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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심사 실패했습니다 Part 1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와 담보가치
by
고니파더
Sep 3. 2024
최근 여러 댓글 중 눈길이 가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요.
"고니파더의 심사 실패사례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라는 자책과 함께 실패 사례를 시리즈로 올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준비한 오늘의 주제는 바로 '심사 실패 사례'입니다.
참고로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 경험이 있습니다.
프런트에서 근무할 때, 심사역으로 근무할 때도 실수한 경험이 있습니다.
(많아요. 아주 많아 -.-;)
돌이켜보면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그 실패를 토대로 배울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실패를 너무 배척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낙인찍는 문화를 그래서 제일 싫어합니다.
단순히 실패했다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그보다 좋은 교보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실패를 실제 업무에 잘 적용해 보자고 시도한 (?) 신한은행의 사례입니다.
신한은행, '실패 연구팀' 발족 - 매일경제 (mk.co.kr)
참고로 여기서 실패는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심사를 잘못해서 연체가 발생한 케이스
입니다.
보통 전형적인 심사 실패 사례라고 볼 수 있죠.
두 번째는
리스크를 잘못 판단해서 (여기서는 과다 판단) 투자해도 되는데 부결을 한 케이스
입니다.
정확히는 적절한 투자시점을 놓친 걸 의미.
제때 높은 금리로 투자를 못해 수익 기회를 놓치는 것.
저는 이것도 심사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먼저 심사를 잘못해서 연체가 된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심사역 생활을 하면서 첫 번째 실패로 기억됩니다.
전체 금액은 약 30억 정도였고 7억 가까이 손실이 난 걸로 기억
하네요.
저에게는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뿌리듯 아픈 경험입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A 업체는 대전 산업단지 내 위치한 스티로폼 제조 공장으로, 주로 건축자재 일부 (단열재 등)로 사용되는 스티로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곳이었습니다.
타행에서 대출을 추가 신청한 상태였는데 원하는 한도가 나오지 않아 거래선 변경을 요청한 상황.
담보로 제공되는 공장 물건의 감정가는 40억 정도, 공장재단으로 기계장치를 포함하는 가치였습니다.
당시 규정상 LTV가 약 70% 정도였고 임금채권은 신용등급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차감 가능한 예외 규정을 적용했습니다.
담보로 커버되는 부분은 약 26억, 나머지 4억 정도가 신용 익스포져로 기억됩니다.
1. 먼저
과거 은행 거래내역을 살펴보니 이자 연체나 납입 지연 등이 없었습니다.
장부상 이자보상배수는 1.0배로 간당간당했지만 EBITDA 기준에서는 1.3배 정도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실수를 합니다.
→ 증액되는 대출금액 기준 (약 5억) 상환력을 재평가하지 않은 점.
→기계장치와 공장 내용연수가 거의 다 차서 추가 발생 감가상각비가 준다는 점.
이 두 가지를 체크하지 못했죠.
증액 대출금으로 시설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출액 증가를 기대하기는 힘든 구조였습니다.
그렇다면 기존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 늘어난 차입금을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약정 시 신용부분 원금상환을 요청할 때만 해도 저항이 없었는데, 자금이 지원되고 얼마 안 된 순간부터 원금 부분의 상환유예를 요청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게 되었죠.
2.
담보대출 대비 신용대출 비중이 과소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30억 대출 기준 신용대출이 4억이면 비중이 약 13% 정도입니다.
일반적으로 프런트 주장처럼 심사 판단할 때 여기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 큰 패착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실수.
사실
신용대출 비중이 전체 대출에서 얼마를 차지하는가는 결정을 할 때 그리 큰 고려요소가 아닙니다.
상환력이 안 나오면 못하는 것이고 나오면 투자를 하는 거죠.
그런데 담보가치에 매몰된 겁니다.
흔히 말하는
'담보대출은 연체가 되어도 건질 것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습니다.
3.
공장 담보물건의 낙찰가율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2번의 담보가치에 매몰된 것과 같은 실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LTV를 적용해서 유효가가 나오면 뭐 하나요?
그건 내부 규정일 뿐.
결국
핵심은 경매 낙찰가율
입니다.
공장담보, 거기다 기계장치까지 포함된 공장재단의 경우 낙찰가율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유는 그만큼 토지가치가 적다는 거니까.
결국 신용 익스포져는 4억에 불과했지만 손실이 7억 가까이 발생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공장과 같은 특수물건을 다룰 때에는 중점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4.
대표자의 재무융통성을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각각 200%, 50%가 넘어가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해당 기업 자체의 재무안정성은 열위한 상태.
이 약점을 보완하려면 대표이사, 관계인의 재무융통성 파악이 필수입니다.
이 부분을 지나친 이유는 역시나
'전체 대출금액에서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라는 것에 너무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5.
비재무적인 요소 (ex-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가중치가 너무 컸습니다.
다섯 번째 실수와 관련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림 하나.
해당 공장에서 인터뷰하려고 주변을 찾아보니 산업단지 내에 있어서 인터뷰할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런 저를 대표이사는 직원식당으로 안내했고 거기서 면담을 진행하게 됩니다.
식당에 계신 주방 아주머니
로 보이는 분이 맥심 커피를 정성스럽게 타서 종이컵에 주시더군요.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식당 아주머니를 가리키며 하는 말.
"제 와이프입니다. 여기에서 일합니다"
이 말을 듣고 밑도 끝도 없이 그 업체에 대한 신뢰감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지금도 참 미스터리하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그때 당시에 아마 제 머리와 마음속에는 이런 의식의 흐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표자와 그의 배우자가 공장에서 하루종일 있는다 → 사업에 진심이다 → 쉽게 망가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당시 저는
비재무적 요소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다
고 생각합니다.
이게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해당 여신을 사후관리 하면서 알게 된 가장 직접적인 연체 사유는, 다름 아닌 구매업체와의 문제로 인한 자금 부족.
이것이 결정타 였더군요.
스티로폼 기존 원료 제공처인 국내업체보다 싼 가격을 제시한 중국 수입업체를 선택했는데,
이 부분이 트리거가 되어 잘 운영되던 기업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진 겁니다.
싼 가격으로 원재료를 구매하려고 중국업체를 컨택했는데 제품도 확인 안 하고 돈을 먼저 보내버린 거죠.
제품은 안 오는데 구매처에서 계속 선급금을 요청했고 (약 3억 이상) 결국 구매처가 야반도주해버리면서 운전자금이 콱 막혀 부도가 난 사례였습니다.
'3억 가지고 회사가
망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여유자금이 많지 않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재무융통성이 조금 더 있었다면 회사가 버틸 수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쉬운 부분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실패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사이트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걸 알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부디 저와 같은 실수를 여러분들은 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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