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포복으로
습한 낙엽 냄새가 가득한 가로수길을 보니 가을이 찾아왔음을 실감합니다. 상쾌한 날씨는 아이가 있는 부모들에게 밖으로 나가도록 유혹합니다. 평일 내내 회사 일로 지쳤어도, 소중한 주말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고 싶기에 걷기 좋은 공원이나 카페를 찾아 떠나곤 합니다.
계절이 바뀌며 달라진 풍경을 볼 때마다 우리 아이도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처음에는 목도 가누지 못해 뒷목을 조심스럽게 받쳐 안았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음을 느낍니다.
요즘 우리 아이는 배밀이를 하고 있습니다. 배밀이를 하기 전까지는 거실 매트가 넓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는 눕혀 놓으면 뒤집기를 하거나 그 자리에서 365도로 뱅글뱅글 돌며 놀곤 했죠.
그런데 배밀이를 시작하면서, 아이는 몸을 뒤로만 밀던 때와 달리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거실 매트의 경계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실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살펴보더니, 이제는 주방까지 배밀이로 기어와 두리번거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이를 거실에 눕혀 놓고 잠시 침실에 물건을 가지러 갔습니다. 아이는 평소 주방까지만 왔었는데, 그날은 침실로 통하는 통로까지 저를 따라 기어 온 것입니다. 마치 군대 유격훈련에서 철망 아래를 낮은 포복으로 지나던 기억을 떠오르게 할 만큼 조심스럽고 재빠르게 움직였죠.
아이는 이렇게 우리 집 구조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각 기관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직접 움직이며 세상을 탐구하고 있죠. 낮은 포복으로 집구석구석을 수색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요.
아이가 점점 더 넓은 범위를 탐험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어른들 눈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팔과 다리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사실은 성장에 필요한 근육을 발달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생존을 위해,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부모인 저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가을은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아이의 성장도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겠지요. 물론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시간이 금방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히 느끼게 됩니다. 아이도, 아내도, 저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는 시간이 더욱 값지고 소중합니다.