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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사원철학자 Aug 05. 2024

아내가 집을 나갔다

아들과의 친밀한 시간

잘 다녀올게 아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


그렇게 아내는 현관문을 닫으며 집을 나갔습니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구멍의 흔적처럼 커다란 구멍이 내 마음에 남겨졌습니다. 언제나 아내와 함께 육아를 했었지 혼자서 장시간을 해본 거는 처음이었으니깐요.


불안에 섞인 숨소리를 가다듬고 차근차근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서 리스트업 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분유 160미리를 만들어서 먹인다.

기저귀는 파란색 선이 가득 물들면 갈아준다.

똥을 누면 아이 옷을 잘 걷어서 엉덩이를 잘 씻긴다.

낮잠을 자기 전 우니깐 잘 토닥이며 재운다.


‘이 정도면 발생 가능한 이벤트들을 전부 나열한 거 같아! ‘


라고 안심하는 순간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하려고 하는 마음을 붙잡고 방금 리스트업 한 것을 되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우는 많은 경우의 수 중에 하나를 맞춰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에 갑자기 봉착했죠. 


먼저 아이의 모든 일상을 저장해 둔 데이터! 어플을 엽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과거에서 현재의 현상을 진단하자!’


많은 경우의 수 중 분유 타임의 확률이 높았습니다. 요즈음 아이가 조금 커서 3-4시간에 간격으로 분유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분유시간이 오전 7시에서 7시 반! 적절한 조치였습니다. 분유를 먹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천사 같은 표정으로 안정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유를 다 먹고 트림을 시키고 아이랑 노는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합니다.


신나게 같이 놀던 아이가 그저 나를 보면서 실실 웃는 겁니다. 이거 무슨 신호지? 정서가 갑자기 변한다고?! 라며 이 상황을 해석하려는 순간 나의 코끝을 강하게 자극했습니다. 이... 건.... 육아 리스트 중에서도 꽤 처리능력을 요구하는 ’ 똥 치우기


아이가 출산 후 신세를 졌던 관리사님한테 들은 요령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합니다. 차근차근 아이의 옷이 젖지 않게 잘 올려서 세면대를 향합니다. 따뜻한 물을 틀고 아이의 엉덩이를 깨끗이 씻어냅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 넘치는 걸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오전 육아가 끝이 납니다. 생각보다 우리는 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팀이 되어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분유도 잘 먹고 장난감으로 같이 놀고 책도 읽어주고 평일에 잘해주지 못한 놀이를 했습니다. 아이와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는 거 느꼈습니다.


또 한 번의 분유를 먹고 잠에 듭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소리에 팔베개 스르르 잠이 듭니다”


띵똥


‘마치고 집으로 가요~’


라는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이제 아내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9회 말 투아웃 말루 상황에 등판하는 구원투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면 멋진 스토리가 나오는 상황! 육아의 필수템 아기띠를 메고 집을 나섭니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히어로를 만나야만 하는 상황!


아내가 전철역 계단에서 내려옵니다. 뛰어오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이와 저를 보고 꼭 안아주었습니다. 아내도 이렇게 아이와 떨어진 거는 처음이라서 마음 한편에는 쓸쓸함이 있었나 봅니다. 오늘도 둘 다 잘했어!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 마침 동네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도 보고 돌아갑니다. 첫 불꽃놀이 소리에도 안 놀래고 물끄러미 보는 아이를 보고 엄마 없이 하루를 잘 보냈다고 칭찬하며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들겨줍니다.


이번 첫 원오페 육아를 통해서 아이와 심리적 더 가까워진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내의 소중함도 더욱 느낍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간이 늘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계기를 더욱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이번주 육아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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