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기업실사란?
오랜만에 현지 실사 및 인터뷰를 했습니다.
간만에 하려니 조금 버벅거리기도 했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따르려다보니 여러가지 의문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기업 실사와 탐방에 정해진 룰이라는 건 없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루틴을 정해놓으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간 경험을 통해 생각했던 '기업 실사 잘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무의미한 브리핑은 지양
기업 실사 자리는 회사 대표 자격으로 상대방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조금 오버해서 이야기하면 저는 늘 제가 일하는 기관의 대표이사 자격으로 해당 자리에 임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제 시간 못지않게 상대방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보고 불필요한 말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불필요한' 말이라 하면 사전에 충분히 자료로 제공되었던 것들의 리마인드입니다.
IM 자료의 내용을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읽어 주시는 것처럼 고대로 따라 읽는 것은 소중한 우리의 기업 실사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밥은 내돈으로 사먹자
예전 은행에 있을 때 한심한 선배 심사역이 한분 있었는데, 이분은 실사를 갈때마다 제일 먼저 챙기는 게 그 동네의 맛집이었습니다.
심사는 뒷전이고 승인 여부는 상대방이 제대로 된 맛집에서 대접을 했냐, 그렇지 않냐에 달려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가 40대 중반에 불과했는데...참 꼰대 of 꼰대입니다)

기가 찰 노릇이긴한데, 재밌는 건 이런 잘못된 행태를 상대방도 느낀다는 겁니다.
결국 그 선배의 한심한 행동은 소문이 났고 그 뒤로는 뭐....설명 안하겠습니다.
사무실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다니는 것은 즐겁고 보람찬 일입니다만, 그만큼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죠.
부디 밥은 자기돈으로 사먹는 심사역이 되기를 바랍니다.(그렇다고 제가 청렴결백한 인간이라는 말은 아님)
3. 편견없이 보기 (단, 새로운 시각으로)
과거 연수원에서 심사 관련 교육을 듣다보면 백발의 할아버지 교수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하셨죠.
'사업장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그 기업은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것이다'
필드에서 직접 경험을 해보니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야 비재무적인 부분을 심사에 감안한다고 이런 '라떼'식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해당 건물 화장실 관리를 회사에서 하는지, 아웃소싱 업체어서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심사에 독이 됩니다.
무엇보다 입만 산 IR 담당자와 번지르르한 건물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심사 담당자의 미팅에 맞춰서 화장실을 깨끗하게 치워 놓는다면?)

갑자기 미팅 자리에서 본인들의 잘못된 금감원 다트 공시가 탈로났던 모제약사의 IR 담당자가 떠오르네요.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다 보인다는 거. 잊지 마시길.
4. 실사 준비는 확실하게
최근 재미나게 읽고 있는 책 '한국형 가치투자-최준철, 김민국'에 나오는 말입니다.
'기업 탐방 고수는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탐방 현장의 리듬을 타면서 주식담당자로 하여금 편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모두 말하게끔 한다'
정말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표현.
그런데 저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수입니다.
준비없이 어설프게 주식 시장 기웃거리며 이야기 한 두개 이야기하는것?
다 걸러집니다.
5. 장기자랑 자리 아님
가끔보면 실사 자리에서 본인의 지식을 뽐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이만큼 알고 있어'에 있죠.
근데 가만보면 그마저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참고로 저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던집니다.
'포크레인 한 대 가격은 얼마인지?',
'탄피는 재활용이 가능한지?'등이 좋은 예시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멋들어진 증권가 종목 소개 리포트 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지요. (근데 막상 애널리스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 업계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계약형태와 용어도 모르겠으니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이야기하죠.
어설프게 아는 척하는 건 싫어요.

적성에 안 맞기 때문이죠.
추가로 최대한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합니다.
이때 질문도 많이 하지만 꼬리 물기 질문도 계속하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취조식으로 하면 곤란해요.
다만 대답이 계속 이어지는지, 만족할만한 것들이 나오는지 테스트 해보면서 상대방이 이 딜에 얼만큼 능통한가를 체크하는 것이 주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기업의 정보와 상대방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나'의 말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
결국 진심을 다해 듣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인것 같습니다.
...
간만에 실사를 다녀오고 관련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써봤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실사와 탐방은 무조건 많이, 자주 가시길 바랍니다.
생각보다 직접 보는 것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이죠.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