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써주는 자서전
2017년 육아 휴직했을 때 엄마 자서전을 대신 써 드렸다. 글을 다 쓰시고 자비 출판을 하기 위해 인쇄소를 찾아 견적을 냈다. 진짜 출판의 코앞까지 갔는데 내가 복직을 하면서 4년이 지났다.
“엄마 글 마무리 짓게 뒷얘기 좀 써봐.”
엄마를 독려하기 위해 잘 나오는 볼펜까지 사 드렸다.
“이제 글을 쓰려면 손가락이 아파서 못 쓰겠어.”
돌아오는 답은 “그만 쓴다”였다.
엄마는 손가락이 아프시면서도 군산과 신안 지도를 오가며 밭농사를 지으신다. 시골에 모셔다 드리면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밭으로 가 작물을 돌보고 잡초를 뽑으신다. 또 군산에 오시면 언니네 논둑에 콩, 고추를 심고 가꾸신다. 올해는 우리 시댁 밭까지 맡아서 농사를 지으셨다.
“엄마는 일을 좋아하나 봐.”
“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일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엄마가 일을 자꾸 만들잖아.”
“그럼 빈 밭을 그냥 둬?”
빈 밭을 그냥 두면 잡초가 올라와 못쓰게 되니 무조건 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게 엄마의 논리다.
전에는 억지 부리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빈 밭을 그냥 놀리면 되지 애써 농사지어 남에게 퍼주는 일을 하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 자서전을 쓴 지금은 엄마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된다. 하천 둑에 농사짓다가 새마을 사업 때문에 뺏겼던 기억이 엄마를 이렇게 억척스럽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대구 가는 기차에서 애기 둘 데리고 너무 배가 고팠던 기억 때문에 먹을 것을 자꾸 만들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추석에도 엄마는 엄마네 아파트 옆에서 과일을 팔았다. 못 판 것은 군산 구 역전 새벽시장에서 팔기도 하고 나운동 시장에서 팔기도 했다. 올해 추석에는 둘째 언니 딸이 내려와 엄마와 함께 있었다.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사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모, 새벽시장에 가보니 할머니 과일이 너무 많아서 못 팔면 도로 가져오려고 차 트렁크 치우고 있었거든. 근데 한 시간도 안 돼서 할머니한테 전화가 온 거야. 다 팔았다고.”
조카는 놀라워서 얘기하는데 나는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엄마는 원래 그랬다. 그렇게 돈 벌어서 엄마 집에 온 손주들 용돈을 두둑이 주셨다.
“아이고, 이 짓도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엄마는 농사 그만 지어야지, 과일도 팔지 말아야지 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신다. 내가 옆에서 봐도 이제 힘에 부치시는 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 이제 그만해.”
내가 이렇게 응수하면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올해까지만 하고.”
엄마는 늘 이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