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써주는 자서전
딸을 셋 낳고 네 번째 아기를 스물일곱에 가졌는데 육 개월 만에 유산을 했다. 그때가 친정집에서 돼지 열 마리 키울 적이다. 시내 음식점에다 돼지 먹이게 음식 쓰레기를 모아달라고 부탁해서 내가 날마다 리어카에 그 음식물을 실어다 돼지를 먹였다. 유산을 했어도 그 일이 내 일이니 음식점에서 친정집까지 5km 정도 되는데 그 먼 길을 유산한 다음날 음식물을 담아 리어카에 실어 날랐다. 그때가 늦은 가을이라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는데 나는 무거운 것을 끄느라 땀이 많이 났다. 땀을 많이 흘린 데다 찬바람을 쐐서 그런지 코에 바람이 잔뜩 들어 그 뒤로 코가 막히고 코가 목 뒤로 넘어가 머리가 아팠다.
코에 좋다는 약은 다 해 먹고 이비인후과를 그렇게 다녀도 낫지 않았다. 옛말에 산후풍은 어떤 약도 고치지 못한다더니 하루만 병원에 안 가도 밥 먹다가 코가 목으로 넘어가서 코를 풀고 밥을 먹어야 했고 성당에서도 코가 막혀 한 시간 미사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하느님, 제 병을 고쳐 주시던지 저를 데려가시던지 해 주세요.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제 병을 해결해주세요.’
성당에 가서 눈을 감고 울면서 기도를 했다. 이렇게 몇 년을 축농증으로 고생을 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 마당에 심어놓은 봉숭아꽃을 따서 발톱에 물을 들였다. 내가 하루 종일 신발을 신고 살다 보니 발에 무좀도 있고 겨울에는 발이 얼었다 녹았다 해서 발이 더 가려웠다. 너무 가려워서 긁기 시작하면 피가 나도록 긁어도 가려워서 저녁에 집에 오면 소금물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했다. 무좀에 좋은 약을 다 써도 낫지 않았는데 봉숭아꽃을 으깨 발톱에 묶어놓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그렇게 가렵던 발가락이 하나도 가렵지가 않았다.
‘아! 봉숭아꽃을 따서 발바닥을 문질러 보자.’
발바닥에 있는 무좀을 없애기 위해 봉숭아꽃을 따서 발바닥을 문질렀더니 가려운 것이 사라졌다. 또 머리가 아플 때는 봉숭아꽃 이긴 것을 이마에 얹고 한참을 묶어 두면 머리도 씻은 듯이 나았다. 정말 신기했다.
‘여름에는 봉숭아꽃이 있지만 겨울에는 꽃이 없으니 어떻게 하지? 아! 소주에 꽃을 따서 담갔다가 그 물을 발라보자!’
술 담는 큰 소주를 사서 그 병에 봉숭아꽃을 잔뜩 따서 넣어두고 꽃물을 만들었다. 그것을 발에도 바르고 축농증이 있던 코에도 면봉으로 살살 발랐다. 목으로 넘어가는 콧물이랑 가래가 있으니 꽃물을 한 모금씩 마시기도 했다. 그러면 가렵던 발도 가렵지 않고 축농증으로 고생하던 코에 염증도 생기지 않았다. 추운 시장에서 장사하느라 몸이 얼었다 녹았다 해서 몸에 두드러기도 많이 나고 가려움증도 많았다. 겨울에는 얼굴에 동상이 걸려서 얼굴 여기저기에 얼음이 박혀 곪아 터지곤 했다. 이런 증상에 약도 없었는데 봉숭아 꽃물을 가려운 몸에 바르면 그 가려운 기가 없어지고 얼음 박힌 곳에 바르면 그곳도 나았다. 처음에는 낫는 것 같지 않았는데 가려우면 발라주고 아토피처럼 살이 일어나면 또 발라주고 그랬더니 가렵지도 않고 일어난 피부도 잘 가라앉았다. 귀도 가려워서 딸에게 귓속 좀 긁어달라고 한 적이 많았는데 면봉으로 귓속도 꽃물로 계속 닦아주었더니 귓속도 깨끗해지고 가려운 것도 없어졌다.
치아는 아기 하나 날 때마다 세네 개씩 무너지기 시작해서 아기 다섯을 낳고 나니 이가 다 무너지고 한 개도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틀니를 하고 다니다가 임플란트가 나와서 틀니를 빼고 이를 심었다. 이를 심고 보니 음식을 먹기만 하면 치아에 음식물이 끼어 칫솔로 닦아도 잘 빠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사라고 한 물을 쏘는 칫솔을 사다가 헹궈봤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봉숭아 꽃물로 입을 헹궈보자.’
그래서 생각다 못해 봉숭아 꽃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 우물우물해 봤는데 잇속에 낀 음식물이 싹 빠졌다. 요즘은 밥만 먹으면 꽃물로 입안을 헹군다. 이렇게 하니 잇몸도 튼튼해지고 입안도 깨끗해졌다. 전에는 목에 가래가 많이 껴서 가래를 뱉어내곤 했는데 요즘은 하루에 두세 번씩 꽃물을 마시니 목에 가래가 끼지 않아 정말 좋다. 전에는 매일 병원에 안 가면 곧 죽을 것만 같았는데 꽃물을 발견한 뒤로는 병원 한번 안 가고 잘 지낸다.
‘하느님, 저에게 이렇게 좋은 약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국을 다 돌면서 보금자리로 찾은 땅은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이다. 여기에 땅 오만 평을 사서 칠 년간 농사를 지었다.
‘올해는 어떻게 농사를 지으면 좋을까? 양배추를 심어 보면 어떨까? 양파를 심어 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이렇게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농사일을 해봐도 농사를 많이 지어보지 않아서 잘 몰랐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농사를 짓다 보니 자꾸 요령이 생겼다. 한 해 한 해 일을 하다 보니 그 지역의 특산물은 무엇이고 어떤 작물이 그곳에서 잘 자라는지 알게 되어 농사일이 점점 쉬워졌다. 처음에는 뭘 물어도 잘 가르쳐주지도 않던 지역 주민들도 내가 칠 년이나 살다 보니 서먹서먹한 것도 없어지고 함께 잘 어울리게 되었다. 내가 농사짓는 얘기를 하다 보면 지역 주민들이 나에게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지도에서도 차츰차츰 살기가 좋아졌다.
일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내 나이 칠십 줄이라 이제는 몸 여기저기에 병이 와서 일을 보면 무서워진다. 힘든 일은 못하니 이제까지 살아온 글이나 써볼까 하고 책을 놓고 읽어도 보고 써보기도 했다.
‘평생 공부를 하지 않아 답답하게 살아왔는데 나이 칠십에 공부해서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을 쓸 수 있을까?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
이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마음먹고 글을 쓰지만 읽는 것은 어느 정도 되는데 쓰는 것은 배우지 않아 받침이 엉망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알아볼 수가 없다. 큰 딸과 막내딸이 내 집 근처에 살고 있어 글공부를 가르쳐 주고 내 나름대로 글을 써 보기는 하지만 말할 수 없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