 마리를 사다가 남편에게 주었다.

“우리 빚도 갚고 해야 하니 돼지 잘 먹여요. 크게 키워서 팔아보게요.”

“이왕 먹이려면 소도 한 마리 사. 산비탈에 풀이 좋아 소가 잘 될 거야.”

대야장에 가서 최고 이쁜 암송아지 한 마리를 5만 원 주고 샀다. 남편은 원래 천성적으로 동물을 좋아해 송아지와 돼지를 잘 키웠다. 정구지도 군산에 없던 채소라 베어다 팔면 아주 잘 팔렸다. 아침저녁으로 천 평이 넘는 밭에서 어머니, 아버지, 신랑이 베어다가 200 다발을 만들어 놓으면 남편이 자전거로 실어 날랐다. 그러면 청과물 시장에 경매에 붙이기도 하고 내가 팔기도 했다. 남편이 정구지를 판 돈을 매일 갖다 주니 어머니는 정말 좋아하셨다.               


머슴살이

    

  어머니가 군산으로 이사 오신지 두 번째 가을이 되었다. 둘째 동생은 전주에서 재수를 했었는데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둘째 동생 대학 등록금을 모으고 있었는데 아들이 대학에 떨어졌으니 그 돈으로 논이나 한 떼기 더 사야겠다고 다. 땅을 알아보니 군산 수송동 논 한배미가 350만 원이었다. 그 땅이 지금 수송 택지 개발지구로 들어간 수송 공원 부근에 있는 땅이다.

“태복아, 논 사려면 돈이 모자라니 네가 소를 좀 팔아라.”

“안돼요. 김서방이 얼마나 정성으로 길렀는데요.”

소가 이쁘게 잘 커서 돈도 많이 받게 생겼는데 어머니가 소를 자꾸 팔아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소를 팔아 돈을 드렸다. 어머니는 사위가 키운 소를 팔아 땅을 산 게 들통날까 봐 남편에게는 소를 팔아 우리 빚을 갚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게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둘째 아이 다리 아플 때 빚진 돈은 돼지 열 마리만 팔아서 갚았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남편은 일 년간 처갓집에서 머슴살이하면서 자기가 먹인 돼지 열 마리 값만 받은 셈이다.


  하루는 남편이 그 많은 밭농사 일을 하려니 너무 힘들다고, 또 새벽에 정구지 싣고 나가 파는 것도 힘들다며  짜증을 냈다.

“나 없을 때 첫째도 어머니가 데려다 키웠는데 그것도 못해요? 큰 동생 군대 갔다 올 때까지만 참고 일을 해봐요.”

이 문제로 남편과 한바탕 싸웠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말했다.

“김서방은 자기 일당을 따로 다 챙겨갔어.”

“어머니, 김서방한테 그런 말 하면 자기를 도둑놈으로 본다고 처갓집 일 안 할 거예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처갓집에서 일하는 거 힘들다고 해서 다퉜어요. 어머니가 그런 소리해서 김서방이 정구지 안 갖다 팔면 누가 그 일을 해요. 김서방한테는 아무 말 마요.”

어머니에게 김서방에게는 아무 말 말라고 다짐에 다짐을 받고 집에 왔다.


  남편이 청과시장에서 정구지 파는 시간이 아이들 밥 먹는 시간과 겹쳐 나는 남편이 채소를 어떻게 팔고 있는지 잘 몰랐다. 다음날 언니에게 우리 애들 밥 좀 먹여 달라고 부탁하고는 청과시장에 가 보았다. 가서 보니 남편소매하면 경매 붙이는 것보다 돈을 더 받기 때문에 시장 앞에서 정구지를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정구지를 가져다만 놓으면 상인들이 서로 가져가려고 하고 남편은 돈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다발을 세어보니 상인들이 열 두 다발을 갖고 가면서 열 다발 값만 주고 갔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백 다발을 김서방에게 주면 팔십 다발 값만 갖다 주었다며 김서방이 따로 일당을 챙겼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 가서 보니 김서방이 자기 몫을 챙겨간 게 아니고 상인들이 열 두 다발을 가져가면서 열 다발 값만 주고 가더라고요. 이제 아셨으니 앞으로는 김서방한테 아무 소리 하지 마세요. 그냥 팔아다 주는 대로 받으세요.”

어머니를 잘 타이르고 친정을 나왔다. 남편이 실컷 친정 일해주고는 도둑놈 소리를 들으니  속이 상했다.


  수송동 논을 사고 얼마 안 있어 큰 동생이 군대 삼 년을 끝내고 집에 왔다. 동생이 올 때쯤에 돼지가 한 달만 더 키우면 제 값을 받을 텐데 어머니가 자꾸 팔아가라고 해서 팔았다. 남편은 처남한테 자기가 한 일을 다 넘겨주고 처갓집을 나왔다. 처갓집 머슴살이를 끝내고 그 뒤로  아침에 나랑 청과시장에 같이 갔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날라다 주기도 하고 오후에는 집에 와서 애들 밥도 먹이고 하니 내 일이 한결 수월했다.

어머니는 남편을 내친 뒤로 큰 동생과 그 땅에서 일 년도 제대로 농사를 못 지었다. 따박따박 들어오던 돈도 없고 일이 힘에 부치니 어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하소연을 다.  

“시골에서 살면 아들 장가도 못 보내고 아들 신세 다 망치겠어. 나도 이제 늙어서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 그러니 네 집하고 우리 땅 하고 바꾸자.”

우리 집은 달동네지만 그래도 군산 시내에 있었고 세가 잘 나가 세만 받아도 밥은 먹고살 수 있었다. 여태까지 어머니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참고 있다가 어머니 말에 싫은 소리를 좀 했다.

“어머니는 입이 방정이야. 큰 동생이 군대 갔다 왔으면 다만 일 년이라도 더 김서방을 데리고 일을 했어야지. 그 어린것이 무슨 일을 할 줄 안다고 아들 왔다고 김서방을 내쳐요? 내치긴....”

당연히 어머니 땅과 우리 집은 바꾸지 않았다.      


시아버지   

  

  남편이 처갓집에서 일할 때 강아지 한 마리를 사다 놓았는데 신랑이 잘 먹여서 강아지가 소만큼 컸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개고기가 드시고 싶다면서 우리 집에 오셨다.

여보, 친정 가서 개 좀 잡아오세요.”

남편은 처갓집에 가서 개를 잡아 가지고 고기를 전부 들고 왔다.

“개를 잡았으면 다리 하나는 처갓집에 주고 오지 왜 다 가지고 왔어요?”

남편그때까지도 처갓집에서 일해주고 좋은 소리 못 들은 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시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한 20일 동안 계시면서 그 커다란 개를 다 잡수셨다. 마지막 보신탕을 끊여드리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버님, 개 한 마리 다 드셨어요.”

“개고기 다 먹었으면 집에 가야겠다.”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집에 가시려고 다. 오실 때 한복을 입고 오셨는데 옷이 새까매져서 구시장에서 산 새 한복을 내 드렸다. 구시장에는 한복집이 많았다.

“아버님, 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가세요.”

시아버지는 원래 우리 집에 오실 때부터 몸이 좀 안 좋으셨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내가 장사하느라 시간이 없다 보니 약 한 첩도 다려 드리지 못했다.

“아버님 계시는 동안 제가 약도 한 첩 못 해드렸네요. 이거 약값 하고 아버님 용돈이에요. 많이 넣어 드렸어요.”

시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얼굴이 환해졌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용돈도 두둑이 받아 집으로 가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신 뒤 보름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젊은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먹었으면 어떤 병이 있어도 털고 일어설 텐데 연세가 많으시니 병을 이기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의성 큰집에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그때 벌써 딸만 넷이었는데, 셋은 언니에게 맡겨두고 젖먹이 막내딸만 데리고 남편과 시아버지 초상을 치르고 왔다. 일 년이 지나고 시아버지 제사 지내러 갔더니 먼 친척 아지매가 나를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시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잘해주어서 너무 고마워.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네 집에 가서 잘 먹고 잘 지내다 왔다고 그렇게 칭찬하시더라고. 그 어르신이 군산 갔다 오셔서 하신 말씀이 우리 둘째 며느리가 내가 죽을 때 가지고 가라고 돈도 많이 주고 개도 한 마리 잡아 주어서 정말 잘 먹고 왔다면서 둘째 며느리는 정말 착하다고 자랑을 많이 했어. 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옷이 이상해서 뜯어보니 그 옷에 며느리가 준 돈을 넣어 가지고 가지 못하게 꿰매 놓으셨더라고. 죽어서 빈손으로 갈 수 없으니 노자 돈 한다면서 넣어 두셨나 보데. 며느리가 노자 돈 많이 주었다면서 그렇게 둘째 며느리 자랑을 하셨어.”

아지매는 내 손을 꼭 잡으며 토란꽃을 쥐어 주셨다.

“토란꽃이 쉽게 피지 않는데 토란꽃이 핀 걸 보니 자네 생각이 나서 곱게 간직해 두었어. 이 꽃을 꼭 다려서 먹고 아들 낳아.”

아기를 낳으면 딸만 낳아서 아기는 그만 낳으려고 생각했는데 아지매가 꼭 아들이 있어야 한다면서 아들 낳으라고 하는 바람에 아기를 한 명 더 낳기로 결심했다.     


배다른 시동생     


  시아버지 초상을 치르고 얼마 안 있다가 막내 시동생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시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시아버지가 재가하신 후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 시동생이 온 것이다. 시동생은 돈 2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뭐에 쓰시게요?”

“애인이 친정에 가 버려서 애인 데리러 가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요.”

시동생은 집에도 가지 않고 막 무간으로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며 졸랐다. 할 수 없이 물건 판 돈을 입금해야 하는 데 거기서 돈을 꺼내 빌려 주었다. 그런데 그 뒤로 시동생은 돈을 갚아 주지 않았다. 내가 아기를 리어카에 태우고 장사 다니면서 그 빚을 다 갚았다. 돈 빌려가는 사람들은 갚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빌려 가는데 나는 돈 벌어다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 혼자 돈 벌어서 생활하랴 빚 갚으랴 정말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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