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알았으면 좋겠어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사람을 만나, 같은 작업을 한다는 것.
고작 일주일에 한 번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손꼽아 기다려지는 시간일 수도 있다. 보통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는 큰 봉지 하나를 더 챙겨간다. 봉지 안에는 다양한 간식들이 들어있다. 상담이 끝나면 1개씩, 때로는 2개씩 원하는 것을 가져가도록 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간식을 먹기 위해 오는 친구들도 있다. 어찌 간식 봉지를 들고 가지 않을 수 있으랴.
간혹 간식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만남의 시간 자체가 그들에게는 별미 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학교에서 그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하여 도와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더구나 요즘은 부모가 거의 맞벌이는 기본이어서 아이들이 집에 가면 부모가 집에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상담의 자리에 오는 아이들은 더더욱 그런 따뜻한 대접을 받은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만나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한번은 상담에 오자마자 사탕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선생님 줄려고?"
"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고 간식을 받아가려는 아이들은 많다. 그러나 도리어 선생님에게 선물을 주는 아이는 많지 않다. 놀라운 것은 나에게 뭔가를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색종이로 접은 장미꽃과 빨아먹는 비타민c, 요 몇일 전에는 가방에 달 수 있는 조그마한 인형을 주기도 했다. 이로써 이 만남은 아이에게 안식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그럼에도 안전한 곳.
다시 말하면 상담자와 라포가 잘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는 상담자 한 분이 한 내담자의 그림검사 한 것을 내밀면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상담한 이야기와 그림을 듣고 보면서 느낀 부분들을 이야기 해 드렸다.
"자기 주위에 아무것도 자원이 될 만한게 없네요. 너무 힘든 상태인데 도움을 찾고 있어요. 상담에 나온다는 것은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까요. 쌤이 그 아이에게 우산(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비를 흠뻑 맞고 있는 나, 그리고 우산을 찾고 있는 나가 그려져 있었다)이 되어 주시면 좋겠네요"
초반에는 쌤을 만나러와서 계속 자해를 한다고 했다. 새로운 관계가 생겼으니 불안할 것이고 그 반응이 자해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몇 주 후,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라포가 생겼는지 더 이상 자해는 하지 않고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니는데 상담시간에는 벗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본인이 사비로 간식을 사다 준게 마음을 열게 하지 않았나라고 덧붙이셨다.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킨걸까? 어떻게 선물을 주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을까? 답은 선생님이 아이에게 준 간식도, 학습 컨텐츠도 아니다.
아이를 향한 마음.
'힘들었겠구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 괜찮아. 할 수 있어.....'
수 많은 비언어에서 이런 언어들을 찾아 냈을 것이다.
다음번에 만날때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ㅇㅇ아. 선물을 주지 않아도 네 마음 충분히 알아. ㅇㅇ이가 선생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상담자에게 내담자는 사람의 깊이와 다름과 복잡함을 이해하게 해 주는 귀한 선물이고,
내담자에게 상담자는 내가 '나'여도 괜찮은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주는 귀한 선물이다.
그 고귀한 선물끼리 매주 신뢰와 소망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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