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니파더 Oct 25. 2024

열위 산업 vs 좋은 기업

PF리스크와 부채비율 재조정

"지금같이 부동산 이슈가 큰 환경에서 부동산 매매업, 부동산 관리업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씩씩 거리고 전화 온 후배 때문에 영어 회화 수업에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심사역이 자기가 소개한 업체를 부결한다고 하는데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혀서 신세 한탄을 하더군요.


'심사는 심사역이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조용히 타일러서 보내려고 하는데 관련 업체 리포트를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


그것도 금요일 밤에! ㅡ,ㅡ

동시에 "선배가 심사역으로서도 아니라고 말하면 접을게요"라는 멘트.


주말에도 불구하고 감사보고서 하나 둘 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후배가 다시 귀찮게 하지 않기를 바라며.


먼저 관련 업체의 주요 재무지표를 보고 가겠습니다.



지표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밑줄을 쳐놨습니다.


참고로 회사는 대기업의 부동산 개발을 담당하고 있으며 설립된 지는 이제 약 15년 차 되는 중견기업입니다.


모회사인 대기업은 국내 대기업 순위 10위권 안에는 드는 곳으로 은행에 300억의 운전자금을 신청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인터뷰 안 해봐서 모르니 생략.


먼저 부동산 개발, 관리를 담당으로 하고 있으니 심사역이 이야기 한 부동산 PF 리스크에 노출된 것은 맞습니다.


LS證 “부동산 PF 리스크 진정 국면” - 조선비즈 (chosun.com)


그렇다면 심사역이 제시한 산업 이슈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해당 기업의 부동산 PF 리스크를 한번 보겠습니다.


금감원 다트에 들어가서 주석 공시를 보고 우발채무 규모를 확인해 보는 걸로 분석을 시작합니다.


제공한 지급보증 총액은 1,000억 정도로 보입니다.


보증기간이 25년 2월 끝나지만 심사역이 리스크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니, 전액  손실 처리된다고 스트레스를 줘서 부채비율을 러프하게 다시 계산합니다.


자본금은 1,000억으로 감소하니까 1조 5,431억, 부채가 1조 217억이니 부채비율은 66%로 증가하게 됩니다.


가만 보니 최근 4개년 연속 부채비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23.9% → 62.2%)


좋지 않은 시그널은 맞죠? 그런데 눈길을 끄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산규모. 그래서 세부적으로 뜯어봅니다.


2조 6,000억의 자산 중 개발을 위해 투자 부동산으로 분류해 놓은 것이 1조 2,000억이네요.


주석을 찾아보니 투자부동산을 원가법으로 평가했는데 현재 공정가치는 3조 5,000억.


K-IFRS 투자 부동산의 회계처리 - 조세일보 (joseilbo.com)


그렇다면 이 기업의 장부에 숨겨진 가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2조 3,000억입니다.

(3조 5,000억 - 1조 2,000억)


스트레스를 줘서 보수적으로 봤으니 이제 상도 주는 게 공평하겠죠?


2조 3,000억을 스트레스 줘서 줄어든 자본총계 1조 5,431억에 숨겨진 가치를 더해줍니다.


그러면 자본총계는 3조 8,431억, 부채는 그대로 1조 217억이라고 계산됩니다.


재계산된 부채비율은 26.5%입니다.


부채비율이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했다고 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투자부동산 중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된 것이 있을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총 차입금 7,193억이 모두 브릿지론이고 회수가 불가능한 쓰레기라고 가정합니다.

동시에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는 이와 다르지만 뭐 어떻습니까?


스트레스 줄려면 화끈하게 줘야죠.


그러면 투자부동산 공정가치에서 해당 가치를 차감해 보겠습니다. 역시나 손실 처리의 일환입니다.


3조 5,000억 -7,193억 = 2조 7,807억 - 1조 2,000억 = 1조 5,807억


부채비율 다시 계산해 봅니다.


수정된 자본총계는 3조 1,238억, 부채는 그대로 1조 217억.


총 차입금 전부를 상환하고 난 부동산의 실질 가치로 재계산한 부채비율은 32.71%입니다.


참고로 24년 상반기 SK하이닉스의 부채비율은 76%, 현대자동차의 부채비율을 179.5%입니다.


물론 위의 기업들은 제조기업이라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현실에서는 어떠한 수치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관련 데이터를 첨부해 봅니다.


정상적인 심사역이라면 여기까지 다시 보고 나서 해당 기업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겁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겁니다.


이 딜이 제대로 된 길을 가지 않고 여기저기 횡보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로 기업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심사역의 역량 부족,


두 번째는 그러한 심사역의 역량 부족을 탓하기만 하고 '모기업이 대기업이다'라는 말만 늘어놓는 프런트의 대응력 부족에 있기 때문이죠.


사실 기업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위에서 아주 러프하게 다루었지만 숫자로 충분히 설득할 수 있고 기업의 실질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걸 못합니다. 아니 안 합니다.


왜냐?


실질을 보는 게 귀찮기 때문입니다.


그냥 '부동산 건설업이라는 열위한 산업에 속해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지금은 부담스럽다'라고 이야기하면 편하거든요.


부채비율 재계산과 투자부동산의 공정가치 반영을 통한 실질 자본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실 별 거 아닙니다.


거창하게 써 놨지만 핵심을 파악하고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귀찮기 때문이죠.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심사를 할 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산업이 아무리 열위해도 그 안에 소속된 기업 모두가 엉망진창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심사역이든, 프런트든 이슈와 실질을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P.S : 오늘은 전화가 안 오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