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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실패했습니다 Part 3

김 공장과 메자닌 금융

by 고니파더

주말에 김 수출 기사를 접하고 떠오르는 심사 건이 있어서 심사 실패 사례와 연결 지어 써 봅니다.


참고로 기사에 나오는 분도 예전에 한번 심사를 했던 기억이 있네요.


3평짜리 가게에서 출발… 코스트코 876곳에 김 납품 (chosun.com)


먼저 적정 투자 금액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투자나 여신 의사결정을 내릴 때 지원하는 금액이 얼마인가가 중요한 순간이 간혹 있습니다.


상대방에서는 30억을 요청했는데 30억은 너무 많은 것 같고 20억은 왠지 적은 것 것 같고...담보가치를 감안하면 그 중간인 25억 쯤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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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금액을 결정하는 것도 심사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요청한 금액보다 '적게' 지원을 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심사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사는 보수적이어야 한다' 는 잘못된 선입견이 깔려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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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적극적으로 심사 한다고 하지만 저 역시도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관련해서 오늘은 여신 금액을 제대로 지원 못해 기업이 부실에 빠진 사례입니다.


시작.


제가 영국에 가기 전 검토했던 건이니 2017년 즈음 담당했던 건으로 기억됩니다.


태안에 위치한 김 공장에서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지원을 요청해서 방문했었죠.


참고로 우리나라 김 생산공장은 대부분 서천이나 광천김으로 유명한 충남도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김의 원천인 원초 생산지가 서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천군, '김' 수출 경쟁력 확보 나서...본격 김 산업 육성 (foodtoday.or.kr)


조건은 제조공장을 담보로 제공하는 건으로 유효가액은 약 20억 정도 였고,


업체에서는 미국과 유럽 지역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약 25억을 요청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대출금액 대비 약 5~6억을 증액하는 건.


사장님은 약 50대 후반으로 지역 시장에서 돌김을 직접 구워 판매한 것이 입소문을 탔고, 이를 토대로 약 10억 가까이 매출을 올리는 김 제조 중소기업을 만들어 낸 분이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두 자녀를 홀로 키우며 어엿한 중소기업을 일궈낸 분.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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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은 자금 지원을 22억 정도로 해줬던 걸로 압니다.


업체가 원했던 자금을 모두 지원해 주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담보가치에 매물된 심사가 문제였습니다.


'유효가액이 20억이니 거기에 10% 정도만 신용여신으로 지원해 준다' 라는 내부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놓은 것이 문제였는데,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심사 트렌드가 그랬던 것.


그러고보면 '중소기업의 신용 여신은 담보여신의 10% 내외로 관리한다' 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기가 찬 가이드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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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공장에 가서 직접 인터뷰 해보고 둘러 보고 시식도 해보니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던 곳이더군요.


김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제 생각은 공장 실사를 하면서 조금씩 깨졌는데, 무엇보다 바삭한 맛이 오래 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재밌는 것은 대표자가 제품 생산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죠.


시장에서 김을 굽는 것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그냥 하는 헛말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취급하는 상품의 경쟁력도 일정수준 이상이고 대표의 사업 이해도 역시 훌륭하다는 점을 감안했다면, 원하는 금액을 지원해줘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번째 저지른 실수는 해외 수출에 대한 가능성을 무시했다는 겁니다.


상품도 좋고 대표이사의 경험치도 훌륭했지만 절대 믿지 못했던 부분이 바로 상품의 수출 가능성이었습니다.


업체에서는 Invoice 까지 제시하며 수출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아래와 같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작은 중소기업이 유럽이나 미국에 김을 수출할 수 있겠어'


당시만 해도 김 수출이라는 것은 CJ 같은 대기업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수출 역대 최고 찍었다... K-푸드 대명사로 한국 대표 기념품된 ‘김’ (chosun.com)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이 업체의 수출 경쟁력을 정확히 1년 후에 확인하게 됩니다.


본건 지원을 결정하고 저는 영국 유학길에 올랐고 관광차 파리에 들렀던 어느날.


그 당시 애들이 많이 어려서 하루 중 한끼는 무조건 밥을 먹여야 했었죠.


늘 그렇듯이 현지에 있는 한인마트에 들러 햇반과 조미김을 사려고 하는 그때, 제가 심사했던 바로 그 업체.


그 업체의 조미김을 파리에서 팔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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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기막힌 우연이었습니다.


갑자기 심사역 모드가 발동하였고 사람들이 해당 김을 사가는 걸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해당 김이 불티나게 팔리더군요.


그때 놀랐던 마음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K푸드 한류 현장-프랑스]⑤ “김밥 너무 좋아요”… ‘미식의 나라’ 파리 사로잡은 한식의 맛 - 조선비즈 (chosun.com)


만약 최초 심사하던 그때로 돌아가서 '실제 수출이 이루어지는 지역에 실사를 한번이라도 갔다 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역시 실사가 중요)


물론 사람들은 '김 공장 대출 고작 30억 검토하면서 무슨 해외출장이냐'는 핀잔을 줬겠지만,1주일 출장을 간다고 해 봤자 출장비 500만원도 들지 않았을 겁니다.


향후 이 업체가 부도 나서 조직에 끼친 손해가 3억 이상 임을 감안하면 수출지역에 대한 실사를 가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으로 남았습니다.


세번째는 늘 그렇듯이 기업 관계자의 재무융통성을 추가적으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돌이켜보니 이 업체의 경우 약 5~6억 정도의 자금만 마련이 되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정도로 성장했을 겁니다.


그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체크하지 못한 부분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또한 크지 않은 신용포지션임에도 무리하게 분할 상환을 요청해서 업체의 자금을 더 빡빡하게 만든 것도 패착 중의 하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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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의 이후 히스토리를 이야기하자면, 해당업체는 자금을 지원받고 5년이 지난 시점에 부도가 났습니다.


참고로 심사역으로서 저에게 미치는 데미지는 크게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보통 심사 후 1년 이내 부실이 발생할 경우 심사역에게 큰 데미지가 감)


하지만 좋은 업체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아쉽더군요.


담당 심사역으로 사후관리 하던 후배 심사역에게 물어 봤습니다.


'왜 부도가 났지?'


부도 사유에 대해 들어보니 직접적 원인은 사업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본업을 소홀히 여기게 된 것이었는데.


사실 그 시작은 여신 지원금액이 적정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1) 부족한 자금 지원 → (2) 수출 증가 → (3) 수출 대비한 운전자금 부족 → (4) 자금 확보 위한 대표의 노력 → (5) 정책자금 지원 가능성에 대한 정보 → (6) 정책자금 지원 받기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에 접근 → (7) 사업 외적인 활동에 집착

→ (8) 부도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업체에서 요구했던 금액을 그때 다 지원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 기억으로는 성실했던 사장님이 사업에만 전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추가적으로 이런 업체에 대출을 지원해 주면서 일정부분 Equity 도 같이 투자해 주면서,


해당 법인의 자금관리나 재무실적 관리를 하는 일종의 메자닌 금융을 일으킬 수 있다면, 새로운 투자기회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도 떠올랐습니다.


요새 새롭게 설립되는 은행 산하의 금융벤처회사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역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실행이 문제입니다. 늘 그렇듯이 말이죠.


기업은행, 벤처투자 자회사 출범…"내년까지 모험자본 2.5조 공급" - 머니투데이 (mt.co.kr)


오늘은 중소기업 심사 실패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김 수출 기사가 뜨고 중소기업에 대한 벤처 투자가 활성화 된다는 소식을 접하니,


예전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네요.


부디 여러분은 저와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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